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나영 기자

"공장으로 일 나가는 엄마 아빠/ 서너 살배기 우리를/ 단칸 셋방에 홀로 두고 가면// 골목길을 하루 종일 헤매다가/ 고만고만하게 생긴 벌집 같은 셋방// 끝내 찾아오지 못할까 봐/ 밖에서/ 방문을 잠가 놓고 가면// 배고프면 먹고 마시고/ 심심하면 갖고 놀고/ 오줌똥 마려우면 누라고// 단팥빵 한 개 물병 하나/ 장난감 몇 개 요강 하나/ 놓아 주고 가면// 어느 날은/ 방바닥에다/ 오줌똥을 싸 놓고// 어느 날은/ 울다가 울다가// 잠들었어요"(정세훈 시인의 ‘공단 마을 아이들’ 전문)

정세훈(64·사진) 시인이 3월 펴낸 동시집 <공단 마을 아이들>(푸른사상)에 담긴 아이들 모습이다. 동시에는 공장으로 일 나가면서 엄마 냄새가 퀴퀴한 냄새로 바뀌었다고 하는 아이, 밤 근무하던 아빠가 낮 근무하는 날이어서 가족이 모두 함께 잘 수 있어서 꿈만 같다고 하는 아이, 어린이대공원 가기로 했는데 밤일하고 아침에 퇴근한 아빠가 아직도 주무시고 있다는 아이의 목소리가 담겼다. 그는 아이 눈으로 세상을 봤다. 아니 스스로 어린아이가 됐다. 그가 "큰아들이 유치원 다닐 때 달력에 빨간 칠을 해 놓은 것을 기억해 썼다"는 '통닭 먹는 날'을 보자.

"달력에/ 빨갛게 색칠해 놓았다// 이십오일 날짜에/ 동그랗게 칠해 놓고// '통닭 먹는 날'이라고/ 크게 써 놓았다// 아빠 월급날은/ 아직도 이십 일이나 남았다"(‘통닭 먹는 날’ 전문)

정 시인은 1989년 <노동해방 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장편동화집과 에세이집, 시화집도 펴냈다. 대부분 노동자와 민중의 삶이 담긴 작품이다. 어른들을 위한 시를 썼던 그가 등단 30년 만에 동시집을 펴낸 이유는 뭘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역 인근 커피숍에서 정 시인을 만났다. 그는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 이사, 소년희망센터 운영위원, 인천민예총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공단 마을 아이들 정서 담고 싶었다”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공단 마을 아이들 삶은 의미가 깊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아이들 정서가 담긴 동시집이 한 권도 출간되지 않아 안타까웠어요. 나라도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정세훈 시인은 아이들 이야기를 쓰게 된 이유를 의무감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나라에는 1960년대 후반부터 전국 곳곳에 대규모 공단이 들어섰다. 공단 주변에는 마을이 조성됐다. 공단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방 한 칸 부엌 한 칸의 공간을 벌집처럼 지어 올린 집에 사글세를 주고 살았다. 지금 산업 중심은 바뀌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떠돌고, 공단 마을 벌집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제 50대를 바라보는 중년이 됐다.

공단 마을 아이들을 향한 그의 애착은 20여년간 공장에서 노동하며 생활을 꾸렸던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다. 정세훈 시인은 중학교를 졸업한 열일곱 살 때부터 중랑천 인근 공장에서 일했다. 전자석선(코일) 생산공장이었다. 중학교를 수석으로 합격할 정도로 공부에 소질이 있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학업을 이어 갈 수 없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영세공장에서 일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그가 일했던 코일공장은 하루 12시간 주야 맞교대로 일하고, 주말엔 18시간씩 일하는 곳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꺼린다는 3D 업종보다 더 열악한 곳이었다”며 “현장 작업장 온도는 40도 정도였고 동료가 아파서 못 나오면 동료 몫까지 36시간, 때로는 48시간을 일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쉰 넘어 진폐증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공단에서 일할 때 석면 가루를 마신 것이 원인이 됐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시는 삶이고 생활이고 체험인데 내가 공단에서 일하면서 아이들을 키웠고 그렇게 아이를 키우는 동료들을 봤잖아요. 그때 상황에서 아이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생각하며 시를 썼어요.”
 

“동시집으로 아이들에게 관심 갖길”

정세훈 시인은 동시집이 공단 마을 아이들처럼 소외된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산업화 시기 때보다 비율은 줄었지만 여전히 동시집에 나오는 것처럼 공단 마을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죠. 동시집이 공단 마을 아이들같이 정말 소외되고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향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그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그는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읽어 주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사실 불행한 이야기지만 노동자들, 특히 대기업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 위주로 활동하고 나보다 더 못한 집단을 내버려 두는 경향이 있다”며 “동시집을 보며 주변을 돌아보고 운동의 방향성을 고민해 보면 좋겠다”고 전했다.

가난한 공단 마을 아이들 얘기는 얼마나 공감을 일으킬까. 정 시인은 “간접경험으로라도 소외된 사람을 돌아보는 힘을 아이들에게 길러 줘야 한다”며 “동시는 희망적이고 밝고 맑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은 것 같은데 아프고 슬프고 기쁘고 그런 다양한 정서가 이이들을 건강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집 삽화는 지난해 인천 영선초등학교 4학년5반 어린이 26명이 그린 그림이다. 5반 담임선생님이 평소 알고 지내던 시인이어서 인연이 닿았다. 정씨는 “한 반 아이들의 그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넣었다”며 “동시 50여편을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 거기에 관련된 그림을 그리게 했는데 이런 작업이 아이들에게 꿈을 키워 주는 좋은 교육이 됐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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