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영훈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오늘)

“나도 퇴직금 좀 타 먹을 수 있을까?”

어떤 어르신께서 본인도 퇴직금을 받을 수 있냐고 물어 오셨다. 유독 “타 먹는다”는 표현이 기억에 남았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월 60시간 이상 1년 이상 일하셨다면 받을 수 있다고 답변드렸다. 조금 더 얘기를 나눠 보니, 어르신께서는 가정집에서 가사노동자로 일한 분이셨다. 가사사용인에게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이 적용되지 않아 퇴직금을 받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다시 답변드렸다. 상담은 거기서 사실상 끝났다. 어르신께서는 아쉬워하며 몇 차례 더 하소연하셨고, 나는 법 뒤에 숨어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는 그날 있었던 일을 아내에게 재잘거리던 평소 습관대로, 그 어르신 이야기를 꺼냈다. 1년 이상 일했는데 하필 가사노동자로 일해 퇴직금을 받을 수 없는 분이 상담을 하고 가셨다고. 그런데 그분이 퇴직금을 “타 먹는다”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게 뭔가 바라서는 안 되는 부정한 것이나 요행을 바라는 것 같아 조금 반감이 들었던 게 사실이라고. 그러자 아내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노동자들이 퇴직금 받기가 얼마나 어려우면 그렇게 말씀하시겠냐!”

그 순간 어미 새의 큰 부리에 못난 입을 쏘인 것 같은 당혹감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근기법을 공부할 때 퇴직금의 법적 성격을 최근 판례는 ‘후불 임금’으로 보고 있다고 배웠다. 근로계약 기간 중 받지 못한 임금을 퇴사 후 나중에 받는 것이 퇴직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영세 자영업자 밑에서 일한 비정규·비공식 노동자들이 퇴직금을 받는 것은 요행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고용노동부 임금체불 진정사건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퇴직금 미지급 건이다.

퇴직금은 이전에 제공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다. 그런데 어떤 사용자들은 1년 이상 노동하고 퇴사한 노동자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는 것을 마뜩잖게 여긴다.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심지어 퇴직금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용자들도 있다.

사실 그것의 법적 성격이 오롯이 후불 임금에 있다면 월 60시간 이상, 1년 이상 계속근로, 가사사용인 제외 등의 지급요건을 달리하는 것 역시 노동자 입장에서는 마뜩잖은 일이다. 지난해 초 필자가 이 지면을 통해 울분을 토하며 썼던 학원강사 퇴직금 미지급 건은 당시 노동청에서 체불임금 확정과 근기법 위반사항 시정명령 조치가 이뤄졌으나 여전히 퇴직금을 받지 못했으며, 현재까지도 민사와 형사 법원에서 법적 다툼이 계속되고 있다. 첫 진정이 들어간 지 벌써 2년가량이 흘렀다. 퇴직금 받기가 이렇게 힘든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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