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수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화평 대표·경영학박사)

대상판결 : 서울동부지법 2019. 6. 20. 선고 2018노1443 판결



1. 영화 스태프 지위를 둘러싼 혼란 

1) 본래 근로자인 영화 스태프

영화 <의리적 구토>(1919년)를 최초의 한국영화로 인정하는 영화사 기준을 따르면 한국영화 역사는 올해로 100년을 맞았다. 영화제작 현장에서 촬영·조명·연출·제작 등 여러 부서의 ‘조수(스태프)’라는 직업은 영화제작이 시작된 때부터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일반적으로 영화 스태프는 제작사가 정한 제작 스케줄에 따라 정해진 장소와 시간에 노무를 제공하고, 제작사는 그 노무제공을 수령하고 보수를 지급한다. 스태프가 약정한 노무를 제공하지 않고 타인으로 대체하는 행위, 계약기간 동안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행위 등은 엄격히 금지된다. 다만 제작사는 2000년대 중반까지도 노무관리 편의를 위해 ‘키 스태프(key staff)’로 불리는 감독·기사급과 이른바 ‘통계약’(한 부서의 팀원과 키 스태프를 묶어서 하는 계약) 형태로 계약했고, 제작사가 스태프 및 키 스태프(감독급)와 개별적으로 계약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또 제작사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할 요량으로 키 스태프와의 ‘통계약’을 도급 또는 위탁계약이라는 이름으로 작성했고, 스태프에 대한 보수는 착수금과 잔금 형태로 지급했다.

이런 계약관행은 명목적·형식적인 것이었고, 제작현장의 스태프가 전속성과 사용종속성 측면에서 근로자성이 매우 높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바였다. 2005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영화·TV 스텝진 근로조건 실태 및 관련 제도 연구’를 보면 스태프의 근로자성은 다른 비교집단, 즉 근로자성이 높은 일반 근로자집단과 비교할 때 더 높은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키 스태프(감독급)의 근로자성도 전체 스태프 평균값과 유사할 정도로 높은 사용종속성과 전속성을 나타냈다.

이런 실태를 반영해 영화 스태프는 관련 법령에서 근로자로 인정됐다. 근로기준법상 최초로 근로시간에 관한 특례조항이 만들어진 1961년 근로기준법 47조의2에서 ‘영화제작 및 흥행업’에 종사하는 스태프들이 특례 대상에 포함됐는데 이는 스태프들이 ‘근로자’임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또한 1998년 시행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시행령 별표에 따르면 ‘영화나 비디오 제작, TV 방송 등에 쓰일 각종 영상의 녹화장비를 조작하는 자(보조업무에 한한다)’를 파견대상업무로 규정했으며, 이것도 영화 스태프의 근로자성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최근에는 영화 스태프를 근로자로 인정하는 직접적인 법률도 만들어졌다. 2015년 개정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영화비디오법)은 영화 스태프를 ‘영화근로자’로 규정하는 한편 제작사가 근로조건 명시의무(3조의4)를 위반하면 처벌하도록 했다. 동 법은 표준계약서 사용을 권장했고(3조의5) 이는 제작현장의 근로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이 밖에 안전사고로부터 스태프 보호(3조의6), 임금체불에 대한 제재(3조의8) 등 스태프가 근로자임을 전제로 하는 여러 조항이 포함됐다.

2) 고용노동부와 국민권익위원회의 근로자성 부인

그러나 노동부는 영화 스태프의 근로자성을 부인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2004년 국정감사에서 김영주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영화 스태프가 근로자에 해당하는가?”라고 질문하자 노동부 장관은 명확한 답변을 하지 못한 채 “계약 관계가 상당히 중층적인 구조고, 기본적인 성격이 임금을 대가로 하는 노무 제공이지만 일종의 도급적인 형식이 내용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부분은 상당히 중층적이고 복잡한 구조로 돼 있기 때문에 실제 그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보기로 하겠다”고 답변했다. 스태프의 계약관계가 중층적 도급관계이므로 근로자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인데, 근로자성은 도급구조와 관계없이 인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본질을 벗어난 답변이었다. 이처럼 당시 노동부의 모호한 태도는 신고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 스태프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뿐만 아니라 2012년 국민권익위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권익보호 방안’에 의하면 ‘영화산업종사자 스태프’는 36개 직종과 함께 근로자 아닌 소위 ‘특고’로 규정됐다. 권위 있는 연구기관의 보고서에서도 영화 스태프를 근로자 아닌 ‘특고’로 규정하는 경우가 있었다. 2009년 노동연구원의 ‘프리랜서 고용관계 연구’를 보면 “영화제작 스태프 계약은 특정 사업체에 고용돼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당 계약으로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계약의 단가를 조정하는 방식을 취하는 ‘전형적인 프리랜서 계약 방식’을 보여 주고 있다”고 기술했다. 스태프들이 노무를 제공하는 구체적인 실태를 살펴보지 않은 채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계약관계만을 근거로 ‘프리랜서’로 단정해 버린 것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같은 기관의 2005년 연구 결과와도 배치되는 것이었다.

