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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직자 조건, 임금채권 포기 강요?] 흔들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통상임금 재직자 조건' 판례"정기 고정급 재직자 조건은 무효" 판결 잇따라 … 대법원 "갑을오토텍 명절상여금도 통상임금" 판결 뒤집어

재직자 조건이 붙은 정기 고정급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가 흔들리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에서 잇따라 재직자 조건이 근로기준법 위반이어서 무효라는 판결이 나오고 있어 대법원의 고민도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세아베스틸 이어 기술보증기금에서도
"정기 고정급 재직자 조건은 무효" 판결


20일 한국노총 중앙법률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38민사부(재판장 박영재)는 지난 14일 기술보증기금 노동자 900명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지급일 현재 재직 중인 직원에게만 지급하는 기본성과연봉과 내부평가성과연봉 중 최소 보장 부분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기술보증기금은 기본성과연봉을 통상임금에 비례해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성과연봉으로 규정하고 간부직에게 연 410%를, 비간부직에게 연 600%를 해당 월에 나눠 지급했다. 내부 경영실적평가 결과에 따라 지급하는 내부평가성과연봉은 간부직에게 연 390%를, 비간부직에게 연 200%를 해당 월 보수지급일에 줬다. 내부평가성과연봉은 평가에 따라 5개 등급으로 나눠 주는데 최저등급이라도 152~260%는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성과연봉 지급대상은 지급일 현재 재직 중인 직원이다.

법원은 "성과연봉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더라도 평가 결과나 업무성과와 무관하게 차등 없이 지급되는 정기 고정급에 부가된 재직자 조건은 무효"라고 밝혔다. 지급일 전에 퇴직하는 노동자에게 이미 제공한 근로에 상응하는 부분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해석되므로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는 취지다. 회사가 정기 고정급에 지급요건에 재직자 조건을 넣어 지급일 전 퇴직하는 근로자를 제외한 것은 "기발생 임금에 대한 일방적인 부지급을 선언한 것으로 유효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법원 입장이다. 법원은 아울러 "취업규칙나 근로계약에 재직자 조건을 규정하는 것은 근로제공 대가로 받아야 할 임금을 사전에 포기하게 하는 것이어서 무효"라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서울고법이 지난해 12월18일 내놓은 세아베스틸 통상임금 소송 결과와 맥락이 같다. 기술보증기금의 경우 월할 정기 고정급이 기본연봉 월액의 50% 이상을 차지해 근로자의 기본적인 생활유지 수단이 된다는 측면에서 기본급과 다를 수 없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정기 고정급이 사실상 기본급에 준하는 임금으로서의 실질을 가진다고 보이는 이상 재직자 조건의 유효성을 판단하는 데 기본급과 정기 고정급을 다르게 할 합리적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장진영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는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법원에서 컨트롤 C(복사하기), 컨트롤 V(붙이기) 식으로 재직자 조건이 있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형식적인 판결을 내렸는데, 이번 사건은 자세한 임금구성이나 근로자 생활유지를 위해 기본급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피면서 세심하게 판시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고민 깊어지는 대법원
재상고심에서 갑을오토텍 명절상여금 고정성 인정


대법원도 고민이 깊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애초 16일 예정했던 IBK기업은행 통상임금 소송사건 선고기일을 하루 전날인 15일 갑자기 연기했다.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기업은행 노동자 1만1천여명이 제기한 이번 소송은 재직자 조건이 붙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가 쟁점이다. 2016년 서울중앙지법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한 반면 2017년 서울고법에서는 고정성이 결여된다는 이유로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관계자는 "대법원이 갑자기 선고를 연기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 데다 선고 연기 통보가 온 날이 기술보증기금 서울고법 판결 다음날이어서 재직요건에 대해 대법원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법조계에서 흘러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민유숙)는 지난 10일 갑을오토텍 파기환송 재상고심에서 재직자 조건과 관련해 2013년 전원합의체 판결과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였다. 갑을오토텍은 명절상여금에 대한 명시적인 재직자 조건은 없지만 2013년 대법원은 갑을오토텍이 설과 추석에 지급하는 상여금을 회사가 설립된 2004년 이후 노동자 2명이 퇴사를 이유로 지급받지 못했는데 노동자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므로 지급일 재직조건이 노사합의 내지 관행으로 확립된 것은 아닌지 제대로 심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명절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한 원심 판결을 파기한 것이다. 대전고법은 심리를 재개했지만 이런 사정만으로 고정성이 결여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했고, 2019년 대법원도 2013년과 달리 원심을 인정했다.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대법원이 재직자 조건에 대한 노동관행 형성 자체를 엄격하게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며 "2013년 갑을오토텍 전원합의체 판결로 새롭게 형성된 고정성 법리에서 재직자 요건을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미영  ming2@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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