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바야흐로 파업의 계절이다.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파업이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있었다. 초·중·고교의 급식조리원과 돌봄강사 등 조합원들이 참여했다. 그 파업을 앞두고 급식대란·돌봄대란이 우려된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민주노총 공공부문 비정규 노동자 총파업으로 전개된 것인데, 지방자치단체 환경미화원과 고속도로 요금소 수납원 등도 대거 참여했다. 임금·단체교섭이 진행됨에 따라 쟁의조정과 쟁의행위 찬반투표 등 절차를 거쳐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금속노조의 총파업이 ‘하투’로 본격화할 것이다. 민주노총은 사업장 임단투와 연계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등을 내걸고 18일 총파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그 파업을 앞두고서도 엄청난 우려의 보도를 쏟아 낼 것이다. 미중 무역분쟁, 반도체 단가 하락 등에 따른 수출 감소에 이어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까지, 가뜩이나 위기인 경제를 어렵게 하는 것이라고 겁을 주면서 파업 조합원들은 어려운 나라 경제 사정조차 생각지 않고 제 밥그릇이나 챙기는 이기주의자로 몰아갈 것이 뻔하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노동자 파업을 경제로 재단하면서 비난할 것이다. 지난 3일 국회 당·정·청협의회에서 이낙연 국무총리가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와 고통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 경제가 내외의 여러 난관을 겪고 있어 상황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으니 정부도 노사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던 말이 그나마 노동자에게 최선을 다해 한 말이 될 것이다.

2.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두고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가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노동자 위원들은 현행 8천350원보다 19.8% 높은 1만원을 최초 요구안으로 내놓았다. 이에 반해 이달 3일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8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들은 중소·영세 기업과 소상공인의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내년 최저임금 최초제시안으로 현행 8천350원보다 4.2% 낮은 8천원을 제시했다. 같은날인 3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에 일방적 부담이 되지 않도록 상생의 메커니즘을 갖추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면서 “최저임금위가 경제와 일자리에 충격을 주지 않도록 지혜롭게 결정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동안 최저임금 탓에 일자리가 줄었고 자영업자가 줄도산했으며, 소득격차가 더 벌어졌고, 경제가 더 어려워졌다고 보수 정당과 언론, 사용자단체를 중심으로 몰아가더니 어느새 집권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조차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지난 2년간 최저임금이 27.3% 올랐다고 하더니 이러한 지나친 인상이 나라 경제를 망쳤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것이다. 이런 일이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공약한 문재인 정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인데, 돌이켜 보면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지난해 최저임금법 개정이 있었는데(2018년 6월12일 개정 최저임금법), 매월 지급하는 상여금과 식비·숙박비·교통비 등 복리후생명목 금품을 최저임금 산정에 포함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당장은 25% 및 7%에서 시작하지만 2024년에는 전체 금액이 포함되게 된다. 수많은 사업장 사용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대응하는 편법으로 이를 활용하게 됐다. 즉 상여금 등을 매월 지급하는 것으로 변경했던 것인데, 최근에는 현대자동차에서 사측이 노조와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이를 밀어붙이고 있다. 이 나라에서 상여금이 지급이 없는 사업장이 얼마나 될까. 알바나 단시간 비정규 노동자가 아니라면 상여금은 통상적으로 지급받는 정도의 임금인 것이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돼 경제가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기존에는 최저임금 산정에 포함되지 않던 임금을 포함시키는 법을 만들다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상여금과 식비 등 복리후생명목 임금을 받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괜히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하더니 그나마 최저임금 인상으로 확보될 권리조차도 빼앗기게 돼 버렸다. 상여금을 통상임금의 몇 백%로 지급받는 노동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 것만 못한 못된 공약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일은 최저임금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는 공약도 자회사 고용으로 추진돼 왔다. 고속도로 요금수납 노동자들이 파업투쟁을 했던 것도 이러한 한국도로공사의 방안에 반발하면서였다. 그리고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노동시간단축도 그랬다. 휴일이 1주일에 포함되지 않아 1주일은 5일(주 5일제) 혹은 6일이라는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을, 1주일이 휴일을 포함해 7일이라고 바로잡기만 하면 될 것을 두고서,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1주일이 7일이라는 정의규정까지 도입했다. 1주일이 일요일 등 휴일을 포함해 7일이라는 것은 법으로 정의하지 않아도 명명백백한 것이었다. 정말 황당한 입법이었다. 어째서 1일은 24시간이고, 1개월은 28일 내지 31일이며, 1년은 365일 또는 366일이라고 정의규정을 두지 않은 것인가. 그런데 이러한 입법은 주 40시간을 초과한 휴일근로에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할 것인지와 관련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그 지급을 인정하지 않는 주요 근거가 됐다. 당연히 이러한 입법 추진에서도 그들은 노동자권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경제를 생각했다. 겉으로만이 아니라 진정으로 노동자권리를 생각했다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3. 경제만 이야기하면 졸아붙는다. 당장이라도 새 세상을 위해 나아갈 것 같던 그들이 새가슴이 됐다. 촛불혁명을 계승한다고,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겠다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가슴도 열어 보면 그럴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오늘 세상이 이렇게 흘러갈 수가 없다. 오늘도 소득주도 성장론은 엉터리 정책이라는 비난을 보수 정당과 언론이 쏟아 내고 있다. 그 정책을 철회하면 문재인 정부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유혹까지 해 대며 노동존중 사회 실현 등의 정책을 폐기하라고 한다.

