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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계고 현장실습생 죽음 이후] 유가족들은 하루하루가 아픈데 학교는 그대로다사과 않는 학교·기업, 홀로 뛰어다닌 끝에 산재 인정받기도
▲ 현장실습고등학생사망에따른제주지역공동대책위원회

강석경(50)씨는 봄이 괴롭다고 했다. 가수 ‘버스커버스커’의 <꽃송이가> <벚꽃엔딩> 같은 노래를 좋아했던 아들 동준이가 생각나기 때문이란다. 동준이는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5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날따라 눈이 엄청 많이 왔어요. 그래서 겨울이 되고 눈이 오면, 제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어요. 또 우리 아이가 <벚꽃엔딩> <여수 밤바다> 이런 노래를 좋아했는데요. 그래서 벚꽃이 필 때가 되면, 눈이 올 때가 되면 차를 타고 어디를 가다가도 그냥 부딪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강씨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아들 기일이 얼마 안 남았어요. 5월7일이거든요. 아직도 봄만 되면 죽을 것 같아요.” 김용만(57) 씨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들 동균이는 3년 전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숨을 거뒀다.

LG유플러스 협력업체에서 일하다 목숨을 끊은 고 홍수연양 아버지 홍순성(58)씨도 자리에 함께했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에 현장실습을 하다 숨을 거둔 직업계고 학생들 유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사고 이후 유가족들의 일상은 무너진 상태지만 모든 아픔과 책임은 홀로 감당하고 있는 상태”라고 토로했다. 직업계고 현장실습 유가족 모임은 올해 1월 발족했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논의와 활동을 하고 있다. 이날 이들은 네 번째 만남을 가졌다. 같은날 오전에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서 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씨 조형물 제막식에 참석한 뒤 하룻밤을 머무를 ‘꿀잠’에 모였다. 모임을 만드는 데 주축이 됐던 이상영(56)씨는 집안 사정으로 이날 함께 하지 못했다. 이상영씨 아들 고 이민호군은 2017년 제주 음료제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중 기계에 끼여 숨을 거뒀다.

이상영씨는 올해 1월 유가족 모임을 발족하던 날 “민호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공직자들이 하는 행태를 보면 유가족들이 쓰러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혼자 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고 유가족이 모여 한 목소리를 어떨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아이를 보내고 이 세상에 사람이 없는 듯 살고 싶었고, 그래서 두 달 동안 암막을 치고 햇빛이 안 들어오게 해서 살았다”며 “그러다 보니 내 자신만 망가지고 사회는 변하는 것이 없었다”는 말도 했다. 그는 “사회로 나올 준비를 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며 “(이들을 위해) 저는 끝까지 갈 것”이라고 다짐의 말을 했다.

“현장실습, 인신매매 알선 같아”

“현장실습 내보내는 학교가 어떻게 보면 인신매매 알선하는 포주 같아. 정부한테 돈 받고 기업체에 학생을 파는 거지. 이게 무슨 학교야?”

꿀잠에 자리를 잡은 김용만씨가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의 아들 동균이는 외식업체 토다이 분당점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다 2016년 5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장시간 노동과 사내 괴롭힘 때문이었다.

동균이는 하루 10시간 넘게 일한 날이 많았다. 구타와 성희롱도 당했다. 김씨는 “오마(오전마감조) 벌칙이란 것이 있는데 출퇴근 기록부를 보면 출근 날이 100일이라면 동균이는 오마 벌칙을 60번 정도 당했다”며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더 일찍 나와서 잡일을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오마 벌칙을 수행하려면 원래 출근시간보다 한두 시간 빨리 출근해야 했다고 한다. 김씨는 “학생들이 경험도 없고 말도 잘 들으니까 선배들이 ‘사회는 원래 그런 거야’하면서 시킨 건데, 학생들 중에서도 특히 동균이한테 집중적으로 벌칙이 가해졌다”고 말했다.

