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지난달 23~26일 유럽의회 선거가 있었다. 그 결과는 현상(現狀)을 타파하는 것이었다. 지난 40년 동안 유럽의회를 장악해 온 중도 좌·우파 연합세력이 동반 몰락하면서 유럽 정치 주류가 된서리를 맞았다. 이런 결과를 놓고 한 국내 언론은 “유럽의회 중도 주류 퇴조 … 프랑스·영국·이탈리아 극우 1위”라고 제목을 뽑았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변화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중도주의 양당의 의회지배가 깨진 것이다. 그동안 유럽의회는 중도우파 연합인 ‘유럽국민당(EPP)’과 중도좌파 연합인 ‘사회·민주당(S&P)’이 공동 지배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전체의석 751석 중 유럽국민당은 38석 줄어든 179석, 사회·민주당은 37석 감소한 150석을 얻는 데 그쳤다. 두 당 의석을 합쳐도 과반에 크게 못 미쳐서 더 이상 유럽의회를 장악할 수 없게 됐다.

다음은 극우세력의 약진이다. 극우 포퓰리즘 성향의 ‘유럽·민족의 자유(ENF)’와 ‘자유와 직접민주주의 유럽(EFDD)’은 각각 21석·15석 늘어난 58석과 56석을 얻었다. 여기에 반난민 정책에서 이들과 보조를 같이하는 ‘유럽보수개혁(ECR)’ 의석 58석을 합치면 172석이나 돼 주류 두 당파에 맞먹는 제3 세력을 형성하게 됐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영국·프랑스·이탈리아에서의 극우 당파 돌풍이다. 영국에서는 신생 극우정당 브렉시트당이 31.7%를 득표해 영국 전체 의석 73석 중 29석을 차지했다. 반면 보수당(8.7%)과 노동당(14.1%)은 참패했다. 프랑스에서는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이 23.4% 득표로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당(22.4%)을 누르고 1위를 했다. 이탈리아에서는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가 이끄는 동맹당이 34.3%의 득표율로 좌파 포퓰리스트 오성운동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다음은 녹색당의 약진이다. 가장 두드러진 경우는 독일인데, 독일 녹색당은 20.7%의 득표율로 사회민주당(15.6%)을 제치고 제2 당이 됐다. 프랑스에서도 ‘환경정당(EELV)’이 13.2%로 제3 당이 됐다. 이에 힘입어 유럽의회의 ‘녹색당-자유 동맹(Greens-EFA)’은 18석 늘어난 70석을 차지했다. 그래서 녹색바람이 불었다는 평이 나온다.

이와 같은 기존 정치지형 퇴조는 추세적이다. 유럽에서 중도 좌우 정당들의 정치지배가 퇴조한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중도좌파 정당들은 꾸준히 대중 지지를 잃어 왔다. 토니 블레어가 신자유주의적으로 개혁한 영국 노동당이 그랬고, 신자유주의에 타협한 프랑스 사회당이 그랬고, 하르츠 개혁을 했다고 자랑하는 독일 사회민주당도 그랬다. 그 결과 프랑스 사회당은 사실상 몰락했다. 심지어 사회민주주의 나라로 알려진 스웨덴에서도 중도좌파 사회민주노동당은 2018년 총선 득표율이 28.4%에 불과해 단독집권을 하지 못했다. 반면에 유럽 전반에서는 극우 정치세력이 득세했다. 동유럽에서 이런 경향이 현저했다. 폴란드·헝가리·오스트리아·체코 등이 그런 경우다. 하지만 프랑스·영국·네덜란드의 경우에서 보듯이 동유럽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서유럽에서도 극우 당파가 계속 진출하고 있다.

정치지형 격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언론에서는 반이민·반유럽연합 정서에서 비롯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런 보도는 사실보도이기는 하지만 원인진단으로 보기 어렵다. 이런 보도는 왜 그런 반대 정서가 높아지게 됐는지를 분석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런 반대 정서들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의 표현인 신자유주의가 복지국가 모델을 침식해 노동자·민중의 삶의 질을 계속 악화시켰기 때문에 생겨나고 또 심화했다. EU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하위체제였다. 그리고 이민·난민 유입 정책은 인도주의를 위한 정책이 아니라 상대적 과잉인구를 창출함으로써 초국적 자본에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을 공급해 착취도 제고를 뒷받침하는 장치였다.

중도좌파가 추진한 독일의 하르츠 개혁이니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이니 하는 것들은 죄다 이런 큰 틀 안에서 이뤄졌다. 그런 신자유주의 개혁은 자본주의 경제를 살리는 데 다소 도움이 됐지만 노동자 삶의 질은 후퇴시켰다. 노동자의 삶의 질 후퇴는 동유럽·남유럽처럼 산업경쟁력이 약한 나라에서 더욱 심했다. 이 문제는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에 의해 심화했다. 제로성장 경제 대불황이 10년을 넘기면서 자본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하면서 자본축적을 위해 노동을 더욱 희생시켰다. 이에 맞서 노동계급은 개별 노동개악 정책을 반대하는 데서 나아가 기존 신자유주의 세계화 자본축적체제 자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이런 유럽 정치지형 변화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대개 한국노총처럼 중도우파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에 희망을 걸거나 민주노총처럼 정의당·민중당·노동당 등 중도좌파 정당에 희망을 걸고 있다. 그런데 중도주의 정당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축적체제하에서, 지속되는 세계 경제 대불황하에서 노동자 대중에게 양보를 강요할 뿐 빵부스러기를 나눠 줄 의사도 능력도 없다. 따라서 계속 그런 중도주의 정당들을 지지한다면 조직대중이 노동운동에서 멀어질 뿐 아니라 조직되지 못한 광범위한 노동자 대중이 노동운동을 경원시하고 극우 정치세력의 거짓선전에 경도될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운동은 하루빨리 중도주의 당파와의 연결고리를 끊고 왼쪽으로 급진화해야 한다. 다만 한국 사회는 1987년 이후 민주화에도 파시즘적이고 식민지적인 지배체제를 기본적으로 온존시켜 왔음을 직시하고, 이 반자본 급진화를 그와 같은 구체제를 해체하는 민주민족혁명과 불가분적으로 결합해 추진해야 할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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