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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 보증인의 소멸과 갑을관계
▲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채권관계든, 물권관계든, 가족관계든 모든 법률관계에는 제3자 보증인이 존재한다. 제3자 보증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것은 더 이상 법률관계가 아니다. 법률관계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법률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즉 적나라한 힘의 관계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3자 보증인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제3자 보증인은 법률관계의 효력을 보증한다. 제3자 보증인의 구체적인 모습은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를 수 있다. 신의 모습을 띨 수도 있고, 국가의 모습을 띨 수도 있고, 또 다른 어떤 모습을 띨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제3자 보증인이 존재하지 않는 법률관계와 사회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채권관계는 흔히 채권자와 채무자의 양자관계로, 법률 용어로 하면 쌍무관계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채무의 이행을 보증하는 제3자, 예를 들어 판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의 채권은 온전하기 어렵다. 나보다 힘이 센 채무자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 채무의 이행을 보증해 줄 수 있는 판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의 채권은 유명무실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경우에는 오직 물리적 위력만이 채무 이행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계약이 계약으로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을 보증하는 제3자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이른바 “효율적 계약 파기”를 주장하는 법경제학의 관점과는 정반대의 관점이다.

물권관계는 흔히 나와 물건의 양자관계로 생각하기 쉽다. 나는 나의 소유물인 물건에 대해 완전한 지배권을 행사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의 것이다. 법률용어로 물권의 대세적 효력이라고 한다. 그러나 물건에 대한 나의 소유권을 보증하는 제3자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 나의 물권은 온전하기 어렵다. 나보다 힘이 센 누군가가 내 것은 내 것이고 네 것도 내 것이다 하면서 나의 소유물을 강제로 탈취하는 경우에 경찰이나 판사가 없다면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정체성도 마찬가지다. 내가 누구인지는 내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만약 해외여행에서 여권을 분실하면 한국대사관을 찾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외국 경찰에게 내가 정한 나의 정체성을 아무리 주장해도 권위 있는 제3자가 보증하는 정체성이 확인되지 않는 한 나는 내가 누구인지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아니라 제3자 보증인이다.

노동관계도 예외가 아니다. 노동계약관계는 결코 노동자와 사용자의 양자관계로 환원되지 않으며, 집단적 노사관계는 결코 노동조합과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의 양자관계로 환원되지 않는다. 노동관계가 양자의 대등한 법률관계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제3자 보증인의 존재가 필요하다. 그 보증인이 존재하지 않거나 제3자의 자리를 지키지 않고 한쪽 편을 들면(그러면 이미 제3자가 아니다) 노동관계는 법이 지배하는 공간이 아니라 힘이 지배하는 공간이 된다.

이와 같이 모든 법률관계는 양자관계의 수평적 차원과 제3자 보증인의 수직적 차원이 만나는 삼각형의 구조를 띤다. 신자유주의 또는 시장전체주의는 이것을 수평적 양자관계로 해체하려고 한다. “세계는 평평하다”는 환상을 실제와 동일시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평평한 세계는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는 세계가 아니다. 제3자 보증인이 존재하지 않을 때 법률관계는 적나라한 힘의 관계, 폭력적 관계로 변질되고 만다. 그리고 사회는 약육강식과 각자도생의 자연법칙이 지배하는 정글이 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인구에 회자되는 "갑을관계"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원래 갑과 을은 채권자와 채무자를 의미하는 관행상 용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갑을관계는 단순한 채권채무관계를 의미하는 말이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말을 쓸 때 그것은 유사 신분관계를 의도한다. 갑이 법적 권한을 넘어 갑질을 행사하고 을은 법적 권리를 누리지 못한 채 피해를 감내해야 하는 지배종속관계. 이것은 계약관계를 계약관계로 보증하는 제3자가 존재하지 않음으로 인해 계약관계가 신분관계로 변질됐음을 의미한다. 갑을관계는 우리 사회에서 제3자 보증인의 존재가 희미하게 사라지고 있음을 경고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jeseongpark@kli.re.kr)

박제성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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