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최근 미국에서 유행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사회주의는 대체로 북유럽식 복지체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북유럽식 복지는 진보진영이 선호하는 대안이다. 현실 사회주의가 실패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그런데 필자는 소련 사회주의 실패만큼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지국가 모티브는 시장의 실패다.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환경오염, 독과점, 비자발적 실업 등으로 시장이 효율성을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환경오염에 세금을 부과하고, 독점을 규제하고, 고용 또는 실업정책을 시행해 이런 시장실패에 대응한다. 그런데 이때 문제는 시장에서 효율성이 달성됐다고 사회정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효율성이 달성돼도 시장경쟁의 결과로 경제적 불평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회의 평등이 보장돼도 결과에서는 얼마든지 차이가 벌어질 수 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시장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것이다. 넓은 의미의 시장실패인 셈이다. 복지경제는 시장의 실패를 효율성만이 아니라 사회정의 영역으로까지 확대한다. 소득재분배 또는 사회복지를 통해 결과의 차이를 좁히면, 효율성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규범적 정의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복지국가는 사회주의적 도전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주의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시장을 지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시장의 실패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표현과 실제 지향 사이에 괴리가 있다.

어쨌거나 미국의 민주적 사회주의 그룹이나 한국 진보진영은 이런 복지국가 모델로 스웨덴을 주목한다. 하지만 사실 스웨덴 모델은 전통적인 복지국가 모델과 차이가 있다. 스웨덴 모델은 20세기 중반에 형성됐다. 당시 스웨덴 경제의 핵심 목표는 수출공업화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스웨덴노총과 사용자단체가 추진한 연대임금 정책은 수출제조업에서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제조업 노동자의 임금구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내수서비스 물가상승은 억제됐다. 정부 역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 균형재정을 유지했다. 여러 사회보장제도가 도입됐지만, 이는 사회복지지출과 사회복지세의 균형하에서 확대됐다. 즉 사회임금(사회복지지출에서 사회복지세를 공제한 것)은 크지 않았다. 보통 오늘날 복지국가 모델로 상상하는 큰 적자재정, 높은 인플레이션, 상당한 사회임금과는 반대다.

20세기 중반의 스웨덴은 말하자면 생산성 임금을 강조한 셈이다. 연대임금은 생산성에 비례해 임금이 증가한다는 것을 인정한 상태에서, 생산성이 높았던 제조업의 임금 일부를 노조 주도로 축적기금으로 조달하는 것이었다. 연대임금 정책에 따라 생산성이 낮았던 내수서비스에서도 제조업에 준하는 임금인상도 이뤄졌는데, 이는 일종의 저생산성 산업 구조조정이었다. 수출제조업으로 자본이 배분됐고, 제조업 고용이 증가했으며 결과적으로 임금격차는 축소됐다. 수출공업화의 성공으로 경제성장과 함께 상당히 높은 수준의 평등한 풍요도 달성했다. 스웨덴의 복지는 보편적 복지보다는 생산적 복지, 즉 노동 의무에 따른 소득 권리를 추구했다.

이런 스웨덴 모델은 수출공업화라는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1960~1980년대와 비슷하다. 다만 우리나라는 노동자를 철저히 배제한 정부 주도로 자본을 배분했고, 노동과 자본의 타협보다는 재벌을 앞세워 미국의 역수출 전략에 기대어 수출경쟁력을 확보했다. 그리고 이런 방법적 차이는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듯 엄청난 사회적 차이로 귀결됐다.

스웨덴이 전형적인 복지국가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이후다. 당시 스웨덴은 30년간의 수출제조업 고도성장으로 이 부분 노동자들이 연대임금 정책에서 이탈했다. 1970년대 말부터는 세계적 불황의 여파로 경제위기까지 겪었다. 이런 위기에 대한 사민당의 대응책이 생산성임금-생산적복지 체제를 사회임금-보편적복지 체제로 변화시킨 것이었다. 70~80년대 실업급여·출산유급휴가·병가수당·산업재해수당·출산수당 등이 대상·기간·액수에서 대폭 확대됐다. 1960년대까지 스웨덴의 사회임금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였는데, 이때부터 4%대로 상승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회임금의 지속가능성이었다. 1970년대부터 재정적자가 급증해 1990년대 중반에는 공공채무가 GDP의 80%까지 증가했다. 1970년대 초까지 스웨덴 공공채무 비율은 20~30%대에 불과했다. 결국 스웨덴은 1990년대 대대적인 복지개혁에 나선다. 모든 사회보험의 소득대체율을 낮췄고, 연금개혁을 시행했다. 그리고 이런 결과로 2000년대에는 균형재정을 이루고 공공채무를 GDP 대비 40% 이하로 낮출 수 있었다.

현재 스웨덴은 20세기 중반 연대임금 모델의 유산이다. 스웨덴은 연대임금 모델의 위기를 복지국가로 해결하려다 성공하지 못했고, 복지국가를 개혁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스웨덴이 복지국가 중에서도 주목받는 이유는 사실 복지개혁의 연착륙에 성공한 나라가 적어서다. 서유럽 국가 상당수는 높은 사회임금과 저성장이라는 조건이 충돌하면서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있다. 사회임금이 높은 이탈리아·프랑스의 경우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며 기성 정당들이 모두 몰락하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스웨덴 모델은 두 가지 시사점을 준다. 첫째, 스웨덴 모델의 시작은 케인스주의나 복지국가가 아니다. 고도성장이라는 거시경제적 조건에서 생산성임금과 소득정책으로 미시적 사회후생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둘째, 저성장과 저출산·고령화라는 조건에서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 문제다. 오늘날 세계경제는 20세기 초·중반의 고도성장 경제가 아니다. 스웨덴이 70~80년대 복지체제 전환 과정에서 겪은 곤란이 현재는 모든 나라에 공통된 조건이다.

그런데 미국의 민주적 사회주의 그룹이나 한국 진보진영은 스웨덴 모델을 케인스주의, 심지어 적자재정에는 한계가 없다는 현대화폐론으로 적당히 우회하려고 하는 것 같다. 사회주의 부활은 복지국가라는 우회로로 이뤄지기 어렵고, 더군다나 복지국가가 처한 현재적 곤란함까지 회피하는 식으로는 더욱 어렵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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