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해마다 이맘때면 한국노총에서는 보라매공원을 찾는다. 가슴마다 ‘추모 4·28 산재노동자의 날’을 적은 검은 리본을 단다. 4월28일 ‘세계 산재노동자의 날’을 맞아 우리나라 노동현장에서 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을 추념하기 위해서다. 잘 알려져 있듯이 1993년 태국의 장난감 사업장에서 일어난 화재로 노동자 188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이에 국제자유노련(ICFTU)이 중심이 돼 화재 사고일인 4월28일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로 정하고 1996년부터 기념해 오고 있다.

올해 산재노동자의 날을 맞는 기분은 착잡하다 못해 아쉽기까지 하다. 기대가 큰 만큼 돌아오는 실망도 큰 법이랄까. ‘노동존중 사회’를 내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꼭 2년이 돼 가고 있지만 산업재해를 당하는 노동자의 수는 여전하다. 통계에 따르면 현장에서는 매일 5명이 사망하고 250여명이 재해를 당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산재공화국’이라는 딱지는 떼기 어려운 낙인이 돼 버렸다.

산재사망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에서는 매년 산업재해 예방 캠페인 차원에서 ‘살인기업 선정’을 하고 있다. 올해 최악의 살인기업은 포스코건설로 선정됐다. 지난해 1년간 무려 10명의 노동자를 사망하게 했다고 한다. 2위는 세일전자, 공동 3위로는 포스코·대림산업·한화가 이름을 올렸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이들 사업장의 사망재해자가 모두 34명이다. 놀랄 일은 사망자 중 19명이 하청업체 노동자라는 점이다. 극한 작업장에서의 ‘죽음마저 외주화’하는 노동현장을 올해 발표에서도 잘 보여 준다.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를 막겠다는 목표는 정부와 정치권의 제1 목표로 알고 있다. 산업재해 자체를 박멸하는 것 못지않게 위험의 외주화 근절이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작업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최근 보이는 정부의 몇몇 행태에서는 과연 노동기본권 및 노동자 생명과 안전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있기나 한지 의심을 갖게 한다.

지난 22일 고용노동부 장관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전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스스로 밝힌 개정이유는 “산업재해 예방책임 주체를 확대하고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기 위한 도급 승인제도를 도입하는 등”으로 시작한다. 지난 1월 산업안전보건법이 공포되고 2020년 1월 시행을 앞두고 행정부로서 하위법령을 정비하는 과정이다. 법률이 큰 무리 없이 개정된 배경은 지난해 김용균씨의 사망사고 ‘더 이상 위험의 외주화는 안 된다’는 공감이 여야를 넘어 전 사회적으로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대 노총이 비판한 것처럼 위 시행령은 “적용제외 없이 모든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 취지를 담는 데 충분치 않다. 개정 법률이 동일한 비판을 받았기에 현장에서는 정부가 앞장서서 법률의 흠을 메워 산업안전보호 사각지대를 채워 줄 것이라고 크게 기대했지만 헛된 소망이었다. 공고 직후 한국노총에서는 “도급승인 작업에 4개 화학물질 작업에만 적용한 점, 안전 및 보건계획 수립을 500인 이상으로 제한한 것, 작업중지명령을 동일한 작업으로만 제한한 점 등” 시행령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의견을 듣기 위한’ 공고절차라고는 하지만 정부 생각의 단면만은 분명히 확인된다. 그래서 실망스럽고 아쉽다.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근 2년간 최저임금 인상과 양대 지침 폐기 등 적지 않은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 확대 논의는 간 곳이 없고 노동부가 앞장서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조차 비준하지 못하겠다는 모습에 실망하는 이들 또한 늘어가고 있다. 이번 시행령 전부개정안 입법예고를 두고서도 노동현장에서는 “역시”라고들 한다.

공고기간 동안 정부는 충분한 의견을 수렴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최우선 가치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며, 그 어떤 것도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할 수 없다” “산업재해는 한 사람의 노동자만이 아니라 가족과 동료, 지역공동체의 삶까지 파괴하는 사회적 재난”이라고 한 대통령의 선언만 제대로 담으면 되지 않겠는가. 혹여 ‘국회 법률’ 핑계는 대지 말길 바란다.

참고로 한국노총에서는 수년간 ‘산재노동자의 날의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한 활동에 힘쓰고 있다. 우리가 기념일로 정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칠 지경이다. 최소한의 예우이기도 하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