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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량주의자다
▲ 한석호 노동운동가

뜬금없는 고백이다. 나는 운동 판에서 공인된 개량주의자다. 대표 악질 개량주의자라는 비판도 받는다. 더구나 지금의 운동 판을 둘러보면 죄다 개량주의다. 한국 운동가들은 대체로 본인만큼은 개량주의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지만, 실제 개량주의자 아닌 경우는 눈 부릅뜨고 뒤져도 찾을 수 없는 형편이다. 개량주의자 천지에, 공인된 개량주의자가 굳이 개량주의자라고 고백하는 것은 뚱딴지같은 행위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개량주의자라고 선언한다.

대우자동차 투쟁으로 감옥에 간 때였다. 대우자동차는 1천727명을 정리해고했다. 분노한 노동자와 시민은 화염병·쇠파이프로 무장한 선봉대를 앞세우고 투쟁을 전개했다. 반년간 폭력 대 폭력의 공방이 펼쳐졌다. 전노협 선봉대에 이어 금속 선봉대, 그러니까 10년 넘게 노동자 전투부대를 이끌던 나는 폭력투쟁의 최종 책임을 지고 감옥에 들어갔다.

감옥에서 마르크스·엥겔스를 다시 읽으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레닌의 방식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그들이 사라지는 중이었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주축이라고 판단했던 자동차와 조선 등 중화학 대공장 노동자의 처지가 바뀌고 있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서 잃을 거라고는 착취의 쇠사슬밖에 없는 처지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통해 지킬 것이 많은 처지가 됐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가 없는데 무슨 수로 체제를 전복한다는 말인가. 혁명이 도래하면 노동자 군대를 지휘하다가 총 맞아 죽는 영광을 꿈꾸며 선봉대를 이끌던 나에게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형국이었다.

투쟁 현장이나 술자리에서 목숨 걸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운동가들이 쌔고 쌨으니까 그들이 전위가 돼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공백을 메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헛웃음 지으며 이내 접었다. 나는 오랫동안 선봉대를 지휘하며 폭력투쟁의 최전선에 있었다. 체제전복을 주장하며 전위를 자처하는 운동가들 상당수가 전투 상황이 벌어지면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생생하게 목격했고 경험했다. 고작 화염병에 쇠파이프고 기껏해야 피투성이에다 감옥인데, 그조차도 겁나서 이 핑계 저 핑계로 회피하고 술자리 무용담이나 늘어놓는 그들에 의지해서 죽음이 난무할 혁명적 체제전복 전략을 밀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은 고민에 고민으로 꼬리를 물었다. 자본주의 다음 단계는 사회주의 단계라는 마르크스의 가설은 철석같이 믿던 신념이었다. 체제전복을 꿈꾸며 삶을 걸었을 때 세계의 절반은 사회주의 체제였다. 그것이 붕괴하고 나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국가사회주의였기에 망했다거나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아 망했다고 인식하며, 한국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꿈꿨다. 선봉대를 붙들고 있던 이유였다. 그랬는데 그 신념 체계가 흔들렸다. 사회주의 단계가 역사의 필연이라면, 사회주의 체제에 온갖 문제가 있더라도 유지돼야 하는 것 아닐까. 두 체제의 경쟁 시기를 보면 자본주의에도 숱한 문제가 있었는데, 왜 자본주의는 버티고 사회주의는 망했을까. 급기야 마르크스의 역사 단계 가설은 필연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자본주의 단계와 사회주의 단계 사이에 다른 뭔가의 단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하는 상상이었다. 고민은 뒤죽박죽 얽히고설켰다. 매듭짓지 못한 채 출소했다.

현 단계는 혁명적 체제전복의 시대가 아니다, 라고 하는 판단만큼은 분명했다. 지금의 시대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긴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개량의 시대라고 확신했다.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운동 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혁명적 체제전복 전략을 뇌 속에 봉인했다. 혁명주의자로 감옥에 들어가 개량주의자로 출소한 셈이었다. 나의 상태를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개량주의자 선언을 결심했다.

그러나 차일피일 미뤘다. 눈치가 보였다. 개량주의자 선언을 하면, 함께 활동하는 동지들이 덤터기를 쓸 수 있다는 우려였다. 나의 운동 행보에 방해될 수 있다는 염려였다. 운동에서 개량주의 딱지는 노조 조합원의 이익만 챙기는 조합주의 딱지보다 모욕적 딱지였다. 개량주의자는 혁명의 배신자라는 의미였다. 그래서였다. 내 심연에서 내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렇게 저렇게 16년이 흘렀다.

그러면서 나는 현 단계 운동 목표로 북유럽 체제를 주장하는 과정까지 와 있었다. 북유럽 체제가 바로 개량주의의 결과물이고 상징이었다. 고백을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지금 여기에서의 혁명적 체제전복 전략을 실행하지 않은 채 북유럽 체제를 주장하는 것은 개량주의인데, 아닌 척하는 위선은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다. 선언의 결심은 개인 치유의 의미도 있었다. 체제전복을 꿈꾸며 혁명운동에 뛰어든 36년 전부터 내 운동의 인식 체계와 심리상태를 강하게 압박하던 개량주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개량주의자라는 비난이 쏟아져도 씩 웃으며 갈 길 가자는 다독거림이었다. 이 선언의 첫 번째 배경이다. (다음 편으로 이어짐)

노동운동가 (jshan8964@gmail.com)

한석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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