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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산책
공연 보러 나선 길, 아이는 광화문광장에 나부끼던 태극기에 관해 물었고 엄마 아빠 말이 허둥지둥 길었다. 거기 곳곳 내걸린 성조기와 파면당한 전 대통령의 사진 현수막까지 설명하느라 더운 날 진땀을 뺐다. 아이는 궁금한 게 많았는데, 그건 대개 아빠도 여태 명쾌한 답을 찾지 못한 것들이었다. 줄줄 흐르던 땀이 입으로 들었다. 씁쓸했다. 대형 스피커 통해 울려 퍼지던 온갖 저주의 말과 갖가지 욕설을 가만 듣던 아이가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말 고르느라 달래는 손짓만이 바빴다. 말할 권리 따위를 곱씹다가 끝내 말하지 못했다. 후드득 소나기가 쏟아졌다. 우산 없는 사람들이 뛰었다. 광장 분수에서 홀딱 젖은 아이들이 더 신나 방방 뛰었다. 지켜보던 엄마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높았다. 젊은 연인이 세월호 추모 전시관에 나란히 앉아 다큐멘터리를 봤다. 영상 속 엄마가 먼바다를 살피고 있었다. 옆자리 둘러앉은 사람들이 리본을 만들고 고리를 꿰었다. 태극기 든 사람이 거길 지나다 욕 붙여 시비를 걸었다. 갈 길 가시라고, 전시관 지키던 사람이 익숙하게 응대했다. 습도가 높았고, 불쾌지수가 잔뜩 높은 날이었다. 마술과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연극을 보던 아이는 뭐라고 하는 거냐고 자꾸 물었다. 영어 연극인 줄을 미처 몰랐던 아빠는 허둥지둥 둘러대느라 또 진땀을 뺐다. 아이가 궁금한 건, 아빠도 여태 잘 모르는 것이었다. 극장 외벽엔 독립군 얘기 다룬 음악극 현수막이 붙었다. 8월, 광복절이 가까웠다. 유부초밥을 좋아하는 아이와 함께 일식 뷔페를 찾았다. 직원이 무척이나 친절했다. 일식과 일본산 차이 따위를 고민하며 미소장국을 마셨다. 나오는 길에 행진하는 시위대를 만났다. 지난 촛불집회를 기억하는 아이가 행진에 합류했고, 아빠는 일·가정 양립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아베는 누구며, 불매운동은 또 뭔지 궁금한 것도 참 많은 아이와 밤늦도록 광장을 걸었다.

정기훈  photo@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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