동균이의 죽음 이후 김씨의 삶은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김씨는 통신 관련 엔지니어로 일했지만 사고 이후 일을 더 이상 계속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일을 그만두고 커피숍을 차렸다. “고립돼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막내 동생의 권유로 동생이 하는 한국치매예방교육원 일도 돕고 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에요, 정말.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어서 약이 없으면 못 살아요. 잠도 못 자고요. 사실 시도도 한 번 했었어요.”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적 있었다고 고백하는 김씨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 고 홍수연양의 아버지 홍순성씨는 “딸이 숨진 뒤 약 없인 못 산다”며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 보였다. “마약성 진통제”라고 했다. 그만큼 독하다는 뜻이다. <최나영 기자>

“딸 숨진 지 1년 만에 아내도 떠났다”

홍순성씨는 서울에 오기 위해 바다를 건넜다. 딸 수연이를 잃은 뒤 섬에 들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북 부안군 위도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가끔 찾아오는 지인들 외에는 묵는 사람이 거의 없다. 전에 살았던 곳은 전북 전주다. 전주에서 했던 우유 대리점 일은 진작 접었다.

“얼마나 답답하면 (섬에) 들어갔겠어요. '무슨 미련이 있다고 해서 여기 있나, 차라리 모든 것을 가지고 가서 단죄해 버리자.' 이런 생각으로 섬에 들어갔어요.”

홍씨는 사고 이후 1년 만에 아내마저 잃었다. 홍씨는 “쇼크사(뇌출혈)였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지나니 언론에서도 (관심이) 식어 버리고, 누구 하나 관심을 주지 않았어요. 수연이 엄마는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다 병원에 입원했어요.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다가 집으로 왔는데, 식당에서 밥 먹고 일어나서 화장실 가는 길에 쓰러졌어요. 그 길로 그냥 갔어요. 사실 수연이 엄마는 자살 시도도 했었어요.”

홍씨는 "진통제로 삶을 버티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전신근육통이라는데 가슴쪽이 시려서 약 없인 아침에 아파서 못 일어난다”며 “한마디로 화병”이라고 말했다.

2016년 9월부터 전주 LG유플러스 콜센터(LB휴넷)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던 수연이는 2017년 1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연이는 해지방어부서(세이브팀)에서 변심한 고객의 마음을 돌리는 일을 했다. ‘욕받이 부서’라 불릴 정도로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아 기존 근무자들도 기피하는 곳이라고 했다. 수연이는 야근하는 날이 잦았고, 영업실적 압박에도 시달렸다. 수연이는 홍씨에게 “아빠, 나 오늘도 콜수 못 채웠어. 퇴근 늦을 것 같아”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강석경씨도 아들 동준이를 보낸 지 5년이 됐지만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강씨는 사고 이후 차를 타고 가다가 가던 길에 낭떠러지가 있다면 방향을 꺾어서 가지 않고 직진해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든 적이 있다. 강씨가 지금도 운전을 안 하고 ‘뚜벅이’로 지내는 이유다. 강씨는 "밥을 먹어도 밥이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함께 있던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강씨의 말에 “나도 그래”라고 쓸쓸하게 말했다.

충북 진천 CJ제일제당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던 동준이는 2014년 1월 회사 기숙사 옥상에서 투신해 숨졌다. 강씨는 “동준이는 숨지기 4일 전 회식 도중 입사 동기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전했다.

▲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 1층에서 홍순성씨 모습. <최나영 기자>

“학교 선생? 장례식장에 한 명도 안 왔어요”

아이들의 황망스런 죽음 이후 유가족은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학교와 회사측이 보인 반응은 이상하리만치 유사했다. 전공과 무관한 일터로 아이들을 내보낸 것도 같았다. 학교측은 학부모들에게 "아이들이 좋은 대우를 받을 테니 걱정 마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사고 직후 아이가 일했던 회사와 그 회사로 아이를 보냈던 학교는 외면하기 바빴다. 외려 책임을 아이와 부모에게 돌렸다.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유가족은 단순 자살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외로운 전쟁을 해야 했다. 도우러 온 시민단체와 몇 달을 뛰어다닌 뒤에야 회사의 사과를 받고 산업재해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정부는 제도개선을 약속했지만 특성화고 학생들의 죽음은 반복됐다. 남은 유가족들의 삶은 찢겼다. 아픔은 오롯이 유가족 자신이 짊어져야 했다.

