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지난달 25일 기자회견장에 펼쳐진 현수막에서 이렇게 절규하고 있었다. 근래 드물게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돼 있는 우정노동자의 7월9일 총파업 투쟁을 앞두고 전국우정노동조합은 기자회견을 통해 전날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전체 조합원 94%가 참가해 92.87%(25,247명) 찬성으로 가결됐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중노동 과로로 죽어 가는 집배원을 살려 달라는 조합원의 열망이 그만큼 뜨겁다”는 것을 뜻한다고 노동조합은 밝혔다. "지난해 집배원 25명이 사망한 데 이어 올해 9명이 과로로 세상을 등졌다"며 노동조합은 이번 총파업이 "더 이상 죽을 수 없기 때문에 하는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2008년 이후 과로나 업무상 교통사고 등으로 숨진 집배원이 200명에 달한다.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017년 8월 노사와 외부전문가 등으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를 구성했고, 추진단은 실태조사를 통해 2017년 집배원의 평균 노동시간은 연 2천745시간으로 임금노동자 평균(2천52시간)보다 현저히 많은 것을 확인했다. 그에 따라 추진단은 주 52시간 근무를 위해 2천858명의 집배원 증원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일부 증원이 이뤄졌을 뿐,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토요근무 등 집배원의 장시간 근로는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집배 노동자들은 ‘더 이상 죽지 않겠다’고 파업을 결의한 것이다.

2. 이렇게 뜨겁게 달려가고 있는 총파업에 관해 질의가 들어왔다. 집배 노동자도 법대로 주 52시간제로 일하고 싶다고, 그래서 더는 토요근무 없는 세상에서 살아 보겠다고 총파업을 해야 하는데, 사측 우정사업본부 등에서 이런저런 시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필수공익사업장이라서 필수유지업무 종사자는 파업 등 쟁의에 참가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다. 노조법(42조의2)과 노조법 시행령(22조의2 별표1)은 ‘우편법 14조에 따른 기본우편업무와 우편법 15조에 따른 부가우편업무 중 내용증명과 특별송달 업무’에 관해 통신사업의 필수유지업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 이러한 업무에 종사하는 집배원들은 파업할 수 없는 것이냐고, 파업하겠다고 이번 총파업을 위해 특별히 우정노조를 자문하게 된 내게 답변을 요청했다.

노조가 보내온 자료에는 필수유지업무에 관한 노조법 개정 직후인 2008년께 우정 노사가 체결한 필수유지업무 범위에 관한 협정서가 있었다. 노조법이 필수유지업무 범위와 관련해 노사가 쟁의에 참여할 수 없는, 그 업무를 수행해야 할 조합원수 등에 관해 자세히 정해 놓고 있었다. 뭐 이렇게 정해 놓았으니 그에 따라 참여할 수 없는 자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파업할 수 있다고 알면 될 것인데, 그 협정서는 업무 수행 조합원의 인원뿐만 아니라 그 유지비율까지 정해 놓고, 2008년 이후 인력 증원에 따라 그 인원수를 기준으로 하게 되면 유지비율을 맞출 수가 없게 돼 논란이 될 소지가 있어 질의를 했던 것이다. 업무의 유지비율이야 노동자 맘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니 필수유지업무 종사자로서 쟁의시 업무수행 조합원수에 관해 정한 대로 사측에 통보하면 그만이라고 의견서를 끄적거리면서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필수공익사업장의 필수유지업무여서 제 노동자권리 확보를 위해 파업 등 쟁의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한 것이라면, 응당 쟁의할 필요가 없을 수준으로 그 노동자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해 줘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이상했다. 필수공익사업장의 필수유지업무라는 우편사업의 기본우편업무·부가우편업무 중 내용증명과 특별송달 업무에 종사하는 집배원 노동자가 일반 사업장의 노동자에 비해 더 우월한 노동자권리를 보장받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그랬다면, 집배 노동자들이 시간외근로를 해도 그 수당조차 받지 못하면서 과로사할 정도로, 즉 죽을 정도로 장시간 노동에 혹사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다. 노동자의 파업할 자유를 박탈하면서도 그에 따른 노동자를 위한 아무런 조치도 없다. 그 업무가 공중의 일상생활이나 국민경제에 그토록 중요하고 그래서 쟁의 없이 반드시 수행돼야 하는 것이라면(노조법 42조의2 참조) 그만큼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상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은 노조법·근로기준법 등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나라에서 필수공익사업장의 필수유지업무 종사 노동자들은 사용자가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것 말고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죽어야 하는가.

