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2019년 7월1일부터 근로기준법 59조(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의 특례)를 적용받지 않게 된 업종에서 “주 52시간제”가 시행된다고들 한다. 거의 대부분 언론이 그렇게 쓰고 있고, 정부도 그렇게 말한다. 심지어 근로감독관을 주인공으로 하는 어떤 TV 드라마에서는 근로감독관 입에서 법정근로시간이 주 52시간이라는 말이 나온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근로기준법은 엄연히 주 40시간제를 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50조1항에 따르면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한 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110조). 여기에는 근로자와 사용자의 구별이 없다. 즉 주 40시간제를 위반하면 사용자든 근로자든 똑같이 처벌받는다. 요컨대 주 40시간제는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공공질서(공서)에 속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주 52시간은 제도가 아니다. 연장근로 상한 12시간을 포함해 일주일(7일)에 최대한 일할 수 있는 시간일 뿐이다. 연장근로는 법정근로시간에 대한 예외다. 아무리 장시간 근로체제가 오랫동안 지속돼 왔다고 해도 예외는 결코 제도가 될 수 없다. “주 52시간제” 운운하면 주 40시간은 온데간데없고 주 52시간 일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다시 근로시간을 늘리려고 하는 시도가 이뤄질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 정책과 언론 캠페인은 예외를 제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제도답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런 착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직도 한국 사회가 저임금·장시간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기업의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해 저임금 정책을 고수했고 근로자는 생존을 위해 장시간 근로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본급을 낮추고 각종 수당을 통해 임금을 보전하는 것이나 논란을 빚었던 휴일근로 행정해석도 결국 저임금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취업규칙을 쉽게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나 판례도 저임금 체제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통상임금 논쟁은 한국 사회가 저임금 수렁을 벗어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다.

저임금·장시간 체제를 고임금·단시간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첫 번째는 시간이 아니라 임금에 초점을 맞추는 길이다. 고임금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노동조합의 전략은 고임금이었다. 이 전략은 임금을 끌어올리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장시간을 줄이는 데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두 번째는 임금이 아니라 시간에 초점을 맞추는 길이다. 단시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노동운동 전략을 임금에서 시간으로 바꾸는 것이다.

계급의 분할은 곧 시간의 분할이다. 재벌 회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스스로 밥하고 빨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시간을 돈 주고 산다. 근로자로 하여금 돈을 벌기 위해 자기 시간을 팔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시간을 돈 주고 사는 것은 부자의 특권이다. 어떤 노동법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재벌 회장이 변호사를 여러 명 고용해서 하루 종일 편안하게 접견실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허용하는 것은 부자만 혜택을 본다는 점에서 정의롭지 않다고. 바깥에서도 돈 주고 시간 사는 것(근로시간)을 규제하는데 벌 받으러 들어간 교도소에서 더 자유롭게 허용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근로자의 시간을 사용자를 위해 사용하게 하는 것. 즉 시간의 종속. 이것이 종속의 본질이다. 시간의 종속은 단순히 지금 이 순간의 종속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세 겹의 현재”(폴 리쾨르)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거는 기억으로 미래는 기다림으로 현재에 살아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종속은 노동자의 과거와 미래 모두를 종속에 빠뜨린다. 그리고 저임금이든 고임금이든 장시간 노동은 종속의 강화를 의미한다. 노동운동이 종속 안에서의 보호가 아니라 종속으로부터의 자유를 지향한다면 임금 싸움이 아니라 시간 싸움을 해야 한다. 돈은 아무리 더하고 곱해도 하나의 생명을 구성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은 24시간에 365일을 곱하고, 다시 80년을 곱하면 한 생명이 된다. 국제노동기구(ILO) 1호 협약이 임금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시간에 관한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jeseongpark@kli.re.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