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택시노동자에게 잔인한 시간이 지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교통수단이 결합한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가 잇따라 등장하면서 택시노동자들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이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7일 택시업계 노사단체는 국토교통부와 함께 모빌리티 서비스의 대표주자인 카카오와 손을 잡았다.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 선언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선언 이후 100일 훌쩍 지났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여는 최초의 노사정 선언이라는 평가가 무색할 정도다.

사회적 대타협 후속조치가 이행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택시노동자는 새로운 시대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 걸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27일 경기도 광명에 위치한 전택노련 사무실에서 강신표(58·사진) 전택노련 위원장을 만났다. 강 위원장은 “사회적 대타협 발표 이후 국토부가 단 한 번도 실무회의를 연 적이 없다”며 “주무부처의 안일한 대응이 택시산업을 고사시키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이 나온 지 3개월이 지났다. 어떤 변화가 있었나.
"택시노동자는 전혀 달라진 게 없다.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다 보니 변한 게 하나도 없다. 국회도 문제지만 국토부가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야말로 우리 사회 암적인 존재다."

사회적 대타협 후속조치 전무
"국토부 실무회의 한 차례도 없어"


- 사회적 대타협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택시 월급제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여야가 이견이 없기 때문에 국회만 열리면 통과되리라 기대한다. 그런데 택시 월급제를 당장 시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월평균 260만원의 고정급을 지급해야 하는데 택시회사 능력 밖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지원을 병행한다면 가능하다. 국토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택시 월급제만 밀어붙이고 있다. 노사 간 싸움을 붙이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국토부가 전향적인 안을 가지고 와야 실질적인 택시 월급제가 가능하다. 사회적 대타협 논의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은 주무부처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 국토부는 군부독재 시절에나 볼 법한 관료주의로 똘똘 뭉쳐 있다. 사회적 대타협 선언 이후 국토부가 실무협의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일이 진척될 리 있겠나."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 선언은 △출퇴근 시간(오전 7~9시·오후 6~8시) 카풀 허용 △규제혁신형 플랫폼 택시 올해 상반기 출시 △택시 월급제 시행 △초고령 운전자 개인택시 감차 △승차거부 없는 친철한 택시 서비스 시행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택시 월급제 시행을 위해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자동차법) 개정안과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택시발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3월2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원회에서 첫 논의가 이뤄졌지만 이후 국회가 공전하면서 논의가 중단된 상태다.

사실 택시 월급제는 법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시행할 수 있다. 택시 월급제의 뼈대인 전액관리제가 이미 1997년 시행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택시회사 지급여력인데 국토부가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택시 사용자측은 물론 노조들도 반발하는 상황이다.


- 올해 상반기 출시 예정이었던 규제혁신형 플랫폼 택시가 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굉장히 다양한 택시가 존재한다. 많은 종류의 택시들이 규제에 묶여 운행을 못하고 있을 뿐이다. 서울만 놓고 봐도 20인승 대형택시가 200대가 있다. 택시회사마다 1대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차량가격만 한 대에 1억원 이상인 택시도 있다. 지금 택시는 요금과 근무형태, 손님 태우는 방식 등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규제에 묶여 있다. 사회적 대타협에서 합의한 규제혁신형 플랫폼 택시가 출시되면 시민의 교통편의나 이동권 보장 측면에서 지금보다 훨씬 좋아진다. 택시를 기다리지 않고 언제든지 바로바로 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핑계만 대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안타깝다. 당장 대통령령부터 개정해 규제를 풀어 줘야 택시가 살아날 수 있다. 주무부처가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산업정책을 수립해야 하는데 땜질식 처방으로 위기만 모면하려고 한다."

규제혁신형 플랫폼 택시는 플랫폼 기술을 자가용이 아닌 택시와 결합한 형태다. 기존 택시산업에 존재하는 사업 구역·요금·차종 같은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 반면 국토부는 택시 월급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플랫폼 택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택시노동자 처우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플랫폼 택시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 규제혁신형 플랫폼 택시 논의가 주춤하면서 '타다'를 비롯한 또 다른 형태의 모빌리티 서비스로 갈등의 불씨가 옮겨붙었다.
"타다는 한마디로 불법이다. 차량을 한 대도 소유하지 않고 기사도 고용하지 않은 채 애플리케이션 하나로 불법 유상운송 행위를 하고 있다. 더 이상 말하기도 싫지만 국토부가 문제다. 국토부가 불법을 불법이라고 말하지 않고 방관하면서 사회적 대립을 만들고 소모적 전쟁을 조장하고 있다."

"타다는 약탈경제, 국토부가 불법 방관"
"노동권 보장 못 받는 타다 기사, 택시노동자보다 열악"


- 택시업계가 모빌리티 산업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여론이 있는데.
"타다는 새로운 산업이 아니다. 택시시장을 잠식하는 약탈경제일 뿐이다. 정책을 입안하는 관료들이 공유경제·4차 산업혁명으로 포장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타다 기사들의 처지를 아나? 정말 불쌍하다. 타다는 기사가 45세 이상이면 아예 안 쓴다. 4대 보험 혜택을 주기를 하나, 월급을 많이 주기를 하나. 그런 대우는 하나도 없고 사고가 나면 택시보다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과속운전 같은 운전습관을 평가해서 하루아침에 나오지 마라고 통보한다. 택시 기사는 노동자 신분이라도 가지고 있지만 타다 기사는 그런 울타리조차 없다. 타다는 사용자 책임조차 안 지려고 전부 아웃소싱해서 운영하고 있다. 노동권조차 없는 타다 기사는 바람 앞의 촛불이나 다름없다."

- 타다 기사처럼 모빌리티 산업으로 편입되는 노동자를 조직화할 계획은 없나.
"타다의 불법파견 사용 혐의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타다 기사의 노동자성은 당연히 인정받아야 한다. 정부는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는 기업의 만행에 대해 엄정하게 조치해야 한다. 타다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지금 타다 기사들을 조직할 수는 없다."

"자식에게 가난 대물림하지 않도록
중소·영세 기업 노동자 지원해야"


- 택시노동자가 고령화되고 있다. 연맹에서는 고령화에 대비해 어떤 정책을 추진 중인가.
"고령자들이 이직을 통해 택시로 유입되는 추세다. 처음부터 택시를 하려고 운전대를 잡은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교육사업이 쉽지 않은 편이다. 지난해 택시 노사가 택시부가세 경감세액을 재원으로 하는 일반택시운수종사자복지재단을 설립해 택시노동자들에게 1인당 30만~40만원 상당의 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녀들에게 장학금도 지급한다."

- 올해 택시요금 인상 이후 택시노동자 형편은 좀 나아졌나.
"요금 인상 이후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정부 지원이 조금만 더 있으면 택시노동자도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택시를 떠나 모든 중소·영세 기업 노동자를 살리기 위한 정부 정책이 시급하다. 중소·영세 기업 노동자들은 적은 월급에 자녀 교육비와 주택 마련 자금까지 삼중고를 겪고 있다. 맞벌이를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처지다.

정부가 중소·영세 기업 자녀학자금 대출이나 주택 마련 자금을 지원해 준다면 자식들이 마음 놓고 대학공부 마치고 결혼해 가정도 꾸리지 않겠나. 아버지가 짊어져야 할 가난의 굴레를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도록 정부가 중소·영세 기업 노동자 복지를 적극 지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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