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도급 관련 규제가 겉으로는 많이 강화된 듯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두고 빗대어 하는 말이다. 입법예고 중인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개정안도 음식 가짓수가 많을 뿐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밥과 국이 잔칫상에서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명분으로 내건 하청(수급인) 노동자 보호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도급인(원청) 사업주의 안전보건 실천도 이끌어 내지 못할 것이라는 혹평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건설업을 제외한 업종(제조업·전기통신업 등)에서 유지·보수공사 도급이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게 됐다. 유지·보수공사는 이론적·경험적으로 사고발생위험이 가장 높은 작업에 해당한다. 가장 위험한 작업을 하는 하청노동자들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생긴 것이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도급인’과 ‘건설공사 발주자’를 구분한 것부터가 화근이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건설공사에 해당하는 유지·보수공사를 외부에 맡기는 기업은 건설공사 발주자에만 해당하고 도급인에는 해당하지 않아 각종 도급규제 적용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시행령 입법예고안에서 건설공사 발주자 적용대상은 총 공사금액이 50억원 이상의 공사로 한정돼 있다. 유지·보수공사는 대부분 총 공사금액이 50억원 이하인 점을 고려하면, 유지·보수공사를 하는 하청노동자는 사실상 도급규제 보호로부터 무장해제된 셈이다.

둘째,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은 도급인으로 하여금 수급인과 그 노동자의 산업안전보건법 준수 확인, 위반시 시정조치를 하도록 한 강행규정을 임의규정으로 약화시켰다. 도급인으로서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개악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도급인에게 수급인을 대신해 선임할 수 있도록 한 안전·보건관리자가 정작 수급인 노동자에게 지도·조언을 할 수 없는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또한 도급인에게 수급인 노동자의 산재예방을 위해 수급인과 동일한 의무와 책임을 부과하면서 도급인의 직원이 수급인 노동자에 대해 지도·감독을 할 수 없는 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 부족 탓이다.

셋째, 도급인 사업주에게 구체적 행동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행정편의적으로 접근했다. 준법의지가 있는 기업조차 도급인 사업주로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상할 수 없다. 행정기관의 자의적 법해석과 집행이 불 보듯 훤하다. 범법자를 양산할 뿐 법 준수를 유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도급인과 수급인(하수급인) 간의 역할과 책임을 구분하지 않고 도급인에게 수급인과 ‘동일한’ 조치를 이행해야 하는 의무를 부과한 결과다. 도급작업이 실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인식하지 못해 생긴 무지의 소치다.

입법예고안 어디에도 도급인이 수급인과 공동으로 안전보건조치를 해야 하는지, 도급인 단독으로 안전보건조치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수급인의 안전보건조치에 대해 지도·감독을 해야 하는지 등 도급인이 해야 할 의무의 내용을 전혀 규정하고 있지 않다. 산업안전보건에 관한 공정한 룰의 설정이라는 정부의 중요한 책임을 태만히 하고 산업안전보건 책임을 모두 기업에 떠넘긴다는 의미의 ‘책임의 외주화’라는 힐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한 가장 큰 이유는 하청노동자 보호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도급규제가 종전보다 오히려 후퇴했다. 재계는 그렇다 치더라도 노동계조차 후퇴된 부분에 대해 구체적 지적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디테일에 약하면 설령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더라도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도급인에게 강한 책임을 묻는 것 역시 의욕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디테일이 뒷받침돼야 한다. 도급인 책임에 대한 구성요건을 통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도급인이라면 이해할 수 있게끔 규정하지 않으면, 도급인에게 강한 책임을 묻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하청노동자를 재해로부터 제대로 보호하지도 못한다.

정부가 수급인 노동자를 산업재해로부터 보호하는 데 진정성이 있다면 입법예고된 하위법령을 현장에서 실효성 있게 작동될 수 있는 내용으로 정비해야 한다. 준수가 법의 목적이지 처벌이 법의 목적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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