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과장님 주총 어디에서 하나요?"
"예? 저요? 어, 그냥 참석합니다."
"아니, 어디서 하냐고요."
"아~ 네."
"아니 220만주 가진 우리사주조합장한테 장소도 얘기 안 해 주면 어떻게 합니까?"
"아~ 하하. 아~ 네. 알겠습니다."
"장소가 어딘지 얘기를 해 주셔야지, 한마음회관입니까. 어디서 합니까."
"아~ 하하. 네. 끊겠습니다."

현대중공업 주주총회가 열렸던 지난달 31일 오전 8시34분. 현대중공업 주식 3.13%(221만4천528주)를 가진 문대성 우리사주조합장과 회사 주주총회 실무자인 회계부 소속 A과장 간 흡사 '사오정 대화'가 오고갔다. A과장은 주주총회 장소를 묻는 문 조합장의 질문을 의도적으로 피하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A과장과 같은 부서 B차장 또한 문 조합장의 문자메시지와 전화에 답하지 않았다.

오전 10시35분께 회사 관계자가 피켓과 확성기로 "주총 장소가 바뀌었다"고 공지하는 소리를 들은 문 조합장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이동버스가 정문 근처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가 가까스로 버스에 탑승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버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버스기사는 "사장(버스회사) 지시가 있어야 출발할 수 있다"는 얘기만 반복했다. 진행요원은 "차량제공이 의무이므로 탑승까지만 가능하고 이동은 하지 않는다"는 황당한 말을 했다.

결국 오전 10시50분이 돼서야 다른 동료 차량을 타고 울산대 체육관으로 이동하던 문 조합장은 도로 위에서 "주총이 끝났다"는 뉴스를 들었다. 근로복지기본법 46조(우리사주 보유에 따른 주주총회의 의결권 행사)와 같은 법 시행령 28조(조합의 의결권 행사)에 따라 우리사주조합장이 조합원들을 대리해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해야 하지만 권리행사를 봉쇄당한 셈이다.

"5·31 주주총회 법적 효력 없어"

금속노조·김종훈 민중당 의원 주최로 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현대중공업 위법 주총 무효, 대우조선 재벌특혜 매각 중단 입장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문 조합장은 주주총회 당일 A과장과 통화한 내역을 공개하면서 "법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한 날치기 쇼"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대중공업은 주주총회 장소·시간을 기습적으로 변경해 법인분할안을 통과시켰는데, 노동계는 절차적으로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측은 당일 공시·확성기·유인물·공고 나무판 등을 통해 현장에서 주총 장소와 시간 변경을 알렸고, 이동수단까지 제공했기 때문에 절차적 문제가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런데 회사가 주장하는 절차적 정당성 주장을 뒤흔드는 정황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송영섭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장)은 "현대중공업은 주주총회에서 법인분할안건이 통과됐다고 하는데 법적인 주주총회 요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효력이 인정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애초 오전 10시로 공지됐던 주주총회 개회시간이 30분 지난 오전 10시30분께 울산대 체육관으로 공지된 점, 변경된 주총장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물리적으로 확보되지 못한 점, 회사가 제공한 이동수단(버스)이 실제 주총장으로 이동하지 않은 점, 일부 제시간에 도착한 주주들이 위임장을 제시하며 입장하려 했지만 경찰과 용역의 물리력에 의해 가로막힌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법원은 주총 의결권 효력과 관련해 소액주주 참석권 보장을 중요하게 본다. 대법원이 2003년 무효 판결을 내린 2000년 국민은행 주주총회 사건이 대표적이다. 국민은행은 2000년 3월18일 오전 10시 주총을 열어 행장·이사 선임 안건을 통과시키려 했지만 금융노조 국민은행지부가 "낙하산 인사"라며 반대하면서 주총장을 막자 12시간이 지난 오후 10시께 임원실에서 임직원만 출석한 채 주주총회를 열어 안건을 통과시켰다.

현대중공업지부 "파업 계속"

대법원은 당초 소집통지된 개회시간에 출석해 기다리던 주주들에게 소집장소 변경 공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절차에 하자가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주총 개회시각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지연되는 경우에도 정각에 출석한 주주 입장에서 변경된 개회시각까지 기다려 참석하는 게 곤란하지 않을 정도라면 절차상 하자가 없지만, 그 정도를 넘어 개회시간을 부정확하게 만들고 소집통지된 시각에 출석한 주주들의 참석권을 침해했다면 주주총회 소집절차가 현저히 불공정하다"고 판시했다.

금속노조는 "오직 현대중공업 사측이 선별한 주주들만 사전에 변경된 주총장에서 대기하다가 10분 주총을 끝내고 유유히 장소를 빠져나왔다"며 "70년대 이뤄졌던 체육관 선거와 다를 바 없는 체육관 주총"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도 이날 오후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중공업이 도둑 주총을 열었다"며 "주주총회 결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무효 소송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하루 전면파업한 지부는 4일 7시간 파업, 5일 4시간 파업, 6일 2시간 파업 등 전면파업과 시한부파업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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