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이달 28~29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다. 이 회의는 세계경제를 이끌던 주요 7개국(G7) 회의를 확장한 것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핵심문제를 다루는 가장 중요한 기구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경제의 85%를 대표한다는 G20 회의를 계기로 오늘날의 세계경제를 한번 살펴보려 한다.

최근 세계경제의 가장 뜨거운 쟁점은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다. 이번 회의의 뜨거운 감자도 미중 간 무역협상이 될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무역전쟁을 펴는 이유는 겉으로는 중국의 불공정 경쟁으로 인한 대중 무역적자를 줄인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광범위한 시장개입·기술탈취·환율조작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은 미국 내 초당적 합의다. 일정한 성과를 낼 때까지 중국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 지배층의 속사정은 조금 복잡하다. 왜냐하면 현재와 같은 무역전쟁은 효과나 지속가능성에서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관세장벽을 높게 세워 수입품을 국내에서 대체생산하는 것은 개발도상국에서나 할 만한 정책이다. 미국은 중국의 값싼 제품 덕에 국내 소비를 늘릴 수 있었고, 애플이 중국에서 아이폰을 전량 생산해 엄청난 이윤을 획득하는 것처럼 중국의 저임금을 착취해 얻은 이득 역시 어마어마하다. 이른바 비교우위에 따른 무역으로 중국만이 아니라 미국도 큰 이득을 얻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렇게까지 무역전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일까? 역설적이지만 그것 말고는 미국의 세계적 패권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태도는 일관되게 하위 파트너로의 포섭이었다. 미국은 1990년대 말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허락했다. 중국을 세계화에 참여시켜 관리할 목적이었다. 금전적 이득도 막대했다. 미국은 중국의 값싼 소비재를 수입했고, 고부가가치 기술과 자본을 수출했으며, 더불어 세계화에 적응해야 하는 중국이 미국 내 금융시장에 엄청난 투자를 하도록 만들었다. 중국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자 미국 오바마 정부는 환태평양자유무역지대를 만들어 중국을 경제적으로 포위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2009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힘이 빠진 미국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이런 구상을 실현하지 못했고, 중국은 그 틈을 타 일대일로·제조업굴기 같은 더 이상 미국의 하위파트너로 살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트럼프는 이런 중국에 대해 관세폭탄이라는 직접적 공격으로 대응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관세폭탄은 자신에게도 피해를 입힌다. 하책 중 하책이다.

한편 중국은 패기 좋게 미국에 맞서고 있지만, 경제에 치명적 손상을 입고 있는 중이다. 중국은 수십 년간 고도성장을 이어 가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 없는 중국을 상상하기 어려운 경제구조다. 중국 제조업은 여전히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제조업이 이끈다. 단적으로 상위 자동차업체들은 모두 미국과 그 동맹국들과의 합작회사다. 애플이 생산공장을 이전하면 중국 전자산업의 공급사슬 전체가 휘청거리게 된다. 미국이 중국을 옥좨 올수록 외국계 기업들은 중국에서 활동을 줄일 수밖에 없다.

금융은 더욱 문제다. 중국은 국영기업들의 엄청난 적자를 국영은행들의 정책대출로 메꾼다. 그리고 부자들이 해외로 자산을 빼돌리지 못하도록 외환과 위안화를 엄격하게 통제한다. 이런 통제 속에서 적자재정도 비교적 자유롭게 확대한다. 그런데 이런 정책이 가능한 배경은 막대한 외환보유고다. 정부가 보유한 달러가 최종 지불수단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중국 내 자본가들이 정부 통제를 따르는 이유다. 그래서 미국과 무역전쟁으로 외환보유고를 줄이게 되면, 국내신용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른다. 지금까지 정부 통제에 따랐던 자산가들도 달러 자산을 국외로 유출하려고 달려들 수 있다. 남미 같은 정도는 아니겠지만 재정위기와 금융위기가 동시에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유럽은 이탈리아의 계속되는 재정위기, 영국의 브렉시트를 둘러싼 좌충우돌,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 같은 사회갈등 등 세계금융위기 이후 혼란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재정통합 없는 화폐통합의 딜레마가 계속되다 보니 유럽연합 자체가 지속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경제적 혼란 속에서 기성정당들이 몰락하고, 극우파 포퓰리즘이 나라를 가릴 것 없이 세를 확대하는 것도 심각한 위험이다. G20 회의 개최국 일본은 겉으로는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불황을 극복하고 경제성장을 재개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증가한 엄청난 국가부채와 미국을 능가하는 중앙은행 수량완화 효과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이런 거시경제의 내적 취약성을 개선하지 못하면, 언제 다시 잃어버린 20년이 재현될 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국가부채를 줄일 수도,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원상태로 되돌릴 수도 없다. 브라질·아르헨티나 같은 남미 국가들은 또 다시 마이너스 성장을 반복하고 있다. 2000년대 금융세계화 바람을 타고 성장했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약해진 세계 패권을 무역전쟁이라는 상호파괴적 정책으로 극복하려는 미국, 새로운 패권국으로 도약해 보려 했으나, 도리어 위기에 내몰린 꼴이 된 중국, 세계금융위기 후폭풍에서 아직도 헤매고 있는 유럽, 불안한 폭탄을 품고 괜찮은 척하고 있는 일본, 아예 전망이란 말 자체가 민망해져버린 남미. 이것이 주요 20개국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모든 체제가 영원할 수는 없다. 20세기에 만들어진 오늘날의 세계자본주의도 이제 황혼으로 저물어 가는 중인 것 같다. 물론 이 체제에 도전하는 세계적인 대안운동은 여전히 없다. 그야말로 낡은 것은 사라져 가나, 새로운 것은 나타나지 않는 오늘날의 세계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