2. M제작사 임금체불 진정사건

1) 노동부 : 진정사건에서 근로자성 부인

대상판결은 2017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동부지청에 접수된 M제작사의 임금체불 사건에서 비롯된다. 당시 담당 근로감독관은 스태프 19명이 제기한 진정사건을 ‘불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스태프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볼 수 없고, 따라서 임금체불(근로기준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이 사건에서 담당 감독관이 검찰에 제출한 의견서를 보면 제작사(피진정인)가 지휘·감독을 행사하지 않았고 피진정인이 근무장소 및 근무시간에 구속을 받는다고 보기 어려운 점, 보수가 근로의 대가이기보다는 영화제작의 완성을 목적으로 지급되는 점, 사업장 복무규정을 적용받지 않고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스태프들을 피진정인과 도급관계에 있는 자로 판단했다. 특이한 것은 진정인(스태프)들의 계약은 통계약이 아닌 개별계약 형태인데도, 제작사와 스태프 사이의 계약을 ‘개별적 도급계약관계’에 있는 자로 봤다는 점이다. 결국 M제작사의 제작현장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스태프들이 모두 도급사업자들이었다는 것인데 그 부당함에 대해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2) 검찰과 법원 : 근로자성 인정

노동부의 불기소의견에 대해 검찰은 노동부 의견을 무시하고 M제작사 대표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처벌했다. M제작사 대표가 검찰의 처분에 불복하면서 형사재판이 시작됐다.

서울동부지법 1심 판결(2018고단1331)과 2심 판결(2018노1443)은 모두 스태프의 근로자성을 인정했고 이 사건은 M제작사 대표가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제작사 대표의 근로기준법 위반을 인정했다. 우선 제작사(피진정인)가 지휘·감독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스태프들이 사업장(제작사)에서 직접 업무지시를 받거나 세부적 업무내용을 보고하는 경우는 없으나 이는 각 팀장(키 스태프)에게 업무내용에 관한 많은 재량이 부여돼 있기 때문이고 피고인(제작사 대표)은 각 팀장을 거쳐 프로듀서에게서 업무보고를 받는다고 봤다. 둘째 노동부는 제작사가 근무장소 및 근무시간에 구속을 받는다고 보기 어렵다고 봤으나, 법원은 프리프로덕션 기간에 스태프들이 회사가 제공한 사무실에 근무하고, 프로덕션 기간에는 회사가 월간 촬영계획표·일일 촬영계획표 등에서 근무지를 정했고, 근로자들이 근무장소를 변경할 재량은 없다고 봤다. 셋째 노동부는 스태프의 보수가 근로의 대가라기보다는 영화제작의 완성을 목적으로 지급됐다고 봤으나, 법원은 근로자들은 매월 고정된 급여를 받거나 정해진 총액을 받았을 뿐이며, 근로자들이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았으나 이는 피고인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판결했다. 아울러 최근 영화 제작자들과 근로자들 사이에 표준계약서 등을 활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 사건 사업장에서 노무를 제공한 스태프들의 근무형태가 다른 영화제작의 경우와 다르다고 보기 어려운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3. 결론

영화 스태프는 2006년부터 노동부에서 노조설립신고증을 받아 사용자단체와 산별단체협약을 체결했고, 표준근로계약서 사용이 매년 확대돼 왔으며, 2018년 스태프의 4대 보험 가입률은 73.1%(설문조사) 또는 89.7%(급여자료)로 나타났다(영화진흥위원회, ‘2018년 영화스태프 근로환경 실태조사’). 더구나 2015년 영화비디오법을 통해 표준보수지침 개발, 표준근로계약서 확산, 임금체불에 대한 제재 강화 등 다양한 노동권 보호 제도들을 시행해 왔다.

영화산업 주체들의 자발적 노력으로 근로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돼 가는 상황에서 2017년 노동부가 스태프들을 ‘개별 도급계약자’로 판단한 것은 수긍할 수 없고 당황스러운 일이다. 최근 영화제작 현장과 유사한 방송 드라마제작 현장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의 근로자성을 노동부가 인정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드라마제작 현장 근로감독에서 팀장급 스태프의 근로자성을 부인한 것과 관련해서는 영화제작 현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감독급 스태프들이 중간관리자로서 제작사의 지휘를 받아 하위 스태프의 노무 지휘를 맡고 있음을 고려하면 중간관리자인 팀장급의 근로자성을 부인한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 일을 계기로 문화산업 노동자들의 근로자성에 대한 판단기준이 새로 정립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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