김씨도 동균이가 생을 등진 뒤 회사와 학교쪽에서 “본인 잘못이다. 부모 잘못이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화장한 아이를 품에 안고 해당 외식업체에 찾아갔지만 회사는 되레 “법무팀을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을러댔다. 학교도 김씨를 외면했다.

“담임 선생님 만나려고 학교에 10번은 찾아갔어요. 그런데 못 보게 하더라고. ‘휴가 중이다. 없다’고 하면서요. 교장이랑 교감만 봤는데 오히려 ‘자꾸 이러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말했어요. 나중에 시민단체랑 함께 학교 인근에서 수요집회도 했었는데 교장이 ‘동균이 아버님 때문에 학교가 얼마나 피해를 보는지 아느냐. 학교 이미지도 나빠지고 정부 지원도 떨어졌다’ 이따위 말을 하더라고요. 장례식장에도 담임 선생님을 포함해 학교 관계자 아무도 안 왔어요. 사고 이후 아직도 담임 얼굴을 못 봤어. 전화도 안 받고, 코빼기도 못 봤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읽었는지 그는 “사실대로 말한 거다. 이게 현실”이라고 했다. 김씨는 이후 수소문 끝에 시민단체·노동단체 활동가를 만났다. 그제야 회사에 사과를 받을 수 있었는데, 여전히 학교의 사과는 받지 못한 상태라고 했다.

“교육당국은 믿을 수 없어요. 이런 사람들이 현장실습을 내보내기 때문에 사고 이후 대책들이 다 ‘쇼’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씨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홍씨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사고 직후 회사는 “홍양 죽음과 노동환경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시민단체를 만나기 전 혼자 다닐 때는 경찰에서는 조사할 권한이 없다고 하고, 사측에서도 자기들 책임이 아니라고 했어요. 관계기관도 마찬가지였죠. 고용노동청에 가면 교육청에 가라 그러고 교육청에 가면 노동청에 가 보라고 하면서 핑퐁게임만 했어요.”

이후 수연이 사건은 언론의 관심을 받으며 노동부의 근로감독까지 이끌어 냈다. 하지만 LG유플러스가 콜센터 업무를 위탁한 LB휴넷만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과태료를 부과받았을 뿐 원청인 LG유플러스는 책임을 피해 갔다. 홍씨는 “다른 거 다 필요 없으니까 LG유플러스가 사과하라고 요구했고, 결국 유필계 LG유플러스 부사장이 와서 공개사과했다”며 “사과만 했을 뿐 법적 책임은 LB휴넷만 졌다”고 말했다.

강씨는 사고 뒤 홀로 뛰어다닌 끝에 동준이의 산재를 인정받았다. 그 과정에서 강씨도 역시 “애가 자살한 건데 부모가 왜 저러고 다니냐”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회사 잘못이 아니라 동준이의 나약함 때문이라고 몰아붙인 것이다.

강씨는 “이건 우리 아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문제고 사회적 타살이라고 생각했다”며 “산재를 인정받아야만 위로가 될 것 같았고, 정보 수집을 하고 노무사 도움을 받아 결국 산재인정을 받아 냈다”고 말했다.

▲ 정기훈 기자

“30킬로그램짜리 고기 나르는 일이 교육인가요?”

아이들이 전공과 무관한 일터에 내몰린 것도 같았다. 동균이의 경우 전공은 인터넷쇼핑몰 관리였지만 현장실습을 나간 곳은 외식업체였다. 동균이는 당시 컴퓨터 관련 자격증이 5개나 있었다. 특허도 5개나 보유했다.

