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필자는 이 칼럼 1월14일과 28일자 두 번에 걸쳐 문재인 정권의 행보가 모순적임을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주로 경제적 측면에서 문재인 정권이 친자본과 친노동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겉으로는 친노동이지만 속으로는 친자본 정권임을 폭로·비판했다.

문재인 정권은 대북(안보)정책에서도 모순적·이중적 성격을 보여줬다. 지난해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선언에서 북한과 함께 민족의 평화와 통일을 외치더니, 올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로는 대북 적대정책으로 표변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말에 부합하게 전체 한반도 차원에서 동시에 비핵화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 제재를 해제받으려면 북한 비핵화부터 먼저 실시하라고 북측을 압박하고 나섰다. 지난 5일부터 전시작전권을 미국으로부터 반환받기 위한 준비라는 구실로 한국군 대장이 지휘하는 한미연합군 대북침략전쟁을 연습하고 있다. 11일부터 북한과의 전면전을 연습하고 이어 북한 수복 이후를 상정한 ‘북한 안정화 작전’까지 연습한다.

또 하나는 외교 분야다. 문재인 정권은 지금 일본과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다.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적 첨단소재 수출규제를 비롯한 화이트리스트(수출우대국가) 배제를 기회로 삼아 일본을 반대하고 넘어서는 반일·극일 외교를 펼치고 있다. ‘의병’ ‘죽창’ 운운하는 데에서 이런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점만 보면 문재인 정권은 대외적으로 민족적 이해 실현에 적극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현재의 식민지 강점자인 미국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인다. 미국 정치인 가운데서도 가장 국수주의적인 트럼프 정권에 대해 우호적인 정도를 넘어 굴종하고 있다. 미국의 요청에 따라 베네수엘라 꼭두각시 가짜 대통령 과이도를 승인했고, 머지않아 호르무즈 해협에 군대를 파병하려 한다.

친미·반일 민족주의, 이것이 문재인 정권의 모순적인 진면목이다. 과거의 제국주의 지배에 대해서는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며 대대적으로 민족감정을 선동하면서, 현재의 제국주의 지배에 대해서는 극심한 사대주의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민중의 민족감정을 정권유지를 위해 이용할 뿐 민족의 참된 이해관계를 저버리는 것은 가짜 민족주의다.

이와 같이 문재인 정권의 정책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내적으로 추구되는 것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점에서 독특하다. 이런 독특함은 변혁·혁명운동의 대의를 배반한 인물들이 정권 실세로 포진해 있는 데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실제로는 현 지배체제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겉으로는 ‘운동권’으로서 노동자·민중 혹은 민족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위장한다. 이들은 그런 ‘운동권 정권’ 분장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고, 나아가 자신의 정책을 지지하도록 대중을 동원한다. 이런 정치공학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 최근 전개되고 있는 한일 무역·경제전쟁이다.

한일 경제전쟁에는 주목할 지점이 또 하나 있다. 한일 경제전쟁은 왜 일어났으며, 그것의 성격은 무엇이며, 노동자·민중은 이 경제전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라는 지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 경제전쟁이 문재인 정권의 대일 민족주의 정책에 대한 일본 아베 정권의 보복으로 발생했다고 말하고 있다. 아베 정권 자신이 그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런 이유 때문이라면 아베 정권의 행보는 이해하기 어렵다. 징용노동자 배상 판결과 일본기업 자산에 대한 압류는 심각한 외교적 문제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우방국에 전면적인 경제전쟁을 도발하는가? 또 남한 독점자본의 행보도 마찬가지다. 한국 법원의 징용노동자 배상 판결이 반도체 소재 공급규제의 진정한 원인이라면 반도체 재벌 총수들까지 나서서 ‘긴장은 하되 두려워하지 말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격려성 발언을 하는가?

이 전쟁은 정치적 목적의 수단으로 행해지는 경제적 전쟁인가, 아니면 경제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행해지는 정치적 전쟁인가? 겉보기에는 전자의 경우인 듯하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후자의 모습이 발견된다. 우선 경제전쟁을 도발한 첫 조치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관련 3개 핵심 소재 수출규제라는 점이 주목된다. 일본은 지금 미국과 협력해 한국의 세계 반도체산업 지배에 도전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의 도발 … ‘3차 반도체 전쟁’의 서막”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정학의 미래(Geopolitical Futures)라는 연구단체의 연구자 필립 오처드는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20세기 후반부에, 첨단 기술부품이나 기계·소재들이 일본으로부터 한국으로 무한정 수출된 사실과 더불어 일본의 도움으로 인해 한국의 가전제품과 자동차, 그리고 조선 같은 분야가 크게 발전했다. (…)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일본이 ‘잃어버린 수십년’의 진창에서 헤매고 있을 때 이 분야에서의 한국 기업들의 실적은 일본의 경쟁기업들을 뛰어넘었다. (…) 이 기업들은 부품 공급사슬을 점점 더 중국을 경유하는 쪽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 그러나 한국의 제조업 성장은 모든 부품의 공급사슬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 결과적으로 한국은, 시장점유율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 중국과 비슷한 처지에 있지만, 여전히 부품 공급 면에서는 외부에 의존해야 하는, 그리고 그 외부가 잠재적으로 적대적인 상대국이 될지도 모르는 처지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지금 일본과 한국의 경제전쟁은 자본주의 상호 간의 국지적 헤게모니 쟁탈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와 그것을 좇아가는 남한 아제국주의 간의 전쟁, 노동자는 이 자본 상호 간의 전쟁에 자기 모국 자본을 위해 복무해서는 안 된다.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아니며 스스로 아제국주의로 나서고 있는 지금에 있어서는 분명히 그렇다. 독점자본주의 나라의 노동자는 오히려 상호 간의 경제전쟁을 구실로 노동자 착취를 강화하려는 자국 독점자본과 전쟁을 해야 한다. 지금은 일제 식민통치 시대가 아니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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