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훈 여행작가

인도여행 하면 요가를 하면서 ‘옴~’을 내뱉으며 심신을 다스릴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하지만 인도여행의 실상은 정반대다. 끊이지 않는 경적소리와 공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뿌연 먼지, 헤아릴 수 없는 인파와 뜨거운 태양, 증발하는 아지랑이가 만들어 내는 혼돈이 인도여행을 표현하는 데 더 어울리는 말들이다. 게다가 워낙 땅덩어리가 넓은지라, 2~3주 휴가를 내고 어렵게 여행을 시작한 이들은 발걸음이 바쁘다. 뭄바이에서 출발해 북쪽으로 올라가 카주라호, 바라나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를 거쳐 뉴델리로 돌아오는 일반적인 인도 북부 여행코스도 3주에 맞춰 끝내려면 이틀을 멀다 하고 짐을 싸고, 옮기기를 반복해야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러려고 인도여행을 시작했나 하는 후회가 몰려든다. 바쁜 걸음에 지친 여행자들이라면 뭄바이에서 남쪽으로 눈을 돌려 고아와 함피를 다녀오라고 권하고 싶다. 고아는 인도에서 1970~1980년대부터 서양의 히피님들께서 개발하신 워낙 유명한 휴양지 해변이다. 하지만 함피는 다들 “거기가 어디?”라며 갸웃하는 곳이다. 함피는 고아에서 기차를 타고 7~8시간을 간 뒤, 버스를 타고 30분을 더 들어가면 나오는 시골동네다. 물론 그냥 시골동네는 아니고, 400~500년 전까지 인도 고대왕국 중 하나의 수도였던, 하지만 지금은 유적과 폐허만 남은 그런 동네다.

일단 터미널에서 내리면 곧바로 삐끼들이 따라붙는다. 함피 시내까지는 도저히 걸어갈 수 없으니, 차를 타고 가라는 거다. 100루피부터 시작해서 발걸음을 옮길수록 10루피씩 가격이 내려간다. 그렇지만 당황하지 말고 100미터 정도 더 걸어 내려와 큰길에서 왼쪽으로 살짝 돌면, 이런! 저만치 앞에 이 동네 랜드마크인 비루팍샤(Virupaksha) 사원을 배경으로 오른쪽으로 함피 동네가 보인다. 동네 입구까지는 걸어서 5~6분, 동네 안으로 파고든다고 해도 10~15분이면 족한 거리다. 이런 거리를 100루피짜리 차를 타지 않으면 마치 걷다가 쓰러지기라도 할 것처럼 삐끼질을 하다니! 역시 인도의 삐끼질은 ‘어벤져스’급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함피는 한 바퀴 찬찬히 둘러봐도 한 시간이면 족할 정도로 작은 동네다. 그 동네에 빼곡히 게스트하우스와 식당들이 들어서 있으니 잠과 밥을 해결하는 일도 간단하다. 이곳까지 와서 고대왕국의 유적을 안 볼 수는 없으니, 반나절 정도 시간을 내고 차를 대절해서 돌아보고 나면 이제 정말 할 일이 하나도 없다. 아까도 말했지만 동네가 너무 작아서 몇 번 돌고 나면 현지인들과 얼굴까지 익힐 정도다. 그러니 이제 남은 일은 시원한 그늘을 찾아서 그저 게을러지는 일뿐이다. 여행자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도의 다른 여행지와 같은 번잡함은 전혀 없고,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이상할 정도로 느릿느릿하다. 마치 무슨 게으름 마법의 결계라도 쳐진 것처럼.

함피에는 게을러지고 싶은 이들을 위한 세 군데 정도의 스폿이 있다. 가장 가까운 곳은 동네 입구에 있는 비루팍샤 사원 뒤쪽 언덕이다. 늦은 점심을 먹고, 해지기 한두 시간 전에 슬슬 걸어 올라가서 버려진 유적들이 만들어 주는 그늘에 자리 잡고 사원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에 최적의 장소다. 해지는 모습까지 보고 내려와 동네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비슷비슷한 밥을 사먹으며 하루를 끝낼 수 있다. 두 번째 스폿은 마팅가힐이라는 언덕. 언덕까지 30분은 올라가야 해서 게을러지기에 수고가 좀 필요한 곳이다. 하지만 오르는 바위 언덕이 너무 예쁜 데다, 길잡이를 해 주는 동네 개님이 있어서 힘든 줄 모르고 오를 수 있다. 꼭대기 부근 바위 그늘에 앉거나 누워서 아래를 바라보면 커다란 바위들이 아무렇게나 바닥을 뒹굴고 있는 묘한 장면과 마주하게 된다. 이런 바위들이 어디서 와서 이렇게 굴러다니나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인데,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보다 보면 어느새 멍 때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지막 세 번째 스폿은 강 건너에 있는 강남 스폿이다. 함피를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강 건너까지 식당과 게스트하우스들이 확장된 셈인데, 강북하고는 또 그 경치나 맛이 다르다. 게스트하우스를 겸하는 식당들이 강을 따라 주욱 늘어서 있고, 앉아 쉴 수 있는 자리들도 대부분 강을 향해 있어 에어컨 하나 없이도 시원한 강바람에 한나절 늘어지기 그만이다. 강북에 숙소를 정한 많은 여행자들은 한낮의 더위를 피해 점심을 이곳 강변 식당에서 해결하며, 맥주나 콜라 한 병씩을 테이블 위에 남겨 놓고 시간을 때운다. 물론 힘겹게 돌아가는 느린 와이파이를 붙잡고 씨름해야 한다 해도 그다지 불만스럽지는 않다. 애당초 그럴 줄 알고 와 있으니까. 이렇게 할 일 없이 며칠이나 있을까 싶겠지만, 함피의 게으름에는 한 번 맛을 들이면 쉽사리 헤어나기 힘든 중독성이 있다. 이곳을 나가면 또다시 혼돈과 고난의 인도 여행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여행자들의 몸뚱이가 본능적으로 이 게으름을 놓치기 싫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동네를 떠나는 버스에서까지 그 중독성은 이어져서 언젠가 한 번은 더 올 것 같다는 미련인지, 확신인지 모를 아쉬움이 내내 따라다닌다.

여행작가 (ecoc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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