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고려대 노동대학원은 거대 전환 사회변동기에 새로운 노동패러다임의 학술과 대안을 생산하는 기지가 될 것이다. 노사정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적 대화의 원형적 공간을 만드는 게 종국의 발전방향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 위치한 금융산업공익재단에서 조대엽(59·사진)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을 만났다. 그는 지난해 10월 출범한 금융산업공익재단 초대 대표이사장을 맡고 있다.

1995년 출범한 고려대 노동대학원은 국내 최고 노동부문 고등교육기관이다. 2015년 첫 임기를 시작한 조대엽 원장은 올해 3월 세 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두 차례 연임은 역대 원장 중 처음이다.

"사람·삶·미래를 지향하는 노동학의 큰 터"

- 김호진 초대 원장이 연임한 적은 있지만 두 차례 연임은 처음으로 알고 있다.
“대학원장은 연임 자체가 쉽지 않다. 대학원장 인사는 총장이 지명하고 교수의회에서 인준받아야 한다. 노동대학원의 변화와 발전, 성과를 신뢰하고 높이 평가해 준 덕분이 아닌가 싶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임하겠다.”

- 노동대학원의 성과를 소개한다면.
“노동대학원장 취임 이후 처음 한 것이 노동대학원 교육철학과 가치 정립이었다. 교육철학으로 삼은 것이 ‘사람·삶·미래를 지향하는 노동학의 큰 터’다. 통합사회과학으로 ‘노동학’을 표방했다. 이 같은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내부가 결속하고 이것이 외연 확장으로 이어졌다.
학기마다 KU노사정포럼을 열어 3천500명 원우와 졸업생이 어울리도록 했다. 노동현장과 아카데미즘을 연계한 노동학 컬로퀴엄(연구모임)을 열었다. 2017년에는 ‘노동대학원 발전위원회’를 출범시켜 석사과정 원우회 조직화 등 조직체계를 확립했다. 올해 석사과정 1학기 경쟁률이 4.03대 1을 기록했다. 전국 대학원 어디도 이런 경쟁률은 흔치 않다.”

-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연구소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1965년 설립된 노동문제연구소는 노동대학원의 근원이자 자부심이다. 지금까지 노동문제연구소 정상화에 주력했다. 첫 임기를 시작할 때 ‘새로운 50년, 노동학의 요람’ 비전선포식을 하고, 학술지 <노동연구>가 학술등재후보지로 선정되도록 했다. 그만큼 논문의 질을 인정받는다는 의미다. 5개 연구센터를 신설하고 연구교수도 11명 확보했다. 노동학 연구총서를 발간하고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노동학’ 박사과정 빠르면 내년 3월 개설

- 노동대학원 발전방향을 소개한다면.
“노동학 학문후속세대가 이어지도록 박사학위를 배출해야 한다. 그동안 전문대학원 전환을 추진했는데, 현재 보류된 상태다. 다만 현행 대학제도상 협동과정으로 박사과정을 만들 수 있다. 기존 학과로는 소화하기 어려운 학문 분야를 두고 관련 학과와 교수들이 공동으로 학과를 운영하는 방식이다. 빠르면 내년 3월 최초의 노동학 박사과정을 모집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대학원 고유 브랜드가 될 것이다.”

- 앞으로 어떤 사업에 주력할 건가.
“박사과정 오픈을 준비하는 것 외에 석사학위 경쟁률이 높은 만큼 ‘계약학과’ 석사과정을 신설할 예정이다. 노사협력전문과정과 사회적대화아카데미도 개설한다. 이와 함께 25~26일 ‘2019 한국노동사회포럼’ 개최를 준비 중이다. KU노사정포럼과 함께 양대 학술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노동문제연구소에서 <한국노동운동사> 총 5권을 발간한 바 있는데, 외환위기 이후 노동운동사를 담은 6권을 만들 생각이다.”

- 금융산업공익재단 초대 대표이사장을 맡았는데.
“최근 금융산업공익재단 외에도 노동에 기반을 둔 공익재단이 여럿 출범했다. 한국노동사에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고 본다. 노동이 노동자 생계수단을 넘어 공공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획기적 지표가 되고 있다. 초반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감사하다.”
 

▲ 정기훈 기자

노동기반 공익재단 한국노동사 새 장 열어

- 재단은 금융권 노사가 함께 조성한 2천억원을 재원으로 일자리 창출과 금융 취약계층 지원 같은 사회공헌사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어떤 사업을 추진하고 있나.
“사업 추진은 신중하게 한다는 게 이사회의 기본 정서다. 사업이 백화점식 나열이나 중복·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을 경계한다. 산업 구조조정을 겪는 지역과 금융 소외계층 지원사업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시민과 함께 간다는 취지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공모할 것이다. 조만간 이사회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 한국을 대표하는 공익재단이 될 것 같다.
“한국 사회 노사는 갈등과 분열을 겪었다. 그런 노사가 함께 만든 공익재단인 만큼 협력과 대화의 표본이 되지 않겠나. 노동의 공공성을 확장하고 시민사회적 가치까지 확장하는 경로로서 재단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고려대 노동대학원과 노동문제연구소는 25~26일 이틀간 ‘백년의 시민, 노동의 미래-한국 노동체제 다시 짜기’를 주제로 ‘2019 한국노동사회포럼’을 주관한다. 노동의 공공적 가치와 디지털시대 노동, 포용적 노동시장, 한반도 시대와 노동, 사회적 대화 등 폭넓은 주제를 다룬다. 양대 노총 위원장과 노사정 대표자들이 참석한다.

- 한국노동사회포럼을 기획한 이유는.
“노동을 기업 이익수단이나 경제적 효율에 종속된 존재로 계량화하는 ‘노동공학적 접근’을 넘어 노동의 공공적 가치를 지향하는 ‘노동학적 접근’이 필요한 때다. 흩어져 있는 노동영역 학술적 활동을 모아 미래를 생각하는 큰 판을 만드는 학술광장으로 이해해 달라.”

‘노동의 공공성’ 가치협력 시대로

- 이번 포럼에서 ‘가치협력 시대를 어떻게 열 것인가’ 기조연설을 한다. 어떤 의미인가.
“가치협력 시대라는 화두를 던지는 것은 문명사적 차원에서 보자는 뜻이다. 인류는 작업을 통한 협력을 시작했다. 이후 종교·이념을 통해 협력해 왔다. 우리는 어떤 협력을 이끌어 낼 것인가. 가치협력을 제4의 협력문명이라고 부르고 싶다. 가치협력의 시대는 노동의 공공적 가치, 사회적 대화 등 공화적 협력의 시대를 말한다.”

- 포럼에서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탄력근로제, 사회적 대화 같은 현안도 다룬다. 문재인 정부 2년의 노동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마디로 말하면 배는 탔으나 노를 젓지 못하는 형국인 것 같다. 정책은 있지만 실현수단을 갖지 못한 게 현주소 아닌가 싶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정책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노동공학적 접근 측면 때문이다. 산업화와 성장주의, 그리고 노동공학적 접근은 시효가 만료됐다.

노동문제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채택하는 문제라는 것에 합의해야 한다. 새로운 그릇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새로운 그릇이 단단히 굳기도 전에 성급한 합의를 하려다 문제가 생겼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 5년간 성과를 얼마나 많이 만들어 내느냐에 치중해서는 안 된다. 다음 정부와 100년의 미래를 지속하기 위한 새로운 그릇을 만드는 것 자체를 성과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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