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가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국가가 쌍용차 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수십억원대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취하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인 강환주(48)씨는 다음달 1일 공장으로 돌아간다. 지난해 9월 쌍용차와 쌍용차지부, 기업노조인 쌍용차노조가 맺은 '노·노·사 합의'에 따른 마지막 복직대기자 48명 중 1명이다.

복직을 앞둔 강씨는 24일 <매일노동뉴스>에 "기쁜 마음보다 걱정스럽고 답답한 마음이 더 크다"고 토로했다. 합의문에 따르면 7월1일 복직자들은 연말까지 6개월간 무급휴직 상태에 놓인다. 4대 보험에 가입하고 사번만 주어질 뿐 출근은 못 한다. 29일 근로계약서 작성도 회사 안에서 못하고 공장 정문 앞 경비실에서 한다. 복직은 복직인데 무늬만 복직이랄까. 쪼그라든 생계가 조금이라도 펴지려면 6개월은 더 기다려야 한다.

강씨의 가슴을 옥죄는 스트레스는 하나 더 있다. 국가(대한민국 및 경찰)가 제기한 '손해배상·가압류 족쇄'가 그것이다. 그는 1천만원을 가압류당했다. 지난달 초 법원에서 "가압류를 해지했으니 찾아가라"는 내용의 등기 한 통을 받았다. 빚도 갚고, 살림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발걸음 가볍게 법원을 찾았다. 그러나 담당자에게서 황당한 대답만 들었다. "행정상 실수였습니다." 강씨는 "해고자들을 두 번이 아니라 세 번 죽이는 일이었다"며 "정말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극심한 스트레스가 쌓여서일까. 일주일 전 꿈에 '그'가 찾아왔다. 이틀 연속이었다. 1년 전 '옥상진압 트라우마'와 생활고로 고통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료 김주중씨였다.

"형이 이틀 연속 꿈에 나타나 저를 막 때렸어요. 첫날은 저도 형이랑 치고받고 싸웠는데, 둘째 날에는 형한테 '왜 그러냐'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요. 저 데려가려고 온 건가 싶기도 하고…."

강씨는 "국가 폭력이 없었다면 아직 살아 있었을 동료였다"며 "그런 사람이 서른 명"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국가폭력에 의한 트라우마와 손배·가압류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다 세상을 등진 동료들을 생각하면 목이 멘다고 했다. 죽음 직전 그들의 상태와 지금 자신의 상태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빚은 불어나는데 국가는 계속 돈을 갚으라니까 답답하다"며 "솔직히 못하겠다. 이러다 죽을 것 같다"고 호소했다.

"정리해고 수갑은 풀렸는데 국가폭력 수갑은 그대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지부장 김득중)는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청 인권침해조사위원회 권고 이행과 국가 손배·가압류 철회를 촉구했다.

강씨도 기자회견장에 나와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해 경찰청 인권침해조사위 권고를 받아들여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손배·가압류를 철회해야 한다"며 "그래야 산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압류 족쇄는 복직자에게도 채워져 있다. 2009년 해고됐다가 2013년 복직한 노동자 중 유일하게 가압류 조치가 풀리지 않고 있는 채희국씨. 그는 "10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은 투명한 철창으로 만들어진 손배·가압류 감옥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지부 조합원 김주중씨는 지난해 6월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부는 이번주를 '김주중 동지 추모주간'으로 정했다. 이날부터 경찰청 앞 1인 시위에 들어갔다. 경찰 손배·가압류와 경찰청 인권침해조사위가 권고한 국가폭력에 대한 사과와 관련해 민갑룡 청장의 답변을 요구할 방침이다. 김득중 지부장은 "만 10년 만에 해고자 복직 문제가 풀렸지만 천문학적 국가 손배·가압류 문제는 풀리지 않고, 국가폭력에 대한 공식사과조차 없다"며 "10년 만에 '해고 수갑' 하나를 겨우 풀었을 뿐 삶을 향해 온전히 나아가려면 남은 '국가폭력 수갑'을 끊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장석우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경찰에 손해배상 소송 취하를 촉구했다. 경찰이 지부와 조합원들에게 제기한 손배소송은 2심까지 진행된 상태다. 장 변호사는 "집회·시위 진압에 헬기와 크레인을 투입한 것은 비례원칙을 위반한 위법한 공권력 행사일뿐더러 노동자들이 헌법에 명시된 집회·시위 자유, 노동 3권을 행사한 것에 손배소를 청구한 것이 과연 헌법에 부합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신종 노조탄압' 수단으로 등장한 손배·가압류 문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인정한 노동적폐 중 하나다. 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시절 "손해배상과 가압류 남용은 노동 3권을 무력화시키는 부당한 처사"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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