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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출규제 대응, 노동자 건강·생명과 맞바꿀 것인가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한국 사회는 지금 일본 불매운동으로 뜨겁다. 시민들은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며 적극적으로 불매운동에 나서고 있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즐겨 사던 식료품을 사지 않고, 일본여행을 가지 않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화살이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다. 바로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된 문제로 말이다.

일본 불매운동이 확산된 이유는 7월 초 일본 정부가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한국 수출을 규제한다는 조치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위험한’ 대응책을 내놓았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7월22일 “수출규제 품목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 제3국 대체조달 관련 테스트 등의 관련 연구 및 연구지원 등 필수인력에 대해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반도체 제조 소재 3개 품목의 국산화를 위한 업무를 대상으로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적용을 면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한 것이다. 게다가 화학물질 관련 규제마저 완화하겠다고 나섰다.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를 ‘재난’으로 인정하며 취한 연장근로 허용, 화학물질 관리와 관련한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이 과연 타당하다 할 수 있을까. 공익적 목적으로 재해로 붕괴된 건물을 복구하는 건설노동자나 인명 구조를 하는 소방관, 폭염·한랭 계절에 복구·구조작업을 하는 공무원 등의 노동시간 연장과 이번 수출규제 품목 개발을 위한 연장근로는 엄연히 다르다. 사회적으로 필요로 하는 노동에 따라 연장근로가 고려되는 것이고, 이 역시 제한적이고 특별히 관리돼야 한다.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은 노동자 건강에 유해하기 때문에 규제한다.

근로기준법은 연장근로와 관련해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 노동부 장관 인가와 노동자 동의를 받아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게끔 돼 있다. 일단 허용되면 최장 3개월 동안 주당 연장근로시간(12시간)을 초과한 장시간 노동이 가능해지고, 3개월 단위로 기간 연장도 신청할 수 있다. 사실상 장시간 노동의 무법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반도체 핵심소재 개발은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고, 더군다나 성공한다는 보장도 어렵다. 그렇다면 관련 노동자들은 기약 없는 반도체 핵심소재 국산화를 위해 언제까지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일까. 갑자기 노동시간을 늘린다고 해서 핵심소재 국산화가 정말 가능한 일일지 되묻고 싶다.

주 52시간 상한제가 시행된 지 불과 1년이 좀 넘었다. 아직 전면적용하지도 않았다. 이때도 정부는 산업계의 충격을 완화시켜 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기업 규모별로 시행시기를 차등 적용했다. 정작 법의 보호망이 절실히 필요한 소규모 사업장은 법 적용까지 1~2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여기에 더해 최근 정부와 국회는 탄력근로제 확대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 무제한 노동이 가능한 특례업종 5개가 남아 있다.

한편 노동부 장관은 주요 물질을 다루는 업체가 굉장히 적기 때문에 한정된 수의 기업에 특별연장근로가 적용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경영계는 각종 규제 조치와 노동조합이 제조업 경쟁력을 발목 잡고 있다며 법인세 인하·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등 전 영역에서 규제완화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화학물질 관련 규제완화까지 주장하는 것은 경북 구미 불화수소 유출 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 각종 재난·참사를 경험하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오랜 시간 사회적 논의와 노력을 거쳐 만든 관련법마저 훼손할 우려가 크다.

올해 초 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SDI 연구원이 했던 일이 바로 반도체용 포토레지스트(감광액) 재료 개발업무였다. 포토레지스트는 발암물질인 벤젠·포름알데히드 등을 반응 부산물로 발생시킨다는 점이 확인된 유해물질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토레지스트가 사용되는 공정은 반도체 공장에서도 가장 직업병 위험이 높은 것으로 꼽힌다. 일례로 1995년부터 미국에서 사용이 금지된 성분이 2009년 삼성과 SK하이닉스 한국 공장의 포토레지스트에선 검출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174명의 반도체 노동자가 사망한 삼성은 여전히 사용한 화학물질이 ‘영업비밀’이라며 최소한의 정보조차 밝히고 있지 않다.

도대체 한국 사회에서 무엇이 재난일까.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일까, 아니면 한 해 노동자 2천명 가까이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일일까. 2017년 과로사로 죽어 나간 노동자가 354명이고, 지난 12년 동안 산재로 인정된 과로사만 4천428건이다. 게다가 교사·공무원·특수고용 노동자의 과로사와 과로자살은 산재통계조차 없다. 확인되지 않는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렇게나 많은데도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조치를 이유로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희생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는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에 대해 정부가 경각심을 갖는 것이 우선 아닐까.

이나래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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