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한때 ‘유럽의 병자’로 불렸다. 1990년 통일 특수도 잠시, 곧 ‘잃어버린 10년’을 맞았다. 독일은 2000년대 초반 실업률이 10%를 넘어섰고 2005년 11.7%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그 뒤 점점 줄어들더니 올해 3월 3.5%를 기록했다. 독일은 2017년 시장조사기관 GfK(Growth from Knowledge)가 발표한 국가브랜드 지수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런 독일의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떻게 이런 ‘일자리 혁명’이 가능했던 것일까. 이상호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전문위원은 최근 펴낸 <독일의 일자리혁명>(사진·사회평론아카데미·2만원)을 통해 그 과정을 추적하고 시사점을 제시했다. 그는 2014년 경상대에서 ‘독일 고용체계의 변화와 비정규노동’으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독일 노사·노사정 관계는 “갈등적 협력관계”=저자는 독일의 노동조합과 단체교섭, 경영참가, 사회적 대화 등 독일 노사관계 제도의 근간을 먼저 찬찬히 들여다본다. 기저에는 탄탄한 산별교섭과 공동결정제도·삼자협의주의가 있음을 제시한다. 저자는 독일의 노사관계와 노사정관계를 “갈등적 협력관계”라고 규정한다.

이런 독일의 노사관계와 삼자주의는 일자리 위기에서 힘을 발휘한다. 독일은 일자리 혁명을 위해 사회적 대화를 선택한다. 1998년 독일은 사회적 대화 모델로서 ‘일자리동맹’을 제시했다. 노사정 대표는 2002년까지 모두 8차 회의까지 진행했지만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일자리협약을 둘러싼 노사정 이해갈등이 컸던 탓이다.

그 뒤에 등장한 것이 하르츠개혁(2002~2004년)이다. 일자리동맹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자 슈뢰더 정부는 노동시장 제도개선을 위한 독자적인 개혁프로그램 일환으로 하르츠위원회를 만들었다. 하르츠개혁은 많이 알려졌다시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일자리동맹, 직업훈련·지역 일자리협약 이어져=일자리동맹은 실패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일자리동맹 자체는 좌초됐지만 여기에서 논의된 직업교육훈련 강화와 훈련생 일자리 제공 의제는 2004년 정부와 사용자 간 ‘직업훈련과 신규전문인력을 위한 국가협약’ 체결로 이어진다. 저자는 “이러한 사회협약은 직업훈련생과 청년구직자의 일자리 문제를 사회적 대화를 통해 공론화하고 정부와 사용자 간 합의를 도출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산별협약에서도 이런 흐름은 이어진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지역에서는 지역 내 노동자의 직업재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한 특별협약을 체결했다.

폭스바겐 같은 자동차산업 거점지역에서 노사정의 다층적 파트너십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아우토비전 프로젝트, 남동니더작센 지역발전 프로젝트, 그리고 ‘광주형 일자리’로 국내에 많이 알려진 아우토 5000 모델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역사회 재활성화에서 지역정부의 추진체적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고용 없는 성장’ 한국에 독일이 주는 시사점=하르츠개혁에 대한 냉정한 평가도 내놓는다. 독일은 2000년대 초반 하르츠개혁으로 실업률이 하락했지만 비정규직 증가, 임금격차 확대 같은 부작용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독일 정부는 정책기조를 바꿔 단기고용·파견노동 규제와 차별금지, 동등대우원칙 확장을 실시했다. 2011년 들어 비정규직이 줄고 정규직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독일의 노동 4.0 전략을 짚는다. 독일은 4차 산업혁명으로 나타날 일의 세계 변화를 진단하고, 좋은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산업·사회·노동정책이 무엇인지 권고했다.

저자는 “일자리혁명을 향한 독일의 역사적 경험은 ‘고용 없는 성장’과 ‘이중적 노동시장’에 봉착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우리 노사정도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고 혁신적 포용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고 공존과 상생을 위한 사회적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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