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은 23일 재택위탁집배원이 우정사업본부 노동자가 맞다고 판결했다. 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 재택위탁집배원지회는 판결 직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공운수노조>

우정사업본부와 도급계약을 맺고 우편물을 배달하는 특수고용직 재택위탁집배원이 개인사업자가 아니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정부가 위장도급 방식으로 불법행위를 하는 주체였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우체국 위탁택배노동자와 상하수도 검침원처럼 재택위탁집배원과 유사한 형태로 일하는 공공부문 특수고용직의 고용형태 개선문제로 논의가 확산할지 주목된다.

소송 5년 만에 "우정사업본부 노동자 맞다" 승소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23일 오전 재택위탁집배원인 유아 공공운수노조 전국우편지부 재택위탁집배원지회장 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우정사업본부)가 구체적인 업무처리 방식 등을 지시했고 획일적 업무수행을 위해 정해진 복장을 입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정해진 장소에서 배달하도록 했다"며 "피고의 다른 근로자들인 상시위탁집배원·특수지위탁집배원과 본질적으로 같은 업무를 동일한 방식으로 처리해 근기법상 근로자성을 인정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재택위탁집배원들은 지역 우체국장과 1년 단위 계약을 맺고 지정구역에서 우편물을 배달한다. 하루 4~7시간 일하고 시급을 받는다. 등기우편물을 배달할 경우에는 건당 수수료를 추가로 받는다. 우정사업본부는 연장근로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하루 8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도록 했다. 2013년 4월부터는 이들에게 사업소득세를 부과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생긴 직종이다.

유아 지회장 등은 2014년 3월 "재택위탁집배원의 업무가 우정사업본부 무기계약직인 상시위탁집배원이 하는 일과 같고 국가로부터 업무 지휘·감독을 받는 근기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같은해 연차휴가수당 중 일부인 1만원을 지급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법원은 각각 2016년 2월, 그해 11월 원고 승소 판결했다.

대법원도 이날 재판에서 우정사업본부가 업무 전반을 결정하고, 현지점검으로 업무처리 과정을 감독한다고 봤다. 근무시간에 비례해 받는 수수료는 근로의 양과 질에 대한 대가에 해당한다고 확인했다. 재택위탁집배원이 종속적 관계에서 지휘·감독 아래 노무를 제공하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번 판결은 특수고용직의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신선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특정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외근을 한다는 이유로 근기법상 근로자성이 배제된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이 인정된 판결"이라며 "모범사용자여야 할 국가가 20년이 넘도록 개인사업자로 위장해 노동법을 위반한 것을 대법원이 바로잡았다"고 평가했다.

근무형태·처우문제로 노사교섭 진행될 듯
"공공부문 다른 직종도 살펴보겠다"


재택위탁집배원은 대법원 판결로 이날부터 우정사업본부 정규직으로 신분이 전환되지만 적지 않은 과제도 남아 있다. 시간제가 아닌 전일제 형태로 전환할지, 전환 이후 어떤 업무를 할지, 처우수준을 어떻게 정할지를 두고 노사가 협상을 할 것으로 보인다. 지회와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12월부터 단체교섭을 하고 있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결론이 나오지 않아 진전이 없었다. 지회 관계자는 "우선 내부 논의를 통해 고용형태 등에 대한 요구안을 정리할 것"이라며 "처우개선·고용안정을 중점에 두고 교섭에 임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재택위탁집배원같이 공공기관과 직접 계약을 맺고 일하는 다른 직종 특수고용직의 고용형태 개선 논의도 불붙을 전망이다. 우체국물류지원단과 계약해 일하는 우체국위탁택배노동자, 지방자치단체의 상하수도 검침원이 대표적이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공공부문에서 유사형태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는지 사례를 수집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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