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총과 반올림, 고 김용균 대책위, 노동건강연대 등 노동ㆍ시민ㆍ사회단체 회원들이 22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 입법예고가 위험의 외주화 금지 약속 파기라며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고용노동부가 22일 입법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과 관련해 노동계는 "구의역 김군이나 발전소 김용균씨, 중대재해 위험에 노출된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없다"며 전면수정을 요구했다. 하위법령에서 보호 대상과 책임 대상 범위를 지나치게 축소해 "위험의 위주화 방지와 원청 책임 강화"라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은 내년 1월16일부터 시행된다.

민주노총 "위험의 외주화 금지 약속 파기"

민주노총은 이날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산업안전보건법 하위법령은 28년 만의 전면개정을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시키는 입법예고안"이라며 수정을 촉구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시행령에 구의역 김군이나 발전소 김용균씨, 조선소 하청노동자 사고처럼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사고성재해가 노동부 도급승인을 받는 작업 대상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시행령에서 도급승인 대상을 4개 화학물질(황산·불산·질산·염산) 취급설비 개조·분해·해체·철거 작업으로 한정했다. 노동부는 대략 1천800개 사업장에 적용될 것으로 추산했지만, 화학물질 종류 제한에 작업 제한까지 '이중 제한'을 두면서 실제 대상은 매우 협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황상기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대표는 "위험의 외주화로 사망한 구의역 김군, 태안 화력발전소 김용균씨 사고를 막으려면 도급을 엄격히 제한해야 하는데, 시행령을 보면 도급금지는커녕 승인 대상에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원청 산업재해 책임을 강화한 건설기계를 27개 기종 전체가 아닌 타워크레인·건설용 리프트·항타기·항발기 등 4개 기종으로 한정한 것도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 중량물을 인양하는 모든 장비에서 협착·전도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이영철 건설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건설현장에서는 항타기·항발기뿐만 아니라 포클레인·지게차·로더와 함께 작업하기 때문에 몇 개 기종에만 법을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특수고용 노동자 보호범위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적용되는 9개 직종으로 명시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노총은 "산재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화물운송 노동자와 영화·방송·드라마 제작현장 노동자들도 보호범위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또 "작업중지명령의 경우 졸속 심의와 해제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작업중지명령 해제를 심의하는 위원회에 노조 추천 전문가를 참여시켜야 한다는 노동계 요구가 반영되지 않았다. 사업주가 작업중지명령 해제를 요구하면 지방관서장은 4일 이내에 심의해야 한다. 졸속 심의와 해제를 우려하는 배경이다.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이날 입장서를 내고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개정됐지만 용균이가 들어 있지 않은 반쪽짜기 법안으로 통과됐다"며 "위험의 외주화는 금지하지 못하더라도 도급승인 대상에는 화력발전소가 포함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씨는 "화력발전소뿐만 아니라 전력산업 운전설비·컨베이어벨트·궤도장비·조선업·건설업 기업들이 모두 도급승인 대상에 들어가야 안전사고가 재발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광일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소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의 가장 큰 취지는 일하는 모든 사람의 안전과 보건을 증진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하위법령 입법예고안에서 적용제외 대상을 대통령령으로 계속 유지해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 입법취지를 반영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김 소장은 "도급승인 대상에 4개 화학물질 작업만 넣고, 안전·보건 계획 수립을 500인 이상으로 제한하며, 작업중지명령을 동일한 작업으로 한정한 것은 노동계가 줄기차게 반대한 내용"이라며 "전문가회의와 회원조합 의견을 들어 노동부에 의견을 전달할 예정인데, 한국노총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면 전면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경총 "작업중지·관계수급인 기준 행정지침 있어야"

재계는 재계대로 "산업계 요구사항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한국경총은 "작업중지명령 해제 심의위원회를 4일 이내에 개최하도록 규정해 작업중지로 해당 기업과 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줬던 작업중지 해제 결정의 지연 문제가 지속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작업중지 기간 4일도 너무 길다는 얘기다.

경총 관계자는 "작업중지와 관계수급인 기준에 대해서는 정부가 별도 행정지침을 마련해 업계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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