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흥수 철도노조 공공철도정책팀장

2007년 6월3일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가좌역 경의선 용산-문산 간 복선전철 공사현장이 무너져 내렸다. 흙막이 벽체가 붕괴된 자리에 거대한 웅덩이가 생겼고 그 위로 선로가 위태하게 구름다리처럼 흔들렸다. 서울역으로 향하는 열차 한 대가 통과한 지 얼마 안 된 시간이었다. 사고가 조금만 일찍 일어났다면 수많은 생명을 앗아 간 또 하나의 대형 참사로 남을 뻔했다. 열차 운행은 전면 중단됐고 복구가 완료될 때까지 599개 열차의 운행이 중지됐다.

모든 사고에는 전조현상이 있다. 이 구간을 운행하던 기관사들은 평소와는 다른 진동을 느끼고 이상 현상에 대한 조치를 요구했다. 그러나 공사는 별다른 조치 없이 계속됐다. 운행선로에서 이상을 감지했는데도 문제가 해소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간극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철도를 운행한 조지 스티븐슨은 선로와 열차는 한 몸이라고 자주 강조했다. 철도가 도로나 해운·항공 같은 교통수단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교통로와 그 위를 움직이는 차량의 관계다. 다른 교통수단이 교통로에서 독립된 반면 철도는 선로라는 교통로에 열차가 종속된 채 독점적으로 구간을 점유한다. 이런 이유로 철도에서는 동시 진입이나 추월이 불가능하다. 오직 선로와 열차의 상호 조응 속에 신호체계가 운행을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때문에 철도는 상부구조인 운영과 하부구조인 시설이 통합된 형태로 발전하고 유지돼 왔다. 이런 구조가 해체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이다. 육상 교통수단의 절대적 지위를 누렸던 철도는 전후 지속적으로 쇠락했다. 각국 정부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비용을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시기가 1980년대였다. 여기에 맞물려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를 혁신할 대안으로 등장했다. 철도는 신자유주의 처방을 받아야 할 유력한 대상이 됐다. 작은정부·민영화·무한경쟁 깃발을 든 신자유주의는 자연스럽게 국영철도체제 해체를 추진했다. 경쟁력이 없는 노선은 폐기하거나 국가의 몫으로 남겨 두고 돈이 되는 노선은 민영화를 시키는 과업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시설과 운영의 해체 작업이 시작됐다. 막대한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시설은 국가의 몫으로 두고 다양한 민간회사의 진입을 위해서는 시설과 운영의 분리가 필수적이었다. 철도의 고유한 특성보다는 수익을 내는 것이 중요했고 또 이 해체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토건자본이 이권을 챙기는 사업구조가 만들어졌다. 생명과 안전은 뒷전으로 밀렸다.

이 같은 변화는 철도 발전으로 가는 세계적 흐름이란 명패를 달고 한국에 상륙했다. 결국 철도개혁이란 이름으로 시설과 운영은 분리됐다. 선로 건설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열차 운행은 한국철도공사가 책임지는 이원적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쯤에서 다시 가좌역 사고로 돌아가 보자.

사고가 발생하기 전 작은 웅덩이가 생기면서 선로침하가 일어났다. 이것을 발견한 철도공사 직원이 신고했고 공단으로 안전조치 요청이 전달됐다. 시설과 운영이 통합돼 있다면 바로 열차운행 중단과 보강조치가 이뤄질 수 있었지만 관할기관인 철도시설공단이 판단하고 조치해야 하는 일이 됐다. 철도시설공단은 열차 운행에 이해관계가 없다. 공기에 차질 없이 공사를 마무리하는 게 효율적이다. 철도시설공단은 몇 차례 사고 전조현상에 대한 보고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강행했고 끝내 대형 붕괴사고로 이어졌다.

철도시설공단과 철도공사는 발족 이래 갈등과 대립을 지속했다. 강릉선 KTX 탈선사고 이후에도 두 기관은 서로 상대방 책임이라며 공방을 벌였다. 선로전환기의 신호 케이블이 시공단계에서부터 잘못 연결됐고 이것이 개통 이후 운행 과정에서도 상당 기간 드러나지 않았다. 개통 전 시험 과정에서도 양 기관이 적절한 절차를 거쳤는지 책임공방을 벌였다. 강릉선 탈선사고 전에도 경의중앙선 원덕역과 양평역 사이에서 시험운행을 하던 기관차 두 대가 충돌해 기관사 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때도 철도시설공단과 철도공사의 유기적 협력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개통시기에 쫓긴 나머지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다 보니 형식적인 점검이나 시운전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은 금방 묻혔다.

이 같은 현실에서 대책은 분명하다. 시설과 운영의 통합이다. 그러나 국토교통부는 한 술 더 떠 완전한 분리가 안 돼 문제가 발생한다며 철도공사가 책임지고 있는 운영선로 유지보수 기능까지 철도시설공단으로 이관하겠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선로 이상을 가장 먼저 감지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기관사다. 매일 달리는 선로에서 평소와는 다른 진동이나 충격을 느꼈다면 바로 유지보수팀에 연락해 선로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게 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철도시설공단으로 이관하면 양 기관 간에 공문이 오가고 관할기관이 문제를 확인하기까지 달리는 열차는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다.

이상적인 철도시스템을 인위적으로 해체하고 효율과 수익성만을 향해 달리는 정부의 철도정책이 두렵기만 하다. 안전을 자랑하는 철도선진국들이 왜 시설과 운영을 결합한 상하통합 구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때다.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동안 한국 사회가 숱한 사고에서 이를 배우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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