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미경 민주노총 부위원장

4·27 판문점선언 1주년을 앞두고 언론에서는 온통 ‘빅딜이냐’ ‘스몰딜이냐’ ‘굿 이너프 딜이냐’ 등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실행단계를 두고 왈가왈부하고 있습니다. 평화프로세스의 대전제는 이미 1년 전에 밝혀졌습니다. 북미 간의 평화프로세스가 가동되려면 6·12 북미정상회담 합의문에도 나와 있듯이 ‘신뢰회복’에 기초한 새로운 관계설립 노력에 기반을 둬야 합니다. 그리고 남북관계 발전은 4·27 판문점선언 1조1항에 나와 있듯이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가장 우선해야 합니다. 남북관계 발전의 원칙이며 새로운 평화시대를 열어 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이고 동력이기 때문입니다.

4·27 판문점선언 1주년을 앞두고 쏟아 내는 언론의 보도와 해석은 문제의 본질과 해결방법을 숨긴 채 말잔치만 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해 4·27 판문점선언이 발표된 후 감동과 흥분으로 당장이라도 북을 넘나들 수 있을 것처럼 남북 자주교류 제안서들이 바쁘게 전달됐지만 판문점선언 직후에 개최된 6·15 공동위원회 만남의 자리에서 북측 대표들은 예사롭지 않은 발언을 했습니다. "지금 정세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도 같다."

4·27 판문점선언 이후 민간 자주교류 중에서 가장 먼저 서울에서 개최된 ‘남북노동자 통일축구대회’에서도 북측 노동자 대표들은 "조선(한반도) 정세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며 긴장감을 놓지 않았습니다.

평화와 번영, 자주통일 새 시대는 그저 오지 않습니다. 올해 2월 하노이회담(2차 북미정상회담)의 파탄은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습니다. 미국은 본질적으로 ‘최고의 압박’이라는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은 242년의 역사 동안 전쟁을 하지 않은 기간이 단 16년이다. 역사상 가장 호전적인 나라”라고 말했습니다. 세계 3대 투자가로 불리는 짐 로저스는 “제가 미국인이지만, 미국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세요”라고 주문습니다. 이처럼 미국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한반도에서도, 세계 그 어디에서도 ‘평화’는 요원합니다. 세계에서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나라, 군사적 패권을 결코 놓지 않는 나라, 그런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그저 지켜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미국은 동북아 전초기지 역할을 충실히 할 우리나라를 그저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한반도 대전환의 정세는 다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국의 내정간섭은 점점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만들어진 이른바 ‘한미워킹그룹’은 일제 강점기 ‘총독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방해가 노골화할수록 촛불혁명으로 다 죽어 가던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수구보수세력도 다시 자기들의 세상을 만난 듯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5·18 등 민중항쟁 역사를 왜곡하고 또다시 세월호 유가족들의 등에 칼을 꽂으며 ‘박근혜 석방’을 요구하는 등 도로 박근혜당, 남북대결과 반북이데올로기를 조장하는 색깔정치를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답답한 것은 문재인 정부입니다. 미국 눈치 보랴, 일본 눈치 보랴,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수구보수세력 눈치 보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새로운 평화와 번영, 자주통일 걸음걸음을 망설이고 있습니다. 4월11일 한미정상회담의 성과로 "미국을 다시 테이블에 앉혔다"며 '중재자 역할'에 대해 자화자찬했지만 우리 국민 반응은 싸늘하기만 합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세 번씩이나 "한국의 무기 구매의사에 감사한다"고 말했고,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제대로 발언할 기회도 주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에 우리 국민은 ‘주권국가’로서의 ‘국익’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정상의 모습에 참담한 심정을 느꼈습니다.

다시 한 번 ‘민’이 앞장서야 합니다. 그중에서도 노동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실천적이고 투쟁적이며 조직적인 곳이 민주노총입니다. 남북노동자 연대와 단결을 위해서도 가장 실천적으로 투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이름 그대로 자랑스러운 ‘노동계급’입니다. 노동계급은 온갖 도전과 난관에서도 결코 자기운명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투쟁의 상징입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수구보수세력이 민주노총을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 노동자들이 4월27일 멈춰 선 평화와 번영, 자주통일의 시계를 다시 돌리고 움직이게 하는 거대한 힘을 만들어 냅시다. 4·27 판문점선언 1주년에 임진각에서 우리 노동자가 ‘판문점선언 1조1항 민족자주의 원칙’을 선언합시다.

평화와 번영, 자주통일 새 시대는 투쟁 없이 결코 오지 않습니다. ‘조만간 정세가 풀리겠지, 북미 간 남북 간 물밑접촉을 할 테니 기다려 보자’는 식의 근거 없는 낙관과 환상으로 변화무쌍한 정세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오로지 ‘실천과 투쟁’으로 분단 70년의 낡은 체제와 세력을 극복합시다. 우리가 대북제재 등 미국의 대결책동과 방해책동을 분쇄하고 가장 반계급적이고 가장 반통일적인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분단적폐 세력을 청산해 냅시다. 아울러 남북공동선언 이행의 길에 더 많은 민중과 연대하고 실천함으로써 항구적 평화체제 정착과 노동자가 주인 될 자주통일의 새 세상을 열어 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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