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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이 함께 추는 춤
▲ 김형탁 마실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올해 2월 칼럼을 시작하면서 칼럼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했다. 문득 시절인연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올라 이름을 그리 지었다. 학생 시절의 인연은 제외하고라도, 노동운동과 정당활동을 한 기간을 합하면 30년에 가깝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이뤄 낸 것이 없이 세월이 지났다. 그렇게 살았으니 더욱 해 오던 일에 매달릴 만도 한데, 어느새 오기는 사라지고 그저 겸손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하자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시절인연이 깨달음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사람의 일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하는 것이니 인연에 따라 필요한 일은 일어나게 되리라 생각하게 됐다. 아득바득 무엇을 이루겠다기보다는 중심만 잃지 않는다면 이리저리 쓸려 다녀 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어느 것이 내 인연인지 아직 깨닫지 못하겠으나, 최근 관여하게 되는 일들은 그간의 삶을 풀쩍 뛰어넘지 않고 내가 고민했던 내용들과 다 연결돼 나타난다.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노인들의 노동권에 대해 연구해 보자는 고민도 그것이거니와 또 하나 새롭게 제안된 서울의 봉제노동자들을 엮어 내는 작업을 해 보자는 요청도 그러하다. 이미 문제의식을 가지신 분들이 초기부터 상당한 고민과 연구를 했던 터라 시동을 걸려는 찰나에 올라탄 셈이 됐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시도라 내 스스로도 자못 그 결과가 궁금해진다.

조직화를 위해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을 결합하는 시도는 많은 이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터다. 하지만 노동조합이 협동조합과 상호보험을 만들고 운영했던 역사는 오래되고 또 그 사례도 많다. 다만 국가복지가 확대되고 노동조합도 기업복지로 조합원 복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면서 협동조합은 노동운동에서 잊힌 존재가 되고 말았을 뿐이다. 역사적으로는 낯설지 않은 일이 지금 당장은 낯설게 됐을 뿐이다.

최근 노동조합이 조직하지 못하는 영역을 협동조합으로 묶겠다는 구상을 많이 들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기존 조합원들에 대한 사업이 아니라 조직화를 위해 협동조합을 활용하고 노동조합이 그 밑받침이 된 예는 찾기 어렵다. 규모가 영세한 사업장에서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봉제노동자들을 묶어 내는 작업을 추진 중인데, 마침 화섬식품노조가 그 일에 발 벗고 나섰다. 서울시에는 9만명의 봉제업 종사 노동자들이 있다. 전태일재단과 서울노동권익센터가 화섬식품노조와 함께 봉제노동자 권익향상을 위한 공동사업단을 만들어 2년 전부터 활동하고 있다. 올해 들어 결실을 맺기 위한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방향은 노조 내에 봉제인공제회를 설립하는 것으로 잡혔다. 화섬식품노조의 공식적인 의결을 거쳐야 하는 단계가 남아 있지만, 결의가 이뤄지면 노동조합과 공제회에 동시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게 된다.

이 시도가 결실을 맺으면 봉제노동자에 한정되지 않고 기존 노동조합에서는 조직화가 어려웠던 영역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노동조합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존립 이유는 단체교섭이다. 교섭을 할 대상이 없으면 노동조합으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교섭대상이 불분명하거나 교섭대상이 있어도 교섭 실익을 얻기가 어려운 부문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고용인이 없이 노동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직접 단기 거래계약을 맺거나 노동자와 사용자가 이익을 놓고 쟁탈하기보다는 공동으로 활로를 모색해야 하는 영역들이 있다. 이 영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가입의 실익을 설명하기가 만만치 않다. 조직이 되고 난 이후 정책과 제도 수립의 교섭력이 커짐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그것이 당장의 노조가입 유인효과로 인식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이 과정을 매개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

협동조합의 역사는 자본주의 발흥기부터 시작됐다. 그러니 협동조합을 두고 이제 마치 새로운 대안이 나타난 양 이야기하면 상당히 어색한 면이 있다. 하지만 노조운동 역사에서는 기업복지·국가복지 그늘에 가려 그 의미와 의의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장기불황이 지속되고, 새로운 고용형태들이 등장하면서 협동조합과 그 유사한 형태들은 조합원들을 위한 복지체계로서만 활용되지 않고, 조직화에도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봉제인공제회는 피보험자 스스로가 보험을 운영하는 상호보험, 마이크로보험을 위한 실험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크다.

마실지역사회연구소 이사장 (htkim82@gmail.com)

김형탁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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