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2020년 최저임금 교섭이 시작됐다. 국민임금으로 불리다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최저임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올해는 최저임금위원회 결정구조 이원화를 둘러싼 논란으로 최저임금이 유례없이 때 이르게 국민적 관심사로 부각했다. 여야 정쟁의 중심 의제로도 내내 회자됐다. 지금까지 국회에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한때 이의 없이 시대적 과제로까지 격상된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최저임금 인상률을 최저로 낮춰야 한다는 여론만 비등하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 공약 지켜라”고 촉구하며 손쉽게 돌파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무책임하다는 자책감에 힘겹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권익을 강조해 온 만큼 같은 처지의 을인 자영업자들의 고통에 눈감을 수도 없다. 진퇴양난이다. 참 난처하고 꼴사나운 2019년이다.

올해 심경은 딱 패전처리 투수다. 당장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에서 해촉되면 좋겠다 싶다. 공익위원들이 전원 교체된 조건에서 용을 써 봐야 5%를 넘긴 어려울 테고, 3% 내외에서 공방하다 법정시한인 6월27일을 넘겨 7월 초께 결정되겠지. 온 힘 다하자 맘먹다가도 5% 돌파가 현실적 목표라는 생각에 이르면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잦아든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힘겨운 현실을 떠올리면 악전고투해 한 푼이라도 더 올리려 고심해야 하는데 이 모양이다. 활동가로 전선에 서서 싸워야 하는데 자꾸 점쟁이가 되려고 한다. 예전 같은 긴장이 생기지 않는다. 의욕 상실한 무자격 노동자위원이다. 나는 그렇다 치고 다른 26명 최저임금위원들의 상태는 어떨까. 이 상태로 최저임금위에 들어가는 게 맞나 의구심만 커져 가는 요즘이다.

최저임금위 광주공청회 발표자였던 김정훈 광주경총 본부장의 말이 맞다. 인상률을 얼마로 할지 최저임금위에서 논란할 게 아니라 노사 당사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게 최선이다. 지역별·업종별뿐만 아니라 같은 업종이나 직종 내에서도 이익률 편차가 큰 만큼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당사자들이 직접 교섭해 적정한 인상액을 결정하는 것이 최선이다. 결국 문제는 지나치게 낮은 노조 조직률이다. 비정규 노동자의 경우 노조 조직률이 2% 내외에 불과하다. 헌법이 보장한 유일한 자구책인 노동 3권이 무력화돼 있는 실정이라 노사 자율교섭은 그림의 떡이다. 지나치게 낮은 노조 조직률이 합리적인 사회적 교섭이 돼야 하는 최저임금 협상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이라도 노사정이 합심해 노조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에 나선다면 최저임금위가 500만명이 넘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대신해 대리교섭을 하는 구조가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노조 조직률이 30%를 넘어서거나 단체협약 적용범위 확대가 실현된다면 최저임금 제도는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노사 자율로 결정할 수 있는데 굳이 최저임금위 같은 사회적 교섭 형식을 빌릴 이유가 없다. 막대한 유무형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말이다.

5년차 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내린 결론은 더 이상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합당한 최저임금 결정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최저임금만 가지고 아등바등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나 재벌구조 개혁 등 근본적인 사회경제구조 개혁이 동반되지 않은 조건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경제적·사회적 선순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최저임금 적용 당사자들이 대부분 무노조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어 최저임금을 올려도 잘 지켜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최저임금 적용 저임금 노동자들이 노조로 조직화돼 스스로 임금교섭력을 가지고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피고용인을 둔 영세 자영업자들이 노동 3권처럼 상인 3권을 쟁취해 대기업을 비롯한 경제적 강자에 맞설 힘을 가져야 한다. 을들의 연대와 상생도 이런 조건에서라야 진전될 수 있다.

올해는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이 약자들 간 대립으로 치닫고 있어 소모적이다. 다른 현실적 대안은 없는가. 현재로선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역할이 그나마 기대된다. 본위원회 무산이 장기화해 무용론까지 나오는 경사노위지만 노사 계층별대표 6인이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최저임금과 연동한 을들의 연대를 실현할 방도를 찾을 수 있는 사회적 공론의 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오래도록 유지돼 온 사회적 대화기구인 최저임금위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경사노위가 구명줄이 될 수도 있다. 사면초가이므로 따지지 말고 무엇이든 해 봐야 할 때다.

최우선으로 노조 조직률을 올려야 한다. 재벌구조 개혁과 경제민주화 진전에도 주력해야 한다. 그래야 최저임금 인상이 가져올 사회적 유익을 극대화될 수 있다. 내년부터는 최저임금과 최저임금위가 지금처럼 과잉정쟁 대상이 돼선 안 된다. 임금은 노동의 대가다. 일터에서 결정해야 마땅하다. 최저임금 1만원 의제의 시효가 다해 가면서 최저임금위 시효도 다해 간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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