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노동·여성단체가 2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스 점검원 안전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가스 안전점검 왔다고 하면 팬티만 입고 나오거나 나체로 문을 여는 경우도 있어요. 2015년 한 남성 고객은 점검원 엉덩이를 만지고 자신의 성기를 몸에 비볐죠. 뛰쳐나가려는 점검원에게 ‘한 번 안아 주고 가라’며 앞을 막아섰죠. 점검원이 신발도 못 신고 나왔어요.”(김정희 공공운수노조 울산지역지부준비위원회 경동도시가스센터분회장,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수도검침원이 오는 걸 알고 일부러 바지를 내리고 자신의 성기를 잡고 있는 경우도 있어요. 무서워서 거길 어떻게 갑니까. 주말에 남편과 함께 그 지역을 검침하는 분도 있어요. 단수조치를 해지하러 방문한 집에서는 고객이 망치를 들고 ‘더운날 왜 이렇게 늦게 왔냐, 다 때려 부수겠다’고 화를 냈어요. 작업하는 내내 망치를 들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최숙자 민주연합노조 강릉지부 여성부장, 수도검침원)

도시가스 안전점검원·수도검침원·재가요양보호사·정신건강복지센터 사회복지사·국민연금 현장출장 노동자·다문화 방문지도사는 매일 고객 집을 찾아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구방문 노동자다. 마주 선 문 뒤에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알지 못한 채 고객 집 문을 두드리는 가구방문 노동자들. 그들은 “성희롱을 당하고 목숨을 위협받지만 함께 일하던 동료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줄은 몰랐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누군가 또 자살하거나 살해당하면 그때는 예방책을 찾아 줄 건가?”라고 정부와 사용자에게 물었다.

안전대책 요구하자 호루라기만 지급

정의당 윤소하 의원과 노동이당당한나라본부, 민주노총·국회 저출산극복포럼이 27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가구방문 노동자 뼈 때리는 인권침해 증언대회’를 열었다. 가구방문 노동자들은 서로가 겪은 인권침해 사례를 공유하고 분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수많은 가구방문 노동자가 밀폐된 공간에서 성희롱과 성폭력, 폭언과 폭행 심지어 살해위협까지 당하는데도 사용자와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올해 4월 울산에서 발생한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A씨의 사망이 남의 일이 아닌 가구방문 노동자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호루라기 하나에 자신의 안전을 의지한 채 고객 집을 찾는다.

A씨는 도시가스 안전점검을 마치고 나오다 남성이 ‘진짜로 점검만 하러 왔느냐’며 막아 한 시간 동안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트라우마 치료를 받던 그는 동료 점검원들에게 “언니들, 나 정말 힘들었어요”라는 문자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정희 경동도시가스센터분회장은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를 받고 집을 찾아갔는데 문틈 사이로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며 “가까스로 집에 들어가 가스밸브를 잠그고 보니 A가 화장실에 누워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A를 발견한 동료가 트라우마를 호소했지만 회사는 말조심부터 시켰다”며 “고객이 엉덩이를 만지고 성기를 몸에 비비는 상황을 회사에 얘기하고 안전보장을 요구했지만 회사는 호루라기 하나 지급했을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구방문 노동현장은 안전모 없는 건설현장

“112로 접수된 자살시도 신고를 받고 경찰과 함께 현장을 방문했어요. 대상자는 술에 취해 있었고, 칼이 앞에 놓여 있었죠. 그런데 상담 도중 경찰이 철수했습니다. 상담자가 112에 동행을 요청하고 밖에서 경찰을 기다렸는데 대상자가 따라와 욕설을 하고 폭행했습니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정신건강 상담 대상자를 찾아가 상담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 사회복지사들은 수시로 위험 상황을 목격한다. 강서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사회복지사인 강혜지 보건의료노조 정신건강지부 선전부장은 “서비스 대상이기에 참아 보려고 하지만 반복되는 폭력은 고스란히 노동자의 몸과 마음에 남는다”고 토로했다.

가구방문 노동자들을 보호할 법적·제도적 장치는 미미한 수준이다. 일명 감정노동자보호법으로 불리며 지난해 10월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 26조의2(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조치)는 사용자 처벌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 고객응대 근로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에 대해서만 벌칙조항을 두고 있다.

조현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는 “건설현장에서 안전모를 지급하지 않고 일을 시키는 건 상식에 맞지 않다”며 “위험에 노출될 걸 뻔히 알면서도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게 하는 것은 안전의무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고용노동부가 감정노동 종사자 건강보호 핸드북에서 사업장 특성에 맞는 고객응대업무 매뉴얼 마련과 2인1조 근무를 주문했음에도 지켜지지 않는다”며 “강제할 수 있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노동계가 10년을 싸워 2017년 감정노동자보호법이 통과됐지만 원청에 안전의무 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이 빠져 버렸다”며 “법 개정을 통해 원청 처벌조항까지 세세하게 반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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