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병원에서 파견·용역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는 5천명에 육박한다. 환자이송이나 청소·시설관리 같은 업무를 한다. 국립대병원 비정규직은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1단계 정규직 전환 대상자들이다. 3단계로 나뉜 정규직 전환 단계 중 가장 먼저 추진한다는 뜻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국립대병원을 통틀어 간접고용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한 곳은 양산부산대병원이 유일하다. 전환된 노동자는 240여명이다. 사실상 전환율 0%라고 지적하는 노동자들 주장에 힘이 실린다. 국립대병원 노동자들 목소리를 들었다. 다섯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정재범 보건의료노조 부산대병원지부장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12일 대통령 취임 후 첫 외부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천명했다. 이후 정부는 2017년 7월20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1단계 공공기관은 2018년 상반기까지 정규직 전환을 완료하라는 지침까지 내렸다. 정부 발표로 많은 공공기관 비정규 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 기대와 함께 차별과 고용불안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부푼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국립대병원 비정규 노동자들의 삶은 달라진 것이 없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용역업체와의 계약기간이 만료되더라도 전환 준비에 시간이 필요한 경우 일시적으로 계약을 연장하는 등의 조치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를 남용하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조건이 명시돼 있다. 그런데도 국립대병원은 정부 발표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환 준비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6개월씩 연장계약을 반복함으로써 비정규 노동자들의 피를 말리고 있다.

이처럼 전국 13개 국립대병원은 지금까지 정규직 전환에 대한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있고, 비정규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희망은 이제 희망고문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정규직 전환은 사회양극화 해소, 부당한 차별 시정, 인권침해 근절, 공공성 강화 등 사회적 요구일 뿐 아니라 환자 안전과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위한 필수요건이다. 특히 병원은 국민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업무 특성상 전문성·숙련성·책임성·연속성·협업성이 담보돼야 한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에이즈 감염사고, 결핵 감염사고, 장성요양병원 화재사고, 밀양세종병원 화재사고,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등의 사례에서 보듯 병원에서 발생하는 사고가 엄청난 인명피해를 초래한 것을 경험했다.

병원은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해 70여개 직종 노동자가 함께 일하는 노동집약적 사업장이다. 청소, 주차, 경비, 엘리베이터 작동, 냉·난방, 전기공급, 산소공급, 가스, 시설안전 관리, 조리·배식, 안내, 환자이송, 콜센터 등 병원 내 모든 업무는 환자 안전과 의료서비스 질과 직결되는 상시·지속적 업무이자 생명·안전 업무임에도 대부분 국립대병원은 파견·용역직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국립대병원의 정규직 전환율은 사실상 0%다. 비정규직 규모가 가장 큰 서울대병원은 노골적으로 자회사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고, 나머지 지방 국립대병원은 서울대병원 상황을 보고 전환계획을 확정하겠다는 무책임한 태도로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심지어 부산대병원은 2018년 임금·단체교섭에서 “정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과 공공병원 노사정 3자가 마련한 ‘공공병원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을 준용한다”고 합의했는데도, 이를 위반한 채 일방적으로 자회사 전환을 위한 컨설팅을 의뢰해 놓고 있다.

국립대병원의 자회사는 위험천만하다. 현재의 용역회사 운영과 달라지는 것이 하나도 없다. 자회사를 만든다고 해서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노동조건 개선과 차별 해소는 요원하다. 오히려 자회사 관리자 자리는 병원 간부의 자리 만들기용으로 전락할 것이다. 불법파견 문제와 위장도급 논란에서 자유롭지도 않을 것이며, 시설·청소업무에서부터 시작된 자회사는 각 업무로 확장돼 국립대병원의 공공성을 파괴하는 영리사업이 횡행하게 될 것이다.

국립대병원은 우리나라에 10%도 채 안 되는 공공의료기관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국립대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를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는 것은 공공의료기관의 사회적 책무다.

대통령의 약속은 국립대병원에서부터 지켜져야 한다. 국회의원 시절 국회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사례를 거울삼아 국립대병원의 비정규 노동자 문제를 꼭 해결했다고 약속한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국립대병원 소관부처의 장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국립대병원은 더 이상 희망고문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같은 병원에서 일하면서도 수시로 업체가 바뀌고, 매년 근로계약서를 써야 하는 고통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국가시책에 발맞춰 조속히 파견·용역 노동자를 직접고용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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