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예슬 기자
“택배노동자는 경조사, 하다 못해 자식들의 입학식·졸업식 이런 것도 함께하지 못해요. 동료들은 늘 말해요. 아이들 어렸을 때 찍은 입학·졸업사진, 그 흔한 가족사진에도 가장의 얼굴이 없다고요. 휴가비 달라는 것도 아니잖아요. 폭염 속 장시간 노동을 하는 사람에게 단 이틀만이라도 휴가를 달라는 건데….”

5년차 택배노동자 박대희씨는 택배 일을 한 뒤로 여름휴가를 가 본 적이 없다. 휴가를 가면 동료가 그의 물량을 대신 처리해야 하는데 동료들에게 부담을 지우기 싫어서다. 용달기사를 써 업무를 대리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지만 일반 택배노동자가 평소 받는 배달수수료 800원의 곱절이 넘는 1천800원에서 2천500원의 건당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 택배노동자가 하루 평균 200여개 물량을 소화하니 하루 휴가를 얻으려면 최소 36만원을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박씨만의 일이 아니다. 대부분 택배노동자는 과로에 시달리지만 여름휴가를 쓸 수 없다. 위탁물량이 쌓이는 문제도 있지만 법적으로도 그들의 권리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은 택배회사와 위수탁계약을 체결한 특수고용직으로 노동자에게 유급휴가를 주도록 규정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한다.

택배연대노조와 전국택배노조가 참여한 택배노동자 기본권 쟁취 투쟁본부가 22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투쟁본부는 "택배노동자도 재충전이 필요하다"며 "8월16~17일을 ‘택배 없는 날’로 정하자"고 호소했다. 택배 없는 날은 ‘소비자-택배회사-온라인쇼핑몰·홈쇼핑’ 세 주체가 합심해야 가능하다. 소비자가 물건을 주문하면 쇼핑몰은 약정한 날짜까지 소비자에게 물건을 배달하도록 택배사에 주문하고, 택배사는 택배노동자에게 주문받은 물량을 배정한다. 이런 구조에서 소비자가 택배노동자 휴가를 감안해 배송 지연을 양해하고, 택배사와 쇼핑몰이 일정을 협의해야 택배 없는 날이 성공한다. 투쟁본부가 “택배사·홈쇼핑·온라인쇼핑몰이 동참해 달라”고 제안하는 까닭이다.

투쟁본부는 택배 없는 날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여름철 휴가기간에 통상 택배 물량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투쟁본부는 "2014년 7월 말 KGB택배가 그해 8월14일 접수한 물품을 18일 배달하기로 고객사에 사전협의를 구한 전례가 있다"며 "택배사들은 회사 차원에서 택배노동자가 여름휴가를 쓸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성욱 택배연대노조 수석부위원장은 "8월16~17일 택배 없는 날을 지정해 이틀만이라도 전국 택배노동자가 편히 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자 한다"며 "국민 여러분의 관심과 지지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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