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휴먼)

오래 미뤄 둔 숙제인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법안이 발의됐다. 지난 14일 이정미 정의당 의원 등 10인이 발의한 소위 ‘비정규직 사용제한 4법’이다. 주요내용은 ①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출산·육아, 휴직 또는 질병·부상 등으로 발생한 결원’과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 업무의 완성기간을 정한 경우’ 등 일시적으로 필요한 몇몇 경우에만 기간제 근로자를 고용하도록 해 상시업무 근로자 직접고용과 기간제 근로자 사용사유 제한을 명시 ②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개정안은 현행 기간제 근로자 규정을 모두 근로기준법에 이관하도록 하면서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조정 ③ 직업안정법 개정안은 근로자 공급기간이 2년을 넘지 않도록 요건을 강화하고, 법을 위반해 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고용의제를 명시 ④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은 파견대상업무 범위를 계절적 사업 또는 일정한 사업의 완료,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하는 경우로 한정하고 사용사업주가 이를 위반해 파견근로자를 사용하는 경우 직접고용한 것으로 의제하는 등이다.

현행 기간제법은 기간의 제한만 2년으로 뒀을 뿐 기간제 노동자를 사유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기간제법 4조1항은 “사용자는 2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어서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2년을 초과해 기간제 근로자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며 각 호 열거규정을 추상적으로 설시함으로써 2년 제한 기간마저 무력화하는 측면이 있다.

노동자 파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파견법에서 허용하는 대상업무가 너무나 넓고 확장성이 크다. 파견법 5조1항은 “근로자파견사업은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를 제외하고 전문지식·기술·경험 또는 업무의 성질 등을 고려해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무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업무를 대상으로 한다” 정도로 돼 있다. 반면 굳이 제한업무를 협소하게 네 가지만 열거 규정하면서 기타 시행령으로 정할 수 있게 했는데, 이 제한업무에 해당하지 않으면 사실상 허용되는 것으로 해석되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파견기간은 2년으로 제한했으나 2년 초과시 사용자에게 고용‘의무’만을 부과해서, 예전 파견법의 고용‘간주’(의제)보다 노동자 권리확보를 훨씬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상시·지속업무이고 같은 일을 하는데도 누구는 정규직, 누구는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기간제·단시간·파견·하청)으로 한 공간에 마구 섞여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노동자들끼리도 스스로 말하지 않는 이상 타인의 지위를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본인의 고용형태를 헷갈리는 경우도 많은데 하청 간접고용인지 기간제인지 파견직인지 그도 아니면 단순 용역(도급)계약인지 모를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한 작업장 안에 혼재하기 때문이다. 그냥 돈 주는 대로 받고, 나가라면 나가는 식으로 서로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노동이 아니다. 헌법 10조 행복추구권이 명령하는 노동할 권리, 적극적인 직업선택의 자유 등 인간으로서 존엄할 권리를 박탈하는 제도다. 노예제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현행 비정규직 관련법들은 노예제로 향하는 길이다.

이런 이유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0월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을 확정하고 2018년 상반기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기간제법과 파견법 개정을 약속했다. 상시·지속업무와 생명·안전업무에 정규직 고용을 의무화하고 계절적 사유나 임신·출산·육아처럼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비정규직을 사용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그 이후 법제화와 관련해서 한 일이 없다.

국제노동기구(ILO)·유럽연합(EU)·프랑스·독일 등은 권고와 법률을 통해 비정규직 근로계약은 예외적인 것으로 일시적인 업무에 한해서만 허용하며 정규직 고용이 원칙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노동안정성은 인간존엄 및 행복추구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의된 ‘비정규직 사용제한 4법’은 당연히 국회를 통과해야 하고 나아가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과 노동 3권 보장,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원청 사용자성 인정도 이번 기회에 함께 입법돼야 한다. 이로써 모든 노동자가 살맛 나는 사회로 한 걸음 더 가까워질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노동존중” 대선공약을 지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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