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준 <노멀 레볼루션> 저자

당혹한 눈빛이 역력했다. 노조 없는 곳에 노조가 생겼으니 당연했다. 노조를 상대하는 일이 주요 업무인 노무담당자는 노조가 생기는 것을 막지 못했으니 위로부터 많이 깨졌을 것이다. 특히 노무업무에만 집중하는 담당자 없던 하청업체는 그냥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군림하다가 노조가 생기면 당혹스러워 한다. 급하게 노무 경험자를 채용하거나 노무사를 데려오기도 한다.

노무담당자는 늘 노조를 만나는 일선에 있고 노조 또한 노무담당자를 자주 만난다. 노무담당자가 어떤 마인드로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요즘은 노무 전문가들이 줄어들고 재생산도 안 됩니다.” 오랜 노조 관련 경험을 가진 분이 이렇게 말했다. 가끔 노무담당자를 가리키는 ‘노무쟁이’라는 말을 듣는다. 돌이켜 보니 노조활동을 하면서 중소기업부터 대기업에 이르기까지, 노무 실무자에서 책임자까지 만나야 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제발, 술집과 다방을 오가지 마세요.” 꽤 오래전 노무담당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노무를 하는 사용자 상당수가 노조간부나 조합원을 만나 술 먹는 일이 많았다. 이를 술집 도우미에 빗댔다. 하도 술 먹어 대니 간은 물론 몸이 축나면 인사 파트로 옮겼다가 다시 노무업무로 오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를 찻집 아가씨에 빗대 표현했다. 지금 생각하면 특정 직업을 가진 여성비하였다는 점에서 죄송하다. 무엇보다 노무를 담당하는 분들이 불쾌했을 것이다. 그땐 일부러 그랬다. 제발 그런 식으로 조합원이나 간부들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취지였다.

노무담당자들은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한량형이다. 노조가 없으면 속되게 “꿀 빤다”는 표현처럼 크게 신경쓰지 않고 업무처리를 한다. 혹은 노조가 있되 사용자 말 잘 듣는 노조라면 가끔 식사나 술대접 해주면 끝이니 한량과 비슷해 보였다. 둘째는 ‘행동대’형이다. 노조를 적대시하며 지시를 하거나 받아서 노조를 무력화하거나 깨기 위해 공격적으로 움직이는 노무관리자다. 셋째는 ‘삥쟁이’형이다. 남의 돈을 갈취하거나 혹은 노름판이 벌어지면 곁에서 돈을 뜯어내는 사람을 속되게 ‘삥쟁이’라고 한다. 노사관계에 갈등이 생기면 전문가랍시고 개입해서 노조를 공격하고 무력화한 대가로 회사에서 돈을 받는 노무전문가들이 여기에 속한다. 넷째는 김밥형이다. 회사 윗전에 치이고 노조에도 치이면서 스트레스 가득해 옆구리 터진 김밥신세인 노무담당자도 봤다. 다섯째는 조율사형이다. 노조를 잘 이해하면서 노동권을 존중하며 조화를 찾아가는 유형이다.

정부에서 고용노동부는 늘 괄시받는 부처로 보인다. 정부의 재정이나 경제정책을 다루는 부처에 비해 노동부는 그 하위 파트너 취급을 받는 모습을 종종 봤다. 노동존중 사회라면 노동부 비중이 결코 낮을 수 없다. 노동집약적인 산업에 노조가 있는 회사 노무쟁이는 끗발이 꽤 있는 경우도 있다. 상당수 기업에서 노무는 핵심부서가 아니다. 경영기획·제품기획을 하는 곳에서 사업개편을 결정하면 노조가 반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무쟁이들은 나중에야 계획을 알게 되고 뒤늦게 노조 반발을 무마하려 부랴부랴 뛰어다닐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부서는 직원들 즐거운 직장생활을 위해 기여하는 자부심 높은 부서가 아니라 경영진 명령과 노조 반발 사이에 끼여 옆구리 터지는 기피 업무다.

오랫동안 노무업무를 하다가 스트레스와 과음·과로로 쓰러져 몸이 불편해진 사람을 우연히 마주치니 씁슬했다. 노무쟁이가 모두 자본가의 개일까. 노동존중 사회를 만드는 데 한 축이 되기도 한다. 무노조 기업에서 한량처럼 지내는 노무담당자가 많다는 것은 노동권이 바닥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노조를 죽이려는 사고방식은 위험하다. 삥쟁이들은 돈벌이를 위해 노사관계를 파국으로 내몬다. 옆구리 터진 김밥은 안쓰럽다. 한국 노사관계에 조율사형 노무담당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들이야말로 사회갈등의 가장 중요한 축인 노사관계를 풀어 가는 전문가다.

피해의식을 가진 조합원이나 간부가 노무담당자를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있다. 자존감 높은 조합원과 간부는 노무담당자와 입장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격을 무시하지 않는다. 입장 차이는 분명히 하되 인격을 모독하지 않는다. 치열하게 싸워야 할 노무쟁이가 있는 반면, 존중해야 할 노무담당자도 있다. 사용자 입장에 서 있지만 노조를 존중하고 노동권 정착에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하는 노무담당자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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