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미영 변호사(법무법인 사람)

대상판결 : 대법원 2019. 5. 10. 선고 2016두59010 판결

1. 사건의 개요

원고의 배우자 갑은 ○○회사에 입사해 약 20년 동안 근무했다. 갑은 업무상 과오에 대해 감사원의 감사와 징계를 받았다. 갑은 승진 누락, 구상권 청구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중 자살했다. 원고는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피고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피고는 “망인에게 업무상 스트레스는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이로 인해 자기 판단력 상실에 이를 만한 정신질환 상태에 있었다고 볼 만한 근거가 부족해 업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했다. 이에 원고가 불복해 심사청구를 했으나 기각결정을 받고, 소송을 제기했다. 대상판결의 원심 법원은 “자살이 사회평균인의 입장에서 보아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에 기인한 것이 아닌 한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면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대상판결에서 “망인은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된 정신장애 상태에 빠져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봄이 타당하므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면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

2. 판결의 요지

근로자가 자살행위로 사망한 경우 업무로 인해 질병이 발생하거나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가 그 질병의 주된 발생 원인에 겹쳐서 질병이 유발 또는 악화되고, 그러한 질병으로 인해 정상적인 인식능력이나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는 때에는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자살자의 질병 내지 후유증상의 정도, 그 질병의 일반적 증상, 요양기간, 회복가능성 유무, 연령, 신체적·심리적 상황, 자살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비록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 영향을 미쳤다거나 망인이 자살 직전에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았다고 해 달리 볼 것은 아니다.

3. 대상판결의 의미

(1) 대상판결은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영향을 미친 경우에도, 업무와 자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확인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37조2항은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돼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 다만 그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자살은 ‘고의·자해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업무상재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다만 예외적으로 업무상의 원인으로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일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정된다.

그리고 자살의 경우 업무상 스트레스가 ‘사회평균인 입장에서 보아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여야 업무와 자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 판례(대법원 2008. 3. 13. 선고 2007두2029 판결)다.

대상판결의 원심 법원도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면서 망인과 비슷한 처지에 있었던 다른 동료 직원들과 비교해 볼 때 망인에게만 특히 극심한 우울증을 초래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들어 “자살이 사회평균인의 입장에서 보아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에 기인한 것이 아닌 한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대상판결은 “비록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 영향을 미친 경우에도 업무와 자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하면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상판결 이전에도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 영향을 미친 경우에도 업무와 자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판결(대법원 2017. 5. 31. 선고 2016두58840)이 있었는데, 대상판결은 이를 확인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2) 대상판결은 “자살 직전에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은 경우에도 업무와 자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자살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일 경우 업무상재해로 인정된다. 여기서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란 업무상 과로·스트레스 등 업무상 원인으로 인해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이 발병하거나 악화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를 의미한다.

업무상 원인으로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이 발병 또는 악화된 사실을 입증하는 가장 간명한 방법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에게 진단·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기재된 의무기록을 제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정신과 치료를 받아 그 기록이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런 경우 의무기록 이외의 자료(생전에 남긴 수첩 등의 기록, 동료 근로자와 유가족의 진술 등)를 통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렀음을 입증할 수밖에 없다.

이 사건의 경우 정신과 치료를 받은 기록이 없었던 경우에 해당한다. 이에 피고 근로복지공단도 “정신질환 상태에 있었다고 볼 만한 근거가 부족해 업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부지급 처분했다.

하지만 대상판결은 “자살 직전에 환각, 망상, 와해된 언행 등의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은 경우에도 업무와 자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망인이 정신과 진료를 받은 사실이 없어 정신질환이 있었다는 입증이 없다 하더라도 “망인이 받은 업무상 스트레스의 원인과 정도, 망인의 우울증이 발생한 경위, 자살 무렵 망인의 정신적 상황 등에 관해 면밀하게 살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렀다면, 업무와 자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한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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