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내년 최저임금이 시간급 8천590원으로 의결됐다. 올해 8천350원보다 2.87% 올랐다. 지난 12일 새벽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위원안(시급 8천880원)과 사용자위원안(시급 8천590원)을 두고서 표결을 실시했는데, 위원 모두(27명)가 출석해서 15명 찬성(반대 11명, 기권 1명)으로 사용자위원안을 가결했던 것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물가인상률이 2.0%이니 거의 동결 수준인 셈이다. 이 같은 최저임금액 의결 소식에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의 발언을 통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영세 자영업자·소기업 등 경제에 부담이 된다며 속도 조절을 강조해 왔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던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같은 취지의 말을 했던 터였으니, 이번 최저임금위 의결은 예상대로의 결과였다. 그래서 나는 놀랐다. 이 나라의 최저임금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예상했던 대로 의결한 데에 대해서는 놀랐다.

2. 최저임금위 의결이 있은 직후인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했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달성하겠다는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며 사과한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였다. 경제와 고용상황 등을 고려해서 최저임금 공약을 이행하지 못하게 됐다는 사과였던 것인데, 그 진정성을 의심하고 싶지 않다. 문재인 정부에서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농락당했다.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했던 2017년 최저임금은 6천470원이었는데, 2019년 현재 8천350원이니 연간 13.6%가 인상됐다. 인상률로만 보자면 사용자들이 부담된다고 아우성을 칠 만큼 제법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2018년 3월 최저임금법을 개정해서 매월 지급하는 상여금과 통화로 지급하는 식비·숙박비·교통비 등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켰다. 2020년부터 순차적으로 산입되는 것이지만 2024년이면 100% 산입되도록 규정했다(최저임금법 부칙 2조). 3천530원이 최저임금 1만원을 위해 인상할 금액이었는데, 노동자에 따라서는 최저임금이 3천530원 인상돼 봐야 상여금과 식비·교통비 등 복리후생비 산입으로 자신의 임금인상을 기대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런 노동자가 일부 대기업 정규직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알바나 파트타임 단시간제, 몇 개월만 일하는 기간제 노동자가 아닌 상용노동자의 경우 중소 사업장이라도 상여금과 식비 등 복리후생비는 지급받는다. 이런 노동자에겐 차라리 최저임금 인상을 하지 않는 게 나았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위해 연간 13.6% 인상을 하고서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산입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나았다. 심지어 사용자가 상여금을 매월 지급하는 것으로 취업규칙을 수월하게 변경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법을 개정해 줬으니(최저임금법 6조의2) 사용자에게 국가가 그렇게 하도록 제도적으로 적극 도왔다. 분명히 노동자에게 불이익하게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것인데도 근로기준법이 정한 바에 따라 과반수노조(과반수노조가 없으면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통해서만 최저임금에 산입할 수 있는 것을 매월 지급하는 방식으로 상여금 기준을 변경할 수 있는 것으로, 그 의견만 들으면 사용자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최저임금법을 개정했다. 정말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노동자가 사용자와 합의로 근로계약 내용인 근로조건을 정하는 것은 이 세상의 기본질서인데, 이 나라에서 취업규칙제도는 이걸 부정하고 서 있는 것인데 그마저도 최저임금법 개정을 통해서 철저히 짓밟아 버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동자권리에 관한 이해를 갖고 있다면 사과했어야 했다. 최저임금을 낮게 인상했다고 하는 사과보다도 더한 사죄의 심정을 담아 이 나라 노동자들에게 산입범위에 관한 최저임금법 개정에 사과했어야 마땅했다. 어찌 문재인 대통령만이겠는가. 그 법 개정의 논의에 관여하고 추진했던 자들이 사과했다는 걸 지금까지 들어 보지 못했다. 사실 이번 2020년 최저임금 의결을 두고서도 그렇다. 직접 그 의결에 관여했던 아무개 의원이 했다는 사과 소식을 아직 들어 보지 못했다. 단지 대통령이 했다는 사과만 들었을 뿐이다.

