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강민 민주노총 20기 중앙통일선봉대 대장
7월 초부터 일본 아베 정권의 경제침략이 시작됐다. 일본 정부의 적반하장 행태에 맞서 범국민적으로 자발적인 반일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이런 기류를 불편하게 보는 경향도 있는 모양이다.

예컨대 △국가주권은 특정시대(자본주의 형성 이후)의 산물이고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발전의 필연적(자연사적) 결과이며 식민지 쟁탈 또한 그 결과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형성되기 전인) 20세기 초까지의 식민지에 대해 합법·불법을 따질 필요가 없고 △일본의 식민지배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일단락돼 더 이상 문제 삼아서는 안 되며 △현재 미국이 주도하는 금융세계화에 자발적으로 예속된 문재인 정부가 반일선동에 나서는 것은 (정파적이거나) 비겁하다는 주장이다.

다소 거칠지만 이런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필자는 이런 인식에 우려를 표한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고 노동계급 이익에 복무하는 반일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제국주의의 대외침략이 필연적이며 국가주권이 특정시대의 산물이라는 시각은 서구 민족주의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견해로 우리 상황에 그대로 대입할 수 없다. 이런 견해는 결과적으로 일제가 당시 조선을 식민지화한 것은 주권이 없는 국가를 병합했다는 것으로 일제의 식민지배와 침략에 면죄부를 주게 된다.

일본은 한반도를 비롯해 동아시아의 많은 나라에 대한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해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을 한 적이 없다. 사과와 배상도 없이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일단락하고 현재와 미래의 문제에 집중하자는 것은 제국주의 가해자 논리에 다름 아니다. 한일기본조약은 일본을 동아시아 지배의 대리인으로 내세운 미국의 강요와 조정에 의해 매국적인 박정희 정권이 맺은 굴욕적인 협약이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국민의 극렬한 반대에 계엄령까지 선포하며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했다.

이런 한일기본조약의 근본적인 제약에도 식민지배 시기의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대한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소멸시킬 수 없다는 것이 국제법 학계의 대다수 견해다. 그래서 일제에 의해 성노예를 강요당한 여성과 노예노동을 강요당한 노동자가 일제에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당하다. 강제동원에 대한 태도는 지금 일본 정부의 과거사 청산에 대한 진정성을 가늠하는 잣대이기도 하다.

이번 사안이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의 신군국주의화와 대외침략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이다. 아베 정권은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일본을 보통국가(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겠다고 공언한다. 이를 위해 혐한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과거사 청산에 대한 국제여론을 무력화하기 위해 강제동원 노동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문제 삼고 있다. 한국의 핵심 경제부문에 대한 타격을 통해 문재인 정부를 궁지에 몰고 친일정치세력의 입지를 넓혀 주려는 의도가 포함돼 있을 것이다.

반일투쟁이 결국 문재인 정부를 도와주거나 노동자 투쟁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 문재인 정부 지지율은 상승하고 있다. 여기에 편승해 해당 소재부품산업에서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를 검토하는 등 반노동자적 정책도 내놓고 있다.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를 대상으로 적산불하 특혜로 시작해 단기간의 이익에만 골몰해 일본 기술을 모방하고 의존하면서 한국 경제를 기형화시키고 위기에 빠트린 재벌에 먼저 책임을 묻게 해야 한다. 또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를 비롯한 한일관계의 전면적 전환 등 근본적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촉구하며 투쟁해야 한다.

국민의 분노가 문재인 정부에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만을 따지는 협소한 계급적 이해관계에 매몰되거나 아베 규탄촛불과 불매운동 등 국민의 자발적인 행동을 폄훼하는 행동은 옳지 않다. 오히려 아베 정권의 파렴치한 과거사 부정과 신군국주의화, 한국에 대한 내정간섭, 경제침략에 함께 분노하고 선도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이는 노동계급이 민족과 민중의 이익을 지키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노동운동 원리에도 부합한다.

현 시기 노동자 반일투쟁은 식민지 시기 강제노동에 내몰려 착취당하고 희생당한 선배노동자의 한을 풀기 위한 투쟁이며, 일본의 제국주의 부활을 막아 동북아평화를 지키는 투쟁이며, 노동운동의 국민적 지지를 확장하는 투쟁이다. 그렇기에 민주노총은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고 강제동원에 대한 사죄 및 배상 투쟁을 전개한 것이다. 우리 역사를 바로 세우고 노동계급 이익에 복무하는 반일투쟁에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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