▲ 정윤각 공인노무사(금융노조 NH농협지부 법규실장)

공인노무사를 시작한 지 어언 20년이 돼 간다. 그동안 노동환경 변화에 따라 노동 관련 법률이 숱하게 제·개정됐으나 여전히 달라지지 않고 있는 건 노동자의 척박한 삶이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한시적으로 급상승했으나 이후 점차 하락해 현재 10%를 맴돌고 있는 지경이다. 90년대 말 외환위기는 산업 전반에 걸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노동자계급의 분열과 더불어 사회양극화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기존 노동운동이 노동자들의 민주노조 건설 등 조직화 시대였다면 이제는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노동자를 조직화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본다.

90년대 말 정부와 국회는 비정규직 보호라는 허울 아래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통과시켰다. 이후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원칙 아래 노동위원회법을 통해 차별시정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제도를 시행하기 전 우려와 같이 계약직과 파견직 노동자를 2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보다는 2년 이내 쪼개기 식 계약기간을 설정하거나 계약직 의무사용기간이 2년이라는 체념으로, 일부는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유혹과 정규직 입성이 가능할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더한 노동을 받아들이는 현실에 이르게 됐다.

회사에 입사하는 데 있어 더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 정규직으로 들어오는 것은 출발점이 다르기에 노동조건이 어느 정도 다른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그러나 회사의 경우 직무 간 기본적인 업무분장을 통해 비정규직 업무가 제한되고 권한 또한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본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기회가 적을 수밖에 없다. 회사는 법·제도를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비정규직에게 과도한 업무와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로 인해 비정규직은 회사 내에서 또 한 번 좌절하지 않을 수 없다. 출발점도 다르지만 같은 경기장에서 서로 다른 경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견업체·협력업체·하청업체 등 파견노동자의 삶은 각박하다. 힘들고 어렵고 위험한 업무 대부분이 이들의 일이다. 상시적으로 산업재해가 발생하고 현재도 하루에 5명 정도가 사고로 일터에서 생명을 잃고 있다. 가난은 대물림돼 제대로 배울 기회조차 없는 청년들은 이른 나이에 산업현장으로 뛰어들어 생계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남들이 하려 하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노동조합을 결성해도 제대로 된 단체교섭을 할 수가 없다. 실질적인 사용자는 원청업체지만 이들을 고용한 업체는 하청업체이기에 법적으로 실질 사용자를 교섭상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나긴 법정투쟁을 해야 하고 그 기간 동안 먹고살기 위해 또 다른 일터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둘러보라. 무노조경영 삼성 노동자와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 제조·건설 하청노동자, 택배노동자, 청소용역 노동자 등 모두 조직화가 어려운 비정규직 파견직 노동자들이다. 정규직으로 구성된 다수 노동조합은 투쟁할 명분을 잃어 가고 있다. 단순히 사업장 조합원의 임금 등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본연의 투쟁은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전부터 산업별노조 건설이라는 큰 틀에서 기업 울타리를 넘어 산업으로 조직화를 시도했고, 산별노조 명목으로 활동하는 노조가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기업별노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조직대상 또한 정규직이 다수고 비정규직을 포함하지 않거나 포함하더라도 그들의 목소리에 답할 정도의 역할은 하지 못하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이니 일과 삶의 균형이니 하면서 노동시간을 줄이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자고 하지만 이 역시 안정된 기업에 다니는 조직화된 정규직을 위한 슬로건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자들이 정부의 국가복지(최저임금·4대 보험 등)로는 최소한의 생활조차 힘들기에 대부분 기업복지에 의존하고 있다. 대기업 등 안정된 직장에 정규직으로 들어가기 위해 어릴 때부터 착실하게 스펙을 쌓아 정규직이 된 노동자에게 비정규직의 땀방울은 동일한 무게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점점 노동자 간 온도차가 커지고 계급 간 분열은 심해질 것이다.

한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화두였다. 현재는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얘기하고 있다. 기업의 경우 사회공헌 등 이미지를 제고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측면이겠지만 기본적인 노동권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노조 조직률이 낮은 나라에서 노조의 사회적 책임은 아직 먼 얘기다. 최근 보수정당 원내대표는 “노조가 권력집단이기에 파업시 대체근로 인정 등 사회적 책임을 지게 하겠다”며 노조의 사회적책임법을 발의하겠다고 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 번이라도 노동자로 살아 보지 않은 자에게 노동조합이 무엇으로 보이겠는가.

이제는 노동조합이 정부와 기업에 기대지 않고 노동자 간 격차를 줄이고, 사회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했으면 한다. 미조직된 노동자를 조직해 조직률을 확대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 현재 사회연대기금 단체가 몇 군데 설립돼 있다. 일부 노조에서는 자체적으로 기금을 출연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그 성과는 미흡하다. 정부가 못 하는 일 그리고 기업이 안 하는 일을 노동조합이 주체가 돼 노동자의 고통을 함께하는 연대사업을 현실화해 큰 결실을 맺었으면 한다. 지금도 대다수 조직화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위험이 노출된 현장에서 내일을 기대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사업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은 길거리에서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투쟁을 하고, 또 다른 노동자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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