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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투자와 문재인, 그리고 성장의 곤란함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재벌대기업 총수들을 자주 만나는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며칠 전에는 삼성전자 비전선포식에 참석해 대법원 선고를 앞둔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행보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2019년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은 기업의 설비투자 급감이 핵심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설비투자는 전기전자·석유화학·운송장비·운수보관·정보통신 등의 산업이 중요하다. 모두 재벌이 관장하는 영역이다. 대통령으로서는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 경제의 본질적 문제는 투자 부족이 아니란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투자의 지속성은 투자의 수익성으로 담보된다. 정부정책으로 투자를 이끌어 내더라도 결국에는 수익성이 유지돼야 투자도 지속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경제는 장기간에 걸쳐 자본의 수익성이 정체·하락 중이다. 대규모 사업확장 뒤 심각한 재무위기에 빠진 조선업, 세계시장 점유율 하락 등으로 수익률이 급감한 자동차산업, 중국과의 가격경쟁으로 적자까지 기록하고 있는 디스플레이산업, 호황 뒤에 과잉설비가 문제가 되고 있는 반도체 등등 투자가 문제가 아니라 투자로 충분히 돈을 벌지 못하는 곳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물론 이는 정부정책 탓은 아니다. 실물경제의 투자수익률 하락 문제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수년 전부터 ‘생산성 패러독스’란 말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데, 기술혁신과 투자에도 노동생산성 상승이 세계적으로 둔화된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자본투자에도 노동생산성이 충분히 상승하지 않으면 당연히 자본투자의 수익성은 하락한다. 우리나라는 이런 세계적 현상에 더해 선진국 추격성장 한계까지 함께 겪고 있다. 그래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본투자의 수익성이 하락하면 결국에는 자금조달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자본투자 자체가 감소한다. 마르크스는 수익성 하락과 자본투자 감소가 악순환하는 상황을 자본주의 구조적 위기라고 불렀다. 경제학은 자본투자만큼 노동생산성이 상승해 수익성이 균형에 이르는 것이 법칙이라고 주장하지만, 오늘날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 상황을 보면 이런 주장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 마르크스는 산업혁명 같은 자본의 혁명적 변화가 없는 한 구조적 위기는 자본주의의 필연적 결과라고 주장했다. 현재 세계 경제는 경제학의 낙관보다는 마르크스의 비관쪽에 더 접근해 있다.

장기적 수익성 위기에서 자본투자를 늘리는 것은 위기를 오히려 더 심각하게 만든다. 1989~1996년 한국 경제가 대표적 사례였다. 당시 정부는 3저 호황 이후 수익성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재벌의 투자를 이전보다 더 독려했다. 그런데 정부와 재벌은 투자자금을 이윤에서 조달할 수 없게 되자 외국에서 차입을 늘렸고, 그 결과 국가경제가 부도났다. 이렇게 구조적 위기 시기 투자확대는 역설적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편 개혁진영은 중소기업 대안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중소기업 대부분은 자본집약도가 높지 않아 생산성이 낮을 뿐만 아니라, 역사가 오래된 선진국 중소기업처럼 특별한 노하우를 가진 것도 아니다. 그래서 자본투자의 비효율성이 대기업보다 클 수 있다. 중소기업 대안론은 대기업의 수탈로 중소기업의 성장이 억압돼 있다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한국의 경제성장 역사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다. 예로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한국 대기업이 아니라 선진국 기업과 거래했다면 지금과 달랐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필자 경험으로는 그렇지 않다.

제조업 투자가 문제니 서비스업에서 성장대안을 찾자는 주장도 있다. 서비스업 선진화 정책은 현 정부를 비롯해 이전 정부에서도 매번 나왔던 이야기다. 하지만 소위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이라고 불리는 업종들은 의료상업화처럼 민생에 해악을 끼치는 것들이거나, 금융업처럼 새로운 생산이 아니라 다른 산업의 부가가치를 이전받는 것들이 많다. 제조업을 대체해 서비스업으로 경제성장률을 높인 사례는 외국에서도 찾기 어렵다.

정부의 적자재정을 늘려 위기를 타개하자는 주장도 최근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 또한 문제가 있다. 과감한 적자재정으로 경기를 부양했는데, 활황이 짧게 끝나고 다시 침체가 이어질 경우 정부채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대표적 사례였다. 그런데 앞서 봤듯 한국의 저성장은 경기부양을 한다고 단기간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더불어 정부채무가 급증할 경우 우리나라는 통화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도 주의해야 한다. 관리통화제도에서 통화가치는 정부의 채무 지불능력에 대한 신뢰에 의존한다. 달러·엔·유로·파운드 같은 기축통화를 사용하는 국가들은 정부채무 비율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80~200%로 높은데, 이는 세계적으로 그 정부의 지불능력에 대한 신뢰가 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기축통화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들의 경우 정부채무가 대부분 40~50% 이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기축통화를 사용하는 것도 아닌 데다, 정부 지불능력에 대한 신뢰도 높지 않다. 한국의 정부채무는 40% 내외이며, 원화는 세계적으로 불안정성이 가장 큰 통화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과감한 적자재정에 제약이 많다는 것이다.

요컨대 경제성장은 여러모로 곤란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정한 시장과 재벌개혁으로 경제성장을 달성해 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결국 정부가 말한 공정치 못한 시장의 상징인 재벌에게 다시 투자를 읍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는 시장경제 그 자체의 근본적 문제에서 기인한다. 공정함을 아무리 되풀이해 봤자, 재벌의 투자를 아무리 촉구해 봤자,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는 없다. 대안을 찾으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 자체를 벗어나는 대범함이 필요한 시기다. 물론 이는 정부보다는 노동자운동의 과제일 것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jwhan77@gmail.com)

한지원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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