경제만 말해 보자.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어떻게 되는가. 노동자에 대한 임금지출이 증가해 자신이 차지할 몫이 줄어들 테니 사용자 자본의 투자이익률이 떨어진다. 기술혁신 등을 통해 인건비 상승을 월등히 상쇄할 수 있는 생산·경영 체계 개선을 이뤄 내지 않는 한 말이다. 새로운 인적·물적 투자를 하지 않는다. 만약 대외시장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내수 경제체제라면 저임금으로 노동자 상품구매력이 떨어지면 자본 수익률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수출경제 대한민국이라면 저임금을 통한 적은 인건비 지출은 상품 경쟁력을 높이고, 자본의 투자이익률을 높이게 된다. 그래서 그랬던 것이다. 저 개발도상의 1960년대부터 70년대, 그리고 80년대, 광포한 국가권력을 통한 노동억압 체제는 저임금을 강요하면서 맹목적으로 경제성장률을 자랑했던 것이다. 심지어 명목 임금인상률을 웃도는 인플레이션을 조장해(확장적 통화정책을 통해) 국가권력은 자본의 축적을 돕기도 했다. 경제를 위해서라면, 노동의 자유와 권리는 없었다. 시키는 대로 하고, 주는 대로 받는 근로자여야만 했다. 그렇게 근로자로 훈육돼 기업에서 일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경제를 위해서’를 말한다. 단지, 국가의 권력기구에 의한 폭압적 노동통제냐 아니냐만 다를 뿐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노동존중 사회를 실현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최저임금·노동시간단축 등 주요 노동정책 공약을 추진할 때마다 ‘경제를 위해서’를 내세우고 있다. 이 나라에서 ‘경제를 위해서’는 노동자 임금 수준을 높여서는 안 되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저해하는 고용안정을 해서는 안 되며, 노동시간 운영을 탄력적으로 유연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서, 노동자는 저임금에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상태에서 사용자가 시키는 대로 일하는 걸 말한다. 이런 ‘경제를 위해서’란 ‘사용자 자본을 위해서’를 말한다. 자본의 노동착취율이 높은 경제여야 우리나라 만만세인 것이다.

4. 자본의 욕심은 스스로 제한할 수 없다. 그 욕심대로 할 수 있었다면 최저임금 4.2% 삭감이 아니라 42% 삭감안을 내놨을 것이다. 지난해 상여금까지 산입범위에 포함시켜 줬으니 배가 불러도 터지도록 부를 만도 한데 삭감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확대재생산을 통한 축적이 이 세상에서 자본의 존재이유다. 국가권력이든 노동이든 그가 누구든 자본이 아닌 자만이 이러한 자본을 통제할 수가 있다. 그런데 ‘노동존중 사회’ 실현 공약은 이러한 자본에 대한 권력의 통제를 말한 것이었다. 사용자 자본의 노동자에 대한 임금(최저임금)과 고용(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시간단축 등 노동조건을 개선하겠다는 공약이기 때문이다. '노동을 위해서' 공약한 것이지 '경제를 위해서' 공약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취임하고서 2년2개월 동안 그 공약은 ‘경제를 위해서’로 변질돼 왔고, 오늘은 최저임금 인상을 두고서 “경제와 일자리에 충격을 주지 않도록” 결정할 것이라고 믿는 집권여당 원내대표의 연설에서 공약의 변질을 확인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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