3. 노사가 참여하는 각종 정부 위원회를 보면, 노사 대표위원들과 정부 위촉의 공익위원들로 구성되게 된다. 한동안 민주노총의 참여 문제로 시끄러웠던 경제사회노동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이번 최저임금위도 그렇다.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총연합단체 노동조합이 추천하는 근로자위원과 사용자단체가 추천하는 사용자위원, 그리고 공익위원이 각 9명씩으로 고용노동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위촉해 구성하게 된다(최저임금법 14조, 시행령 12조). 결국 노사가 대립하면 정부가 위촉한 공익위원들이 결정을 좌우하는 구조인 것이다. 그런데 공익위원은 3급(상당) 이상의 공무원이었던 자로서 노동문제에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자, 5년 이상 대학에서 노동관련 분야의 부교수 이상 재직 중이거나 했던 자, 10년 이상 공인된 연구기관에서 노동문제 연구에 종사했던 자 등일 것을 위촉기준으로 정하고 있다(시행령 13조). 심신장애, 직무 관련 비위사실, 직무태만 등 직무 부적합 등이 아니면 해촉되지 않고 3년의 임기를 보장하고 있다(시행령 12조의2, 최저임금법 14조3항). 분명히 이런 공익위원 선임 과정을 보면 권력의 구미에 맞는 자로 위원을 위촉할 수 있게 보장돼 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렇다고 이번 최저임금위에서 사용자위원안을 의결했어야 했던 것일까. 이번 표결 결과를 보면 공익위원 다수가 사용자위원안에 찬성을 표결했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 관계자들이 바라는 대로 표결을 했던 것이다. 표결을 두고서 보면, 도대체가 ‘공익’위원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노사의 대표가 아니고, 공공 이익을 대표해서 활동하라고 위촉한 위원이라서 공익위원일 터인데, 정부가 바라는 대로 표결했다는 것 말고는 나는 그들의 공익을 알 수가 없다. 최저임금위 등에서 공익위원제도는 정부가 하라는 대로 의결하라고 마련된 제도가 아니다. 노사 간 대립에서 벗어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고 의결하라고 마련된 것이라면, 그렇게 행동했어야 했다. 자신을 위촉한 정부가 바라는 바가 무엇이든 위원회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참여하고 심의·토론하며, 표결하라고 위촉한 것이 공익위원인 것이라면, 그렇게 행동했어야 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했다. 어째서 이 나라에서 공익위원은 이럴까. 나는 그게 궁금하다. 신기하게도 예상했던 대로 위원회에서 의결하고 행동하는 것만 보고 있자니, 이렇게 나는 쓸데없이 궁금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도대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달리 표결하고 행동한다고 해촉되나. 최저임금법령은 해촉 사유를 제한하고 있으니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설사 해촉된다고 해서 뭐 대단한 감투가 떨어져 나간 것도 아닐 텐데,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상하게도 대한민국에서 무슨 위원회의 위원들은 하나같이 그렇다. 하도 정부가 바라는 대로 위원회에서 공익위원들이 행동하니 어떨 때는 그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자측 위원들이 농락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장면이 연출될 때도 있다. 대부분 위원회에서 공익위원이 상임위원으로서 회의를 주재하는데, 그런 모양새를 보일 때가 많다. 정부가 바라는 대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회의를 끌고 가기 일쑤다. 참석한 노동자위원들을 현혹하고 협박하는 일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기도 한다.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정부가 바라는 회의 결과를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정부 태도를 지적하는 공익위원을 본 적이 있었던가. 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법대로 행동한다면 공익위원은 그랬어야 했다. 그들의 이름이 내 기억이 가득해야 했다. 최저임금법령은 공익위원은 정부가 바라는 대로 의결하고 행동하라고 위촉된 제도라고 규정하지 않고, 오히려 정부로부터 독립해서 자신이 가진 전문성으로 의결하고 행동하라고 규정한 것이다. 그러니 법대로 했어야 했는데, 오늘도 나는 정부가 바라는 대로 한 최저임금 의결을 들여다보고 있다. 최저임금법은 독립해서 전문적 소신에 따라 의결한 경우에 그에 대해 정부가 대응할 수 있도록 재심의 요청제도를 규정해 놓았다(최저임금법 8조3항 내지 5항). 재심의에서는 재적 과반수 출석에 3분의 2 이상 위원들이 찬성해야만 당초 의결했던 최저임금안이 재의결되도록 정해 놓았다(최저임금법 8조5항). 그러니 얼마든지 소신껏 해도 나라가 망할 일도 없으니 크게 걱정할 일도 아니다.

4.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전경련 등 사용자단체는 주휴수당에 관해 계속해서 시비를 걸고 있다. 유급주휴시간을 최저임금 산정 근로시간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매월 지급하지 않는 상여금, 현물로 지급하는 복리후생비조차도 산입 범위에 포함시키라는 요구까지 하고 있다. 여기에 업종별 차등적용 등까지 골고루다. 이러한 것들이 최저임금 제도개선 대상으로 최저임금위에서 논의될 수도 있을 텐데, 결국 이번 최저임금 의결처럼 공익위원이 결정의 키를 쥘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문제는 공익위원이다. 지금까지대로라면, 그 결과는 뻔한 것이겠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헛된 기대를 해 본다. 뻔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낼 ‘공익’의 위원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노동자에게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해서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자 최저임금법 목적에 따라(1조) 법대로 의결하고 행동하고, 그랬는데도 나머지가 다수여서 그 뜻을 관철하지 못했다며 사과할 줄 아는 공익위원이야말로 최저임금법 취지에 부합하는 공익위원이라고 믿는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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