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여름, 친한 사람들은 관광버스에 올라타 먼 길을 떠났다. 커다란 여행용 배낭을 뒤져 간식을 나눴다. 수다가 멈출 줄을 몰랐다. 집에 남은 아이와 남편 얘기에 이르러서는 한숨도 섞였다. 마산톨게이트를 지나 고속으로 달린 버스는 서울톨게이트 너머 강남 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조끼를 맞춰 입은 동료들은 거기 상가에 들러 챙이 넓은 모자를 같이 샀다. 꽃무늬와 여름을 뜻하는 영단어가 멋들어지게 새겨진 것이었는데, 가격이 괜찮았다. 6천800원이었다고, 스마트폰 가계부에 남겼다. 지하철 갈아타고 도착한 곳에는 고궁도, 분수도,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건물도, 외국인 관광객도, 그리고 선글라스 낀 경찰도 많았다. 길가에 짐을 풀었다. 새로 산 모자엔 빨간색 띠를 둘렀다. 공들여 리본 모양으로 매듭을 지었다. 한낮 땡볕에 달궈진 아스팔트에 앉았다. 노래공연을 보고 손을 하늘로 자주 뻗었다. 사회자 선창에 소리 따라 질렀다. 선전물을 돌렸고, 큰 팻말 앞세워 땡볕 아래에 섰다. 종종 잔뜩 쌓인 여행가방에 기대어 졸았다. 뭉게구름 높았고 햇볕이 나날이 뜨거웠다. 모자를 싸게 잘 샀다고 생각했다. 휴가철 어디 시원한 계곡이며 바닷가 앞이 아니라는 게 다만 아쉬웠다. 가족과 떠나려던 여름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아 속상했다. 약속을 지키라고, 목이 쉬어라 길에서 외쳤다. 여름, 챙 넓은 모자에 머리띠가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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