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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풀 뜯어먹는 소리
▲ 김형탁 마실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사람들은 겸연쩍은 일이 있을 때 뒷머리를 긁적인다. 뭔가 의심스럽거나 잘 이해가 가지 않을 때는 머리를 갸우뚱한다. 뭔가 깊이 생각하거나 골똘히 생각에 잠길 때면 손으로 턱을 괴고 머리를 앞으로 쏠리게 한다. 잡스러운 생각이 들거나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날 때는 마치 생각을 털어 내듯이 머리를 세차게 흔든다. 지금까지 하던 생각을 멈추고 머리를 쉬게 하고 싶을 때는 머리를 뒤로 확 젖혀 버린다. 뭔가 다른 관점으로 이해하고 싶거나 다른 생각의 고리를 잇고 싶을 때는 완전히 젖히지는 않고 손으로 깍지를 끼어 적절히 긴장을 주면서 머리를 지긋이 뒤로 한다.

이런 모양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지는 제대로 조사를 해 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나의 경험과 내 주변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대체로 그러하다. 이것이 단지 문화적으로 전수돼 내려온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 뇌는 자체의 신경망을 따라서 아주 체계적으로 움직이겠지만, 머리 위치를 바꿈으로써 그 작동을 외부에서 조절할 수 있다.

눈도 상황에 따라 다른 모양을 띤다. 갑작스럽게 놀랄 일을 당하면 사람들은 눈을 크게 뜬다. 그러나 극도로 공포를 느끼는 상황에서는 눈을 감아 버린다. 뭔가 아닌 듯한 생각이 들면 째려보게 되고,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하면 눈을 이리저리 굴리게 된다. 그리고 뭔가 깊이 있는 생각을 하려면 눈을 가늘게 뜬다.

아무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고 눈을 감는 경우가 있다. 눈을 감았을 때를 상상해 보라. 눈을 감으면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온갖 생각이 머리 여기저기에 뛰어다닌다. 없던 생각이 눈을 감아서 생기기보다는, 원래 들끓고 있던 생각이 눈을 감으면서 보이게 되는 듯하다. 이처럼 눈을 감으면 상념의 바다에서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는 명상을 할 때는 눈을 완전히 감지 않고 힘을 주지 않은 실눈을 뜨면서 상념의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편안하게 한 곳을 응시한다. 자신의 들숨과 날숨을 마음으로 바라보거나, 눈 아래 놓인 촛불을 보며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한다.

반성 또는 성찰이라는 단어에 나오는 ‘성(省)’이라는 글자는 한자로 쓰면 적을 소자와 눈 목자를 위아래로 합쳐 놓은 모양이다. 깊은 생각을 위해서는 눈을 감지도 말고, 또 지나치게 눈을 크게 뜨지도 말라는 뜻이다. 눈은 외부 정보를 가장 빠르게 받아들이는 기관이다. 음속으로 정보를 받는 귀와 달리 눈은 광속으로 정보를 받는다. 몸에 직접 닿아야 외부 정보를 느끼는 신체의 다른 부위와는 비교할 필요도 없다. 깊은 생각을 위해 눈을 크게 뜨지 않는 것은 지나치게 많이 들어오는 외부의 정보를 어느 정도 차단하기 위해서다. 뇌의 용량은 한정돼 있어 정보처리 능력에 한계가 있으므로 많은 양의 정보가 들어오면 깊은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위급한 상황이라면 순간적으로 최대한의 정보를 받아들여야 하므로 눈을 크게 뜨게 되지만, 깊은 성찰을 위해서는 지나친 정보는 이롭지 않다. 외부 입력 정보를 최대한 줄이면서 또한 눈을 감으면 들끓는 상념의 바다에도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눈을 작게 할 수밖에 없다. 게슴츠레한 눈은 곤란하겠지만.

사회적 성찰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지금 우리 사회는 장관 후보자 한 사람을 두고서 온갖 정보와 오만가지 생각이 뒤섞여 들끓고 있다. 심지어는 이를 전쟁으로 묘사하기도 하며, 또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총질이 벌어지고 있다. 도대체 누가 아군인지 적군인지도 구분하기 힘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고지전을 치르고 있는 듯하다. 우리 사회의 모순을 차분히 분석하던 이들도 여기서는 소총수를 자임하고 뛰어드니, 망연히 바라볼 도리밖에 없다. 그 짧은 기간에 장관 후보자 한 사람을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상징으로 만들었다. 대단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도 마찬가지지만 일상에 쫓기는 이들은 그 많은 정보를 따라가지 못해 오직 그 상징 깃발이 계속 서 있을 것인지 아니면 넘어지는지만 쳐다보고 있다.

말이 많을 때 정작 들을 말은 없어진다. 말이 배설되는 시기에는 어떠한 말도 무게를 갖기가 쉽지 않다. 말을 상술로 활용하는 이들이 많은 시절에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성찰적 이성으로 쓴 글을 보고 싶고, 반성적 태도로 이야기하는 말을 듣고 싶다.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만 쫓지 말고, 고개를 갸우뚱해 보기도 하고 뒤로 젖혀 보기도 했으면 한다. 사람이 아니라 사회를 바라볼 수 있도록 들숨과 날숨을 가다듬게 해 줬으면 한다. 총질과 육박전이 벌어지는 전장에서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고, 그런 분석은 사태가 종료된 이후에나 할 일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 성찰은 늘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다.

지나친 겸손은 오만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겸손이 지나칠 수 있다는 생각이 오만하다. 지나친 겸손은 없다. 겸손은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이것을 살 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 없이 진정으로 겸허히 반성해야 한다. 그것을 계기로 이 사회 전체가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근 관심을 가지게 된 주제인 공제보험에 대해 연속으로 글을 써 보려고 마음을 뒀다가, 별로 관심을 갖지 않을 것 같아 다음으로 미루고 횡설수설했다.

마실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htkim82@gmail.com)

김형탁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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