“동균이가 현장실습을 가기 전 담임은 내게 ‘토다이 연봉이 대기업 수준이고 복지가 잘 돼 있으니 전공은 다르지만 아버지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굉장히 좋게 이야기했어요.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는데 안 보낼 학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선생님 말 믿고 보내는 거죠. 그런데 그때 이후로 사고 난 지금까지 선생님을 한 번도 못 봤어요.”

동준이가 CJ제일제당에서 현장실습을 나가 한 일은 육가공품 포장이었다. 그의 전공은 전자였다. 강석경씨의 증언이다.

“동준이는 하루 종일 고기 나르는 일을 했어요. 30킬로그램 되는 고깃덩이를 들었다 내렸다 해야 했어요. 식당에서 장화 신고 마스크에 모자 쓰고 하는 일이에요. 추운 겨울에도 일할 때 땀으로 옷이 다 젖어서 주말에 집에 오면 옷을 예닐곱 벌씩 가져갔습니다. 힘든 일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일을 바닥부터 시작해야 하는 일이었을 텐데, 회사가 학생들 뽑아 갈 때는 그런 실상은 안 가르쳐 주고 학생들을 현혹하고 꾀어낸 거죠.”

강씨는 직업계고 학생들이 현장에서 하는 일은 “교육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그는 “학교측은 교육을 병행한다고 했지만 이게 무슨 교육이냐”며 “어리고 힘없는 학생을 저임금으로 고된 일을 시켜 먹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수연이도 전공인 애견학과와 무관한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갔다. 홍순성씨는 “사고 이후 전라북도교육청은 전공과 다른 현장실습은 안 내보내기로 했다”며 “하지만 지난해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사고 이전보다는 덜한 것 같지만 여전히 전공을 바꿔서 현장실습에 내보내는 관행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학생들이 현장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전공과 무관한 사업장에 내보내지는 저변에는 정부의 '취업률 높이기'가 있다. 청년실업이라는 난제를 해결해야 할 정부는 취업률 높이기가 우선 과제다. 교육부는 직업계고 취업률에 따라 시·도 교육청을 평가하고, 교육청은 직업계고에 취업률을 높이라고 압박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전공과 관계없는 곳으로 현장실습을 나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 정기훈 기자

“이런 아픔 다시는 없어야”

유가족들은 자신이 겪은 아픔이 다시는 재연돼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유족들은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정부가 약속한 제도개선안이 무색하게 현장실습은 바뀐 것이 없다고 했다. 김용만씨는 “동준이가 숨진 뒤에도 동균이와 수연이, 민호가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며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는 건 변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교육부가 올해 1월 발표한 직업계고 현장실습 제도 보완방안을 비판했다. 교육부 보완방안에는 학생들의 현장실습을 확대하고 기업들의 실습 참여를 독려하는 내용이 담겼다. 유가족들은 “교육부가 지난해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폐지하겠다고 밝힌 지 1년 만에 회귀하는 정책안을 발표했다”며 “현장실습을 폐지·축소해야 할 마당에 오히려 확대 정책을 펴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유가족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홍순성씨는 “유가족들은 일상생활이 안 돼 일도 못 하는데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니 너무 힘들다”며 “사고가 나면 정부가 회사에 과태료를 수억원씩 부과하는데 그 돈으로 유가족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만들어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게 돕고 재정적 지원도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석경씨는 “자살자 유가족들을 위한 상담지원 제도가 있지만 내 아이가 자살했다는 증거를 내가 증명해야 한다”며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격이라 나는 못 받겠다고 했는데,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는 회사에서 받는 과태료를 다시는 이런 사고가 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하거나 기계를 안전하게 돌아가게 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도 우리 일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문제, 나아가 사회 전체의 노동 문제에 관심 가지고 움직일 거예요.” 강씨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최나영  joie@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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