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현대·기아자동차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라고 하면 '아직도?'라거나 '또?'라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현대·기아차가 특별채용을 하고 있으니, 해결된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김수억(44·사진)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이 핏기 없는 얼굴로 씁쓸하게 웃었다.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 천막농성장에서 만난 김 지회장은 이날로 19일째 곡기를 끊고 있다. 누군가는 "끝난 거 아니었냐"고 묻는,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촉구하면서다.

10개월 만에 다시 단식농성

김 지회장은 지난해 9월에도 서울지방노동청에서 단식농성을 했다. 같은해 8월 고용노동부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가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관련 노동부에 내린 권고 이행을 요구하며 시작한 농성이었다.

2010년 대법원이 현대차의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씨 불법파견을 인정한 이후, 9년간 법원은 현대·기아차 관련 재판에서 자동차 업종의 거의 모든 공정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고용노동행정개혁위는 이런 법원 판결에 따라 현대·기아차에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노동부에 권고했다.

18일간 이어진 현대·기아차 비정규 노동자 250여명의 집단 단식농성 끝에 지난해 10월 노동부는 중재안을 마련했다. 현대·기아차 사측과 정규직 노조·비정규직지회가 대등한 지위에서 교섭하되, 필요하면 사안에 따라 현대·기아차 사측과 비정규직지회 간 직접교섭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노동부가 고용노동행정개혁위 권고사항에 기초해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하겠다는 내용도 중재안에 들어갔다.

해묵은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대등한 지위에서 교섭'도, '직접교섭'도 이뤄지지 않았다. 기아차에서 노사 상견례가 한 번 있었을 뿐이다. 현대·기아차는 "특별채용을 전제로 해야 교섭에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사이 검찰은 지난달 박한우 기아차 사장 등을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하면서, 자동차 생산공정에 직결되는 업무에 대해서만 불법파견 결론을 내렸다. 직접생산공정이 아닌 생산관리·출고·물류 등 71개 공정은 불법파견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노동부는 최근 '고용노동행정개혁위 권고'가 아닌 '검찰 기소'에 기초해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지난해 12월 식당·청소·세탁업무를 제외한 전 공정을 불법파견으로 보고,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던 노동부가 돌연 검찰 기소 내용에 따라 직접고용 시정명령 범위를 축소한 것이다.

시정명령 미루는 노동부

당초 이달 내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준비하고 있던 노동부는 "대상자 선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발표를 미루고 있다. 김 지회장은 "노동부가 눈치 보기를 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2017년 4월 수사전담팀을 구성해 3개월간 기아차 화성공장 현장조사와 사내하청업체 29곳을 조사했습니다. 당시 현대그린푸드(식당), 5S(청소), 표성(청소), 경성물류(세탁) 4개 업체를 제외하고 나머지 25개 업체 전부를 파견법 위반으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어요. 그때 이미 불법파견 공정과 사람까지 특정해 (검찰에) 넘겼는데, 아직도 직접고용 시정명령 대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말이 안 됩니다."

노동부는 노사(기아차-정규직노조) 합의로 특별채용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체 공정에 대한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리기가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매일노동뉴스>에 밝힌 바 있다.

"노사합의는 노동부가 책임과 의무를 방기하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회사가 불법을 저질렀으면 노동부는 행정력을 동원해 불법을 시정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더욱이 노사 당사자들이 해결하고 있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정작 당사자인 비정규직지회는 특별채용을 반대하고 있고, 회사와 아무런 논의도 못 하고 있습니다."

2004년 노동부는 현대차 사내하청 127개 업체와 9천234개 공정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이듬해 기아차에도 유사한 판단을 내렸다. 2010년 이후 10차례에 걸쳐 법원이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사용은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하자 현대·기아차는 정규직노조와 합의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특별채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사내하청업체 근속 일부와 이들이 정규직이었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 차액을 포기하고, 모든 소송은 취하해야 특별채용에 응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차는 지금까지 7천50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특별채용했고, 지난해 1천49명을 특별채용한 기아차는 올해까지 1천300명을 추가 채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까지 1천700여명의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특별채용됐다.

일각에서는 '특별채용으로라도 정규직이 되는 게 낫지 않냐'는 시선이 있는 게 사실이다. 김 지회장은 "중요한 건 특별채용을 당사자인 비정규직들이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채용을 반대하는 이유는 불법파견 사용자에게 면죄부를 주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불법적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한 기간 동안의 체불임금을 지불해야 하지만, 특별채용을 하면 주지 않아도 됩니다. 근속도 절반만 인정하죠. 가장 큰 문제는 특별채용에 응시하려면 불법파견 소송을 취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회사가 피해 당사자들의 권리까지 박탈하고 나서야 채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무법자들이 어딨습니까."
 

▲ 정기훈 기자

"재벌 불법, 먼저 포기하거나 용인하지 말아야"

김 지회장은 "현대·기아차가 사내하청 노동자 8천여명을 특별채용하면서 체불임금, 퇴직금, 각종 복리후생비까지 세이브(절감)한 비용을 따지면 아마 수조원이 될 것"이라며 "이런데도 현대·기아차는 특별채용이 비정규직들에게 베푸는 시혜라도 되는 듯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고, 노동부는 직접고용 시정명령을 내리지 않는 근거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지회장은 노동부가 제대로 된 입장을 밝힐 때까지 단식농성을 이어 가겠다고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인 이인영 의원과 지난해 노동부 장관 시절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사건 관련 미온적 대응에 유감을 표명했던 김영주 의원에게 면담을 요청해 입장을 묻겠다는 계획이다. 20일에는 현대·기아차 6개 공장 비정규직지회 공동파업을 예고했다.

김 지회장은 현대그린푸드 최저임금 문제 해결도 요구하고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직격탄을 저임금 노동자들이 맞고 있다고 했다. 현대그린푸드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직후 올해 1월부터 두 달마다 주던 상여금을 매월 지급하기 시작했다. 그는 "현대그린푸드 현대차 남양연구소 관리자가 식당노동자들에게 했다는 '문재인 대통령이 시킨 거다. 정부를 원망하라'는 말에 모든 부조리가 압축돼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차보다 기아차 현대그린푸드가 더 심해요. 거긴 단체협약으로 상여금을 두 달에 한 번 주기로 돼 있는데, 회사가 일방적으로 상여금을 쪼개 지급했어요. 노동부가 단협 위반이라며 시정명령을 했는데도 묵살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현대그린푸드를 노동부에 형사고소했는데, 아직까지 기소의견으로 송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 지회장은 "재벌의 불법에 눈 감지 말자"고 했다.

"내로라하는 재벌이 15년 동안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걸 온 사회가 다 알고 있는데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차피 재벌의 불법은 처벌 못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어떻게 비정규직 없는 사회,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할까요. 재벌의 불법파견만큼은 한국 사회와 서민들의 삶을 위해서도 반드시 처벌하고 시정해야 합니다. 제발 법대로 합시다. 재벌의 불법, 우리가 먼저 포기하고 용인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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