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뜨거운 여름, 필요한 노동자께 드립니다."

포장을 뜯지도 않은 팔 토시가 서랍 안에서 새로운 주인을 기다렸다. 원래 주인은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길 바란다는 쪽지를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또 누군가는 배고픈 이를 위해 도장 10개를 모두 모아 피자로 바꿔 먹을 수 있는 쿠폰을 남겼다. 25일 오전 전태일기념관 3층 전시장 귀퉁이에 마련된 '하나의 질문, 여러 개의 움직임'이라는 전시코너 풍경이다. 전태일기념관은 전태일 열사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가 살아생전 노동자에게 당부하던 "하나가 돼라"는 말을 착안해 나눔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관람객은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지만 다른 이에게 필요할 수 있는 물건을 서랍 안에 넣고 당부의 쪽지를 남겼다.

9월3일은 고 이소선 여사가 소천한 지 8년째 되는 날이다. 전태일기념관은 지난 13일부터 이소선 여사를 기리기 위해 "어머니의 꿈-하나가 되세요"라는 주제로 '2019 소장품 기획전-이소선 8주기 추모전'을 마련했다. 기획전은 11월17일까지 이어진다.
 

▲ 강예슬 기자

"아들 뜻 이어 41년 노동운동에 헌신"

고 이소선 여사는 1970년 "내가 못 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전태일 열사의 유언을 받들어 청계피복노조 설립을 주도하는 등 41년 동안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수차례 구속돼 옥살이를 하거나 경찰수배를 받았지만 고인은 뜻을 이어 나갔고 노동자의 어머니로 불렸다. 추모전은 지난해 전태일기념관이 개관을 준비하면서 수집한 이소선 어머니 사진·사료 50여점과 영상기록물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아들의 죽음에도 계속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민주화운동을) 이어 나가고 감옥에 갇혔는데도 계속 활동을 한 게 너무 대단해요."

방학숙제 때문에 전태일기념관을 찾았다며 수줍게 웃던 열네 살 중학생은 "기념관을 찾기 전까지만 해도 잘 알지 못했지만 전태일 열사만큼이나 이소선 어머니의 이야기가 감명 깊었다"고 했다.

문은립(41)씨는 추모전을 감상하며 연신 훌쩍였다. 그의 시선은 이소선 여사가 썼던 일기에 한참 머물렀다. 이유를 묻자 문씨는 "자식을 그렇게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엄마의 마음이 느껴져서"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번 추모전에서는 1970년대 초반 청계피복노조 고문으로 활동하던 시절 고 이소선 여사가 직접 쓴 일기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 강예슬 기자

"50여년이 흘렀지만 노동자 지위는 여전해"

이날 오후 전태일 기념관 2층 울림터(공연장)에서는 전시연계프로그램인 "뒤돌아보니 거기에 : 세 편의 다큐상영회"가 열렸다. 20명 넘는 관람객들은 친구와 가족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전태일을 그린 다큐멘터리 <전태일의 기억>을 감상했다.

<전태일 평전>을 친구들과 함께 읽고 한 차례 전태일기념관을 찾은 바 있다는 김한수(21)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상영회 소식을 들었단다. 김씨는 "지난해 청년노동자 김용균씨 사건을 보고 지금도 여전히 사람이 노동현장에서 죽는구나 하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며 "대학을 졸업한 뒤 나 역시도 비슷한 처지에 놓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남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전태일의 기억>을 제작한 김이찬 감독은 "여전히 전태일이 원하던 평등한 시대는 오지 않았다"며 "노조도 적고 특히 이주노동자의 경우 근로기준법을 안 지켜주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현재 경기도 안산에서 이주노동자 쉼터 '지구인의 정류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오늘날 노동자의 지위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만큼 (전태일 평전이) 다시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음달 22일 <어머니>가, 10월6일 <민들레-한 많은 어버이의 삶>이 다큐상영회 바통을 이어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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