3. 이번 총파업의 요구는 단순하다. 토요근무 없이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일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지금도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더욱 높이는 방식, 주 52시간제를 운영한다면서 기존 업무물량을 그대로 수행하고, 연장근로수당 등 임금을 삭감하는 방식이 아니라 노동시간만 줄여 달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더 이상 죽을 수 없다’고 총파업을 결의한 집배를 포함한 우정 노동자들의 외침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렵다. 사측 우정사업본부는 예산이 없어 어렵다고 한다. 정해진 정부 예산 범위에서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집배 노동자들은 공무원이라도(우정노조 조합원 중 일부는 별정우체국 소속으로 공무원 신분이 아닌 노동자도 있다) 사실상 노무에 종사하는 자로서 단체행동 등 노동기본권이 보장돼 있다. 일반 노동자처럼 스스로 단결해 임금 등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을 위한 교섭과 쟁의를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해 준 것이다. 그래서 1958년 우정노조가 설립돼 활동해 왔다. 그런데 정부가 편성한 예산대로만 할 수 있다면서, 사측 우정사업본부는 임금인상 등 노조의 임단협 요구를 그 범위 내로 제한해 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토요근무 없이 살겠다고 총파업을 결의했으니,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사용자인 대한민국이 그 단순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게 되면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니 우정사업본부가 해 왔던 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4. 오늘 이렇게 우정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결의하고 투쟁에 나서는 것은,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3월 문제의 주 52시간제에 관한 근로기준법 개정이 있었다. 종전 특례업종이 대폭 줄었는데, 우편사업을 포함한 통신업도 더는 특례업종, 즉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규제의 예외업종이 아니게 됐다. 그리고 이렇게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사업은 2019년 7월1일부터 주 52시간제가 시행된다(근기법 부칙 1조2항1호). 그러니, 아무리 연간 2천700시간 넘게 근무해 왔던 집배 노동자라도 1일부터는 주 52시간의 범위 내에서만 근무하도록 해야 마땅하다. 근기법은 주 40시간 근로에 더해 당사자 합의로 12시간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53조·50조), 이를 위반한 사용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110조1호). 이러한 근기법이 우정 사업장에도 7월1일부터 시행된 것이다. 그렇다면, 뭔가. 주 52시간을 초과해서 하는 근로인 토요근무는 용납되지 않는다. 우정사업본부는 집배 노동자들을 주 52시간을 초과해서는 사용할 수가 없다. 설사 그 노동자들이 동의해서 하는 것일지라도 대한민국의 법은 불법·범죄 행위로 선언할 뿐이다. 필수공익사업장이라고, 그 필수유지업무 종사자라고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다. 괜히 필수유지업무에 종사할 조합원수가 어떻다고 나는 의견을 쓸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우정 노동자의 사용자인 대한민국이 불법·범죄 행위를 할 까닭이 없으니 그저 토요일을 기다려 쉬면 될 일인 것이다. 괜히 총파업을 결의해서 토요근무 폐지를 투쟁할 일도 아니었다. 그저 토요근무를 하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노조 지침에 따라 조합원들이 집단적으로 토요근무를 거부한다면, 법원에서 쟁의행위로 판단돼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아닐까. 혹시 이런 걱정을 할 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잔업거부·준법투쟁 등이 쟁의행위라고 판결해 왔던 이 나라 법원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의 불법·행위를 따르지 않고, 법이 보장한 대로 한 노동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법원이 판단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법이 규정한 대로 법을 해석·집행할 법원이 불법·범죄 행위를 따르지 않았다고 노동자를 심판하는 일은 없다고 감히 낙관한다. 우정 노동자뿐만이 아니다. 주 52시간제가 적용되게 된 사업장 노동자들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법은 사용자가 주 52시간을 초과해서 일을 시킬 수 없도록 규정했고, 그것은 당신, 노동자를 위해서다. 사용자를 위한 것으로는 해석되지 않는다. ‘더 이상 죽을 수 없기’ 때문에 하는 토요근무 거부는 주체·목적·절차 등의 정당성을 갖추고서 하는 총파업이 아니어도 되고, 파업을 할 수 없는 필수공익사업장의 필수유지업무 종사자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건 ‘더 이상 죽지’ 않고 일하기 위해 마련된 노동시간에 관한 노동자권리의 행사다. `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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