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제목의 부르주아는 보통 사람들에 비해 훨씬 잘사는 부자라는 말이다. 조국과 나경원은 출신 성분이 부유층에 속한 것은 물론이요, 머리도 뛰어났겠지만 집안이 잘사는 덕분에 서울대에도 쉽게 들어갔을 터다.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서울대 법대에 들어간 고향 선배는 늙은 남자들에게 술 파는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공부했다. 그때는 학력고사 시절이었다. 연말이면 학력고사 전국 수석 뉴스로 신문방송이 들썩였다. 평준화 시절이라 농촌 소도시 고등학교에서도 전국 수석이 나왔다. 수석을 한 고등학교 3학년짜리는 '서울법대'에 입학해 사회정의를 위해 일하겠다 포부를 밝혔다.

부모가 노동자나 농부였던 아이들도 머리가 좋고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다. 물론 가난한 아이들은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고등학교 반 동기 55명 중 45명은 부모 직업란에 '농부'라고 적었다. 자기 땅 없는 소작농이나 무직자를 부모로 둔 아이들도 학부모 직업란에 농부라고 적었을 것이다.

조국과 나경원이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을 때 대학가는 전두환 군사독재 타도의 열망이 넘실댔다. 민족해방과 계급혁명에 대한 학습과 토론이 넘쳐났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이 대학가에 확산됐다. '사회과학 서적'을 만드는 출판사와 대학가에 유통하는 서점이 많았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같은 '일류대' 앞에는 이념 서적을 파는 서점이 여러 개 있었다.

운동권 학생들만이 아니라 일반 학생들도 이념 서적을 공부하는 학회에 참가했다. 심지어 종교동아리들도 마르크스·레닌·김일성·모택동을 공부했다. 국가권력 탄압이 잇달았다. 많은 이들이 잡혀가고 고문받고 투옥되고 군대에 끌려가고 살해당했다. 십 대 후반과 이십 대 초반의 어린 학생들이 희생될 때 지배 엘리트들은 침묵하고 방관하고 동조했다. 대도시 파출소 창문에는 화염병 방어를 위한 철망이 설치됐다. 지금의 홍콩 사태를 훨씬 능가하는 시위대와 경찰의 폭력이 난무했다.

일제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진 자랑스러운 학생운동의 전통, 즉 졸업 후 사회를 끌고 갈 엘리트로서의 앙가주망(engagement) 열망이 대학가를 압도했다. 미래 엘리트들이 자기 출신성분에 상관없이 "역사가 부여한 임무에 복무하고 시대와 더불어 기꺼이 사라질 것"을 결의했다. 부자집 도련님 출신이었던 조국은 자기 계급을 배신하고 노동계급 혁명의 대의에 동참했다.

서울대 법대의 귀공녀였던 나경원이 학생운동을 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없다. 집안도 좋고 얼굴도 예쁜 그는 열심히 공부하는 착한 학생이었을 테다. 그에게 자기 계급을 위협하는 혁명과 이념은 불온했고, 군사독재는 친일파들에게 일제 식민지가 그러했듯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부르주아 나경원은 판사가 됐고, 부르주아 조국은 사회주의를 꿈꾸는 대학강사가 됐다.

2019년 9월 현재 부잣집 딸로 태어나 판사로 편안하게 살아온 나경원은 정치인이 돼 부자를 위한 정치를 위해 애쓰고 있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대학교수로 편안하게 살아온 조국은 더 이상 노동자와 민중의 해방을 꿈꾸지 않지만 부자와 빈자가 법 앞에 보다 공평한 사회를 만들려는 의지를 갖고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됐다.

부자로 태어나 부자로 살아왔으며 앞으로의 삶도 부자일 거라는 점에서 나경원과 조국은 부르주아다. 둘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나경원은 자신의 계급적 본능에 충실했으며 지금도 부자를 위한 세상을 꿈꾸는 '일관된 신념'의 소유자라는 점이고, 조국은 자신의 계급적 본능을 회의하며 빈자를 위한 세상까지는 아니더라도 보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중성'과 '위선'의 소유자라는 점이다. 부자와 빈자 모두에게 조국은 '계급의 배신자(class traitor)'다.

부르주아라는 출신 성분의 공통성에도 불구하고 나경원은 자기 계급의 이익에 일관되게 충실한 냉혈한이지만, 조국은 자기 계급의 이익과 민중의 이익 사이에서 회의하고 방황하는 위선과 이중성의 모순덩어리다.

열심히 일하지만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동정, 인간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대적 가치에 대한 열망과 공감, 구한말 이래 제국주의에 의해 짓밟히고 찢겨진 우리 민족의 운명에 대한 슬픔과 분노, 보다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상을 후손들에게 물려 주고픈 열정. 이러한 신념들을 한 인간이 수십 년 동안 일관되게 추구하고 혁명가로서 삶의 태도를 항상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혁명가와 실천가의 하루하루는 영웅적이기보다 비루하기 그지없다. 서구 최초의 조직가였던 사도 바울은 예수 재림이라는 혁명을 준비하기 위해 결혼하지 말고 애도 낳지 말라고 가르쳤다. 가정을 꾸리고 애가 생기면 진정한 기독교도의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991년 소비에트가 망했고 얼마 안 가 조국의 '사노맹'도 막을 내렸다. 그즈음 조국 자신도 사회주의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김문수 같은 노동자·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계급의 주구가 되지는 않았다. 인간해방과 민주주의라는 젊은 시절의 꿈을 가슴 한편에 부여잡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울대 교수라는 직업과 부유한 가정이라는 일상의 행복을 만끽하면서, 때로는 이익과 타협하며 때로는 시류에 굴복하며 살아왔다.

사실 노동자·민중 대부분이 가슴 한편에는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열망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시류에 편승하며 사소한 일상의 이익에 굴복하며 비겁하게 살고 있다. 개혁과 혁명은 사상과 신념이 투철하고 일관된 영웅들의 위대한 삶이 아니라 일상의 이익 앞에 쉽게 무너져 내리고 남의 고통에 애써 눈감는 민중들의 비루한 삶에서 비롯된다. 일상의 비루함과 인간의 위선과 이중성을 조금이라도 더 겪은 사람이 장관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기 바란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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