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1987년 6월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 민주항쟁은 한국 사회를 국민이 주인인 곳에 가깝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당시 시위 현장에는 사무실에서 은행에서 펜을 던지고 거리로 뛰쳐나온 ‘넥타이 부대’가 있었다. 이들이 만든 노조가 사무금융노조와 사무금융연맹이다.

노조와 금융권 사용자들이 기금을 출연해 만든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 12일 공식 출범했다. 1년이 넘는 준비기간을 거쳤다. 재단은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통한 사회 양극화 해소를 목표로 활동한다. 연맹 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김현정(49·사진) 노조 위원장은 “사회변혁 시기마다 불의한 정권에 맞선 넥타이 부대가 있었다”며 “사무금융 노동자들의 ‘우분투 운동’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강동 노조 사무실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 재단 출범을 앞두고 양극화 해소 아이디어 공모전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반응이 어땠나.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참여하셨다. 개인과 조직을 합해 40~50군데에서 아이디어가 접수됐다. 현실성이 있는 것들이 많았다. 우리나라 보육원은 원생을 만 18세까지 보살핀다. 그 나이가 지나면 정착금 500만원을 주고 내보낸다. 아무것도 준비가 안 된 상태라서 나가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에게 교육을 지원하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우리나라에는 16개국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있다. 보통 농촌지역이나 지방 소규모 공장에서 일한다. 이들에게 ‘서울 구경’을 시켜 주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서울 광화문광장이나 전태일기념관처럼 의미 있는 곳을 보여 주자는 것이다. 민간외교 아니겠나. 1주일에 한 나라씩 2박3일 일정으로 짜면 16주면 소화할 수 있다.”

재단은 12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출범식에서 윤인원씨가 응모한 '고아원 연계 보호종료아동 직업교육 지원사업' 아이디어에 대상을 줬다. 접수한 아이디어는 실제 사업으로 집행한다.

"비정규직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대출금리 우대"

- 어떤 비전과 목표를 갖고 활동하나.
“큰 틀에서는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가 목표다. 구체적으로 불평등과 양극화를 야기하는 것이 비정규직이라고 보고 이를 해소하는 것에 포인트를 두기로 했다.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비정규직이 있다. 그중 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사무금융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문제부터 해소하려고 한다. 최근 기금 일부를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재단은 이달 5일 한국장학재단에 장학금 1억5천만원을 전달했다. 장학금은 학업을 병행하며 사무금융 분야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나 자녀 대학생 생활비로 쓰인다. 1인당 150만원을 지원한다. 10분위 소득구간 중 1~3구간 비정규 노동자를 중심으로 대상자를 선정한다.

- 재단 사업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면.
“크게 두 줄기다.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취약계층을 직접 지원하는 사업과 재단 설립 취지·목적을 외부에 알리는 사업이다. 올해는 사업계획 10개가 확정된 상태다. 모두 비정규직 관련 사업이다. 현재 사무금융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를 포함한 2개 외부기관에 연구를 의뢰했다. 3월에 시작했다. 6개월 걸리는 사업이다. 실태조사에 기반을 두고 사무금융 사업장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찾고자 한다.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토론회를 준비 중이다. ‘우분투 마이크로크레디트’도 시행할 예정이다. 중소기업이나 직원을 고용한 자영업자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재단이 이를 확인한 뒤 인증서를 주는 제도다. 노조 산하조직이 있는 여신금융기관이 50여곳 있다. 인증서를 받으면 해당 금융기관이 사업자에게 대출금리를 깎아 줄 수 있도록 회사와 양해각서를 체결할 예정이다. 약탈적 금융에서 사회적 역할을 하는 금융이 되는 것이다. 회사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제로 금리는 아닐 테니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니다. 관할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에 참여를 요청할 생각이다. 노사정 상생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 정기훈 기자

"연맹과 노조, 화학적 통합 초석 닦겠다"

노조는 재단 활동 취지를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노조는 올해 1월 열린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사용자들에게 임금 4.4% 인상을 요구하기로 했다. 경제성장률(2.7%)과 물가상승률(1.7%)을 더한 숫자다. 다만 노조는 산하조직과 사업장이 직접고용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파견·도급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면 물가상승률을 제외한 임금을 동결할 방침이다. 2018년 2월 설치한 불평등 양극화 해소 특별위원회의 역할이 컸다. 김현정 위원장은 “특위 활동과 국회 토론회 등을 거치면서 산하조직들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중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해 큰 반대 없이 교섭 지침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하나카드 노사처럼 정규직은 연월차 수당과 시간외근무 수당을 양보하고, 회사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사례도 있다”며 “정규직 전환 사례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를 확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 한 몸이었던 사무금융연맹과 노조가 분열과 통합 과정을 거쳤다.
“오늘 6·10 항쟁 32주년을 맞아 노조와 연맹이 함께 향린교회에서 기념식을 했다. 민주항쟁을 이끌었던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결성된 곳이다. 노조·연맹 간부 150여명이 모였다. 87년 6월 민주항쟁의 정신을 이어받은 조직이 노조와 연맹이다. 대산별노조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3년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기념식에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더 큰 사무금융 노동자로 태어나기 위해 함께 가자’고 말했다. 금속노조도 그렇고 화섬식품노조도 그렇고 대산별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모두 시행착오를 겪었다. 사무금융 노동운동이 한 발 전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 최근 연맹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했는데.
“연맹이 내부에서 갈등을 겪었다. 가장 큰 피해는 현장에서 투쟁하는 조직과 조합원들이 입었다. 출마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현장투쟁 복원을 위해서였다. 기념식에서 장기투쟁 사업장인 오라클노조 지원을 위해 3천만원 채권구입 약정서 전달식을 했다. 연맹과 산별이 함께하는 연대투쟁을 강화할 계획이다. 동질성이 생겨나고 그동안의 간극이 치유되지 않겠나. 연맹이 투쟁력을 상실하면서 의무금 장기미납 사업장까지 나왔다. 특별위원회를 꾸려 재정 전반을 점검하고 문제를 바로잡겠다. 연맹 위원장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 갈등의 단초가 됐던 지역농협 사업장 노조간부들도 이제 옛날만큼 날을 세우지는 않는다. 대화와 만남의 기회를 자주 마련하겠다. 연맹과 노조의 화학적 통합을 위한 초석을 닦겠다.”

"사무금융 노동자, 양극화 해소 마중물 될 것"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회변혁 시기마다 불의한 정권에 맞선 사무금융 노동자들이 있었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받아들여지고 20년 이상 흘렀다. 사회 양극화의 극단에 서 있는 사람이 비정규 노동자다. 사무금융 노동자들의 ‘우분투 프로젝트’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양극화 해소의 마중물이 되길 기대한다. 재단에 2021년까지 80억원이 약정돼 있다. 그다지 큰 금액은 아니다. 많은 아이디어와 사업을 꼼꼼히 실천해 더 많은 기업을 참여시켜야 한다. 다음 단계는 내부운동이다. 시일이 필요하겠지만 언젠가 '끝전 떼기 운동'이 내부적으로 시행되길 기대한다.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급여 중 1만원 미만액을 재단에 출연하는 것이다. 1인당 평균 5천원으로 잡으면 연간 20억원을 마련할 수 있다. 마지막 단계는 국민공모다. 재단이 굿네이버스나 사랑의 열매 같은 이름난 곳으로 성장해 국민 참여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날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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