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단행한 공공기관 복지축소로 직원 건강권에 적신호가 켜지자 국책은행 노사가 자체적으로 이를 완화할 방안을 마련해 주목된다. 직원들의 자발적인 휴가기부로 투병 중인 동료에게 충분한 치료시간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국책금융기관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건강권을 원상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아픈 직원에게 치료시간 더 주자"
고육지책 낸 동료들


12일 한국수출입은행 인사부가 작성한 ‘상생문화 확산을 위한 휴가나눔제 도입 계획’ 문건에 따르면 금융노조 수출입은행지부(위원장 신현호)와 수출입은행은 최근 직원들이 자신의 보상휴가를 인병휴직 중인 동료에게 기부할 수 있는 휴가나눔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수출입은행은 직원들이 가정의 날(수·금)이나 주말 시간 외 근무를 하면 그 만큼을 모아 휴가를 준다. 이를 보상휴가라 부른다. 지부가 휴가나눔제 도입을 추진한 것은 5년 전 암에 걸려 인병휴직 중인 A씨를 돕기 위해서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12월 말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방만경영 정상화계획 운용 지침'을 의결했다. 공공기관의 복지 수준을 축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휴직·휴가는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을 따르도록 했다. 이를 통해 수출입은행 인병휴직 기간이 3년에서 2년으로 축소됐다. 수출입은행 직원 A씨는 한 차례 휴직과 복직을 거치면서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돼 다시 휴직 중이다. 내년 초 복직한다. 수출입은행은 인병휴직자에게 기본급 50%를 준다. 지부는 A씨 복직시기가 도래하면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보상휴가 기부 캠페인을 할 예정이다. A씨에게 보다 긴 치료시간과 급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수출입은행은 지난달 29일 휴직규정을 개정했다.

“인병휴직 중인 자가 다른 직원으로부터 기부받은 휴가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인병휴직 승인권자의 승인을 통해 그 휴가 사용기간 동안 휴직을 정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신현호 위원장은 “2년의 인병휴직 기간 중 치료를 마치지 못한 직원들이 복직하는 상황은 일단 막아 보자는 의미로 회사에 제도를 제안했다”며 “연차휴가의 경우 기부 가능 여부 해석에 이견이 있어 추가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출입은행은 “보상휴가의 경우 관련 법령상 제약이 없고 직원들의 수용성이 큰 점을 감안했다”며 “특별한 인정사유가 있는 경우로 엄격히 제한해 제도를 운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재부 "공무원과 달리 적용하면 형평성 어긋나"

2014년 단행된 공공기관 복지축소로 종사자들의 건강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은 숫자로 증명된다. 기업은행도 당시 인병휴직 기간을 ‘요양기간’에서 2년으로 단축했다. 기업은행지부에 따르면 단축 이후 직원 중 사망자와 인병휴가·휴직자가 급속하게 늘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재직 중 사망한 기업은행 노동자는 7명이었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이 숫자가 25명으로 늘었다. 2010년 11명이던 인병휴직·휴가자가 지난해 42명으로 늘었다. 건강권 축소로 아픈 사람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산업은행도 마찬가지다. 김영 금융노조 산업은행지부 수석부위원장은 “2014년 산업은행의 건강 관련 복지가 크게 축소되면서 조합원들이 아파도 제도로 치료받지 못하고 업무에 복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국책기관노조협의회 차원에서 제도개선을 추진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국노협은 금융노조 내 금융공기업노조들이 만든 협의기구다. 국노협은 지난달 30일 이호승 기획재정부 1차관을 만나 인병휴직 기간 원상회복 등을 요구했다.

국노협은 “기재부가 검토하겠다는 식의 원론적인 답변만 했고, 구체적인 제도개선 약속은 하지 않았다”며 “노사 간 협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 정부와 국회 등으로 외부활동 반경을 넓혀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시큰둥하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무원의 경우 인병휴직 기간이 짧아서 발생하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성격이 유사한 공공부분 종사자들만 이를 달리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노동계에서 제도개선 요청을 받고 협의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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