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수 직업환경의학전문의(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며칠 전 한 노동자가 산업재해 상담을 하고 싶다며 진료실을 찾았다. 인근에 위치한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였다. 1주일 전쯤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업무를 하다가 넘어지면서 오른쪽 무릎을 땅에 부딪치고 양손으로 바닥을 짚었는데 그 이후로 오른쪽 무릎과 양쪽 어깨가 아팠다고 한다. 어지간하면 참아 보려고 했는데 너무 아파서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했다. 쉽게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관리자에게 얘기했더니 관리자가 산재를 신청하라고 관련 서류들을 줬단다. 이런 경우 산재가 되는지, 산재 신청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이 궁금해서 주변의 소개를 받아 진료실을 찾았다고 한다.

업무를 수행하던 중에 발생한 사고이고 3일 이상의 요양을 필요로 하는 상태니 당연히 산재 처리가 가능하다, 우체국 노동자들은 공무원 신분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공무원 신분인 노동자들은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상재해로 신청하면 되고,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면 된다, 환자 분은 입사 6개월차로 공무원 신분이 아니니까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하면 되겠다, 산재 신청은 저희 병원에서 전산으로 가능하고 환자분은 사고 경위서·동료 진술서 등 몇 가지 추가 서류만 준비해 주시면 된다, 이렇게 상담을 하고 있는데 그분이 대뜸 “혹시 일을 하면서 산재로 치료를 받을 수 있냐”고 물었다.

취업치료(근무병행치료) 제도가 있고, 뼈가 부러지거나 한 건 아니어서 업무 수행이 아예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고, 얼마 동안 치료를 잘 받으시면 후유증이 크게 남을 것 같지는 않아서 가능할 것 같긴 하다고 답했다. 그런데 업무 중 사고로 최초 요양 신청을 하면서 취업치료를 희망하는 경우가 그리 흔한 일은 아니기에 왜 그러냐고 물었다. 치료는 받아야겠는데, 본인이 일을 하지 않으면 그 업무가 동료들 몫이 되고(이를 ‘겸배’라고 한다), 그러면 동료들이 힘들어질 것이 뻔해서, 동료들에게 미안해서 차마 쉴 수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같이 일하던 동료 중 한 명도 일을 하다가 허리를 삐끗했는데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계속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그분을 진료했던 기억이 났다. 산재 처리라도 해야겠다고 해서 진단서를 발행해 드렸는데 아직까지 쉬지 못하고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산재 신청과 취업치료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고민해 보겠다며 돌아갔는데 아직 다시 오지 않았다. 아마 이분도 그 상태로 계속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주로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업무를 하는 우체국 노동자들에게 사고는 일상적인 일이다. 2013년 노동자운동연구소에서 실시한 ‘집배원 노동자의 노동재해·직업병 실태 및 건강권 확보방안’ 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 노동자의 51%가 업무수행 중 오토바이사고나 차량사고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이는 배달업무를 주로 하는 퀵서비스 종사자 등 다른 배달노동자들과 유사하거나 조금 더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공무상산재 처리를 했다고 응답한 노동자들은 16.7%에 불과했다. 자비치료(보험처리)를 한 노동자가 26.8%, 치료를 하지 않은 노동자가 9.3%였다. 일부 노동자들은 사고가 경미해서 치료를 받지 않았겠지만 훨씬 많은 노동자들이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공무상재해(혹은 산재)로 처리하지 못하고 자비치료를 했다. 심층인터뷰에서 확인된 바에 의하면 공무상재해(혹은 산재)에 대한 교육이 있긴 하지만 사고시 공무상재해를 먼저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게다가 실제 처리 과정에 들어서면 쉬쉬하는 내부 분위기가 형성되거나 개인과실로 몰아가서 재해노동자를 위축시키고 처리 과정 또한 미온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진료실을 찾아왔던 노동자처럼 사고가 났어도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차마 공무상재해로 처리하지 못하고 자비치료를 하면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많았다.

우체국 노동자들의 업무 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으나 막상 진료실에서 이런 상황을 겪고 나니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일을 하다 다치면 업무상재해로 산재 신청을 할 수 있고 일정 기간 일을 쉬면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의 업무 공백을 어떻게 메꿀 것인지는 당연히 사업주가 해야 하는 고민이고 책임이다. 우리나라에 산재보험제도가 도입된 지 반 세기가 지났고 1인 이상 사업장 모든 노동자들이,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심지어 중소 사업장 사업주들까지도 산재보험 적용을 받는 시대다.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는 동네 편의점 사장님도 알 만한 상식이 국가에서 운영하는 우체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일하다 다친 노동자들이, 아픈 자신의 몸을 돌보기도 힘든 이들이, 왜 동료 노동자들을 걱정해야 하는가? 왜 동료 노동자들에게 미안해야 하는가? 이런 일들이 민간 중소 사업장도 아닌 거대 국가기관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결국 인원 부족이 문제고 인력충원이 답이다. 얼마 전 우정사업 역사상 처음으로 우체국 노동자들이 파업을 예고하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이 쏠렸다. 파업 예정일 하루 전 교섭대표노조인 우정노조가 파업을 전격 철회하면서 파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우정사업본부와 우정노조는 집배원의 주 5일 근무와 업무 경감을 위해 위탁택배원 750명을 7월 중 배정하고, 직종 전환 등을 통해 집배원 238명을 증원하는 등 988명을 증원하기로 했다. 몇 년 전 우정사업본부가 약속했던 2천명 증원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아쉬운 결과다. 하지만 이 약속마저 또 지켜지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스럽다. 이번 약속뿐만 아니라 이전 약속까지 잘 지켜져서 더 이상 우체국 노동자들의 피가 묻은 택배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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