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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로 고통받는 노동자 우리가 마지막이길"13년 복직투쟁 마침표 찍은 콜텍 이인근·김경봉·임재춘씨
▲ 배혜정 기자

13년, 4천464일. 명품기타 장인을 꿈꿨던 노동자들에게 들이닥쳐 한없이 잔인하게 흘러가던 시간이 마침내 멈췄다. 모진 세월을 함께 버틴 금속노조 콜텍지회 이인근·김경봉·임재춘씨가 서로를 얼싸안았다. 42일간 곡기를 끊어 뼈밖에 안 남은 임재춘씨가 김경봉씨와 이인근 지회장의 팔에 얼굴을 파묻었다. 두 남자는 임씨의 앙상한 등을 부드럽게 토닥였다.

콜텍 기타노동자밴드 '콜밴'으로 불리는 이들은 23일 오전 서울 강서구 콜텍 본사 앞 농성장에서 열린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정리해고로 고통받는 노동자는 우리가 마지막이길 바란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합의문 나오기까지 13년, 서명에서 악수까지 13분

지난 22일 회사측과 2007년 정리해고에 대한 회사측의 깊은 유감 표명과 해고자 3인 명예복직, 해고기간 보상을 담은 잠정합의문을 도출한 콜텍지회는 이날 오전 박영호 사장과의 조인식을 끝으로 모든 투쟁을 마무리했다.

▲ 배혜정 기자

박영호 사장은 조인식에서 "13년간 끌어온 분규가 원만히 타결돼 합의점에 이르게 돼 다행"이라며 "세 분이 13년간 가정에 못 돌아가고 길거리에서 생활하셨는데, 빨리 따뜻한 가정으로 돌아가 정상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건강도 회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13년 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은 박 사장의 '덕담'에 이인근 지회장과 김경봉씨는 쓴웃음을 삼켰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사용자측이 큰 결단을 하신 만큼 (콜텍 생산공장이 있는) 인도네시아에서도 한국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으시길 바란다"고 뼈 있는 소감을 건넸다. 노사 합의문이 나오기까지 13년 걸렸는데, 박영호 사장과 김호규 위원장이 합의문에 서명하고 마무리하는 데에는 채 13분이 걸리지 않았다.

"정리해고로 고통받는 노동자 없길"

조인식에 이어 열린 본사 앞 기자회견에는 이들의 복직을 축하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고맙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던 김경봉씨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그는 "많은 분들이 13년간 무엇이 제일 어려웠냐고 묻는데, 그동안 어렵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입을 열었다. 김씨는 "13년 투쟁 속에 생계를 책임지고 아이들을 돌봐야 했던 안식구에게 고맙다"며 "투쟁이 올바르게 갈 수 있도록 함께해 준 동지들도 고맙다"고 말했다.

임재춘씨 또한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임씨는 "목숨을 살려 주셔서 감사하다"며 "13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는 "어릴 때 딸들이 너무 많이 고생했다"며 "앞으로 젊은 사람들이 이런 세계에서 살지 않기를, 제 단식농성과 파인텍 고공농성이 마지막이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울먹였다.

회사에 칼자루 쥐어 준 대법원의 '희한한 판결'

이인근 지회장은 "가정을 버려야 했고, 꿈을 버려야 했고, 내 삶을 버려야 했던 13년의 세월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법원이 제대로만 판결했다면 콜텍 문제는 2012년 2월에 끝났을 것"이라며 "대법원의 희한한 판결로 7년이란 세월을 더 견뎌야 했다"고 씁쓸해했다.

이 지회장이 언급한 '희한한 판결'은 콜텍 정리해고를 부당해고로 본 2009년 서울고법 판결을 뒤집은 대법원 판결을 말한다. 대법원은 "미래에 올 경영상 위기만으로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이유를 만들어 냈다. 근로기준법 24조(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해고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미래에 있을지 모르는 경영상 위기에 대비하는 정리해고를 정당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 스스로 근기법 24조를 무력화하는 판결을 내린 셈이다. 대법원이 희한한 판결을 내린 까닭은 지난해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 발표에서 드러났다. 대법원과 박근혜 정권의 재판거래 의혹 사건 중 하나로 콜텍 재판이 포함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쥔 콜텍은 해고자들의 외침을 모르쇠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근기법 24조 개정 요구가 터져 나온 배경이다. 이 지회장은 "자본의 이윤만 대변하는 정리해고제가 당장 폐기되기 어렵다면 근기법 24조 해고 요건만이라도 강화시켜야 하지 않겠냐"며 "정리해고가 무분별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부당해고로 판결이 나면 (사용자) 처벌도 강화해 더 이상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일이 없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김정대 신부(천주교 예수회)는 "국가가 정리해고법을 만들어 힘 약한 노동자들에게 합법적으로 폭력을 가하고 있다"며 "정리해고법을 폐지할 수 있도록 함께 운동하자"고 당부했다.

▲ 배혜정 기자

"남은 삶 꽃길만 걷길"

기자회견이 끝나자 이인근·김경봉·임재춘씨는 고마운 이들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 전달했다. 2012~2013년 인천 부평구 콜텍악기 빈 공장에 작업실을 만들어 해고자들과 동고동락했던 전진경 작가도 꽃송이를 받고 눈물을 쏟았다. 콜텍보다 석 달 앞서 타결돼 복직을 앞둔 노조 파인텍지회 조합원들은 콜텍 노동자들을 뜨겁게 포옹했다. 자리에 함께한 100여명이 박수와 함성으로 이인근·김경봉·임재춘씨가 남은 삶에서 '꽃길'만 걷기를 바랐다.

배혜정  bhj@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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