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균 없는 김용균법.” 정부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입법예고안을 두고 노동계와 노동안전단체가 하는 말이다. 위험의 외주화로 비정규 노동자들의 죽음이 잇따르는데 입법예고안이 산재 원인인 외주화를 막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산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 생각도 다르지 않다. 정부에 의견서도 내고 기자회견도 하고 청와대를 찾아 호소도 한다. 제발 하위법령을 제대로 개정하라고. 다시는 김용균 동료들의 죽음을 보지 않게 해 달라고. 태안 화력발전소 노동자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건설노동자 김태규씨 누나 김도현씨, 삼성전자 노동자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 이한빛 PD 아버지 이용관씨, 제주 현장실습생 이민호군 아버지 이상영씨가 글을 보내왔다.<편집자>
 

▲ 김도현씨(건설노동자 고 김태규씨 누나)

동생은 4월10일 경기도 수원 고색동 건설현장에서 추락해 이 세상을 떠났다. 사고 직후 우리 가족은 정부기관과 사건 현장을 방문했다. 건물을 짓느라 높은 곳에서 일했지만 안전대와 안전망은 어디에도 없었다. 동생은 용역노동자라는 이유로 안전화·안전모·안전벨트 등 안전장비를 지급받지 못했으며 가장 기본적인 안전교육조차 받지 못했다. 현장에 가서야 태규의 죽음이 다른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건설업은 산업재해 사망 1위 업종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4월 추락사고 방지 종합대책을 내놓고, 올해 건설현장 안전사고를 줄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건설현장에서 부상·사망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건설현장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후진국형 사고인 추락으로 목숨을 잃는다. 동생의 사망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노동자가 탑승하면 안 되는 화물용 엘리베이터에 전동지게차를 싣고 혼자 탔다가 추락했다. 원청 사업주는 기본적인 예방조치도 하지 않고, 처벌받은 경우도 거의 없다. 그러니 이런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28년 만에 일명 김용균법이라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고, 고용노동부의 하위법령 개정안이 발표됐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개정안에는 원청 책임이 적용되는 기계·기구를 타워크레인·건설용 리프트·항타기·항발기로 협소하게 제한했다. 사고가 특히 많이 발생하는 트럭·지게차·굴착기·고소작업대·크레인 등은 원청에 사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건설기계·기구에서 빠졌다. 건설기계는 중대형 장비다. 사고가 발생하면 조종사뿐만 아니라 주변 노동자들과 시민까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사고에 대한 원청 책임은 건설기계 27종 모두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건설현장 사고를 막을 수 없다. 이런 시행령은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우리 가족에게 시간은 4월10일 그날에 멈춰 있다. 동생이 아직 어떻게 죽게 됐는지조차 모른다. 경찰과 노동부는 현장보존 원칙조차 지키지 않았고, 엘리베이터를 이동시키는 등 사실상 사측의 증거인멸을 용인했다. 정부기관을 믿을 수 없었던 우리 유가족들은 피가 채 마르지도 않은 현장을 수차례 방문해 보름간 직접 사건을 조사해야만 했다. 그런데 노동부는 유가족에게 상의도 없이 사고 현장의 작업중지명령을 해제했다. 사람이 죽은 장소이고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현장인데, 노동부가 공사 재개를 허가한 건 탁상행정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7월 이런 약속을 했다.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사업장은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모든 작업을 중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안전이 확보됐는지 반드시 현장 근로자의 의견을 듣고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기업들과 보수단체들의 반발로 작업중지의 중요한 요건들이 후퇴했다. 하위법령 입법예고안도 작업중지명령 해제 절차에서 사업주가 안전을 확보하겠다고 ‘전제’만 해도 해제신청이 가능하다. 노동자들의 동의 과정과 참여 보장은 미진하다. 게다가 사업주가 해제신청을 하면 4일 이내에 해제심의위원회를 개최하도록 하고 있다. 과연 노동부가 건설현장의 산재 사망을 줄이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대통령께서는 “산재사고를 2022년까지 반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사망자가 더 늘어났다. 사고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구조적인 예방에는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 또한 현장에서는 그 약속이 반영되고 있지 않다. 약속을 반영하려면 제대로 된 산업안전보건법이 필요하다. 노동부의 감시 또한 철저히 이뤄져야 한다.

30년을 살아오면서 정말 헛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혹한 현실에 억울하고 분해서 견디기 힘든 나날을 지내고 있다. 안전 때문에 눈물짓는 국민이 단 한 명도 없게 만들겠다고 한 대통령의 말은 어디로 간 것인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말은? 노동이 자랑스러운 나라를 만들고 싶다고 하지 않았던가? 2022년까지 산재 사망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도 했지만 나는 2022년이 아닌 지금부터 모든 국민이 안전하게 사는 대한민국을 원한다. 다시는, 정말 다시는 이런 죽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이 나서서 노동자들을 진정 보호할 수 있는 산업안전보건